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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만리 (28) Tasting Menu: Price, Pride and Prejudice

인기폭발 미슐랭 스타 '테이스팅 메뉴'에 딴지 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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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븐 매디슨 파크(Eleven Madison Park)는 8-10코스가 $335. https://www.elevenmadisonpark.com



최근 몇년간 맨해튼과 브루클린에 럭셔리 콘도들이 하늘로 치솟고 있는 가운데 뉴욕 명물 식당들이 도미노로 문을 닫고 있다.  한편, 고급 레스토랑들의 '럭셔리' 테이스팅 메뉴(Tasting Menu)의 인기는 치솟고 있다. 높은 가격표를 달고, 훨훨 나는 중이다. 


셰프가 작은 요리를 코스로 내놓는 '테이스팅 메뉴'는 돈 많은 식도락가들에게는 트로피처럼, 식당으로서는 미슐랭 스타덤으로 가는 지름길처럼 여겨지고 있다. 테이스팅 메뉴는 고객이 선택할 수 없고, 셰프가 주는대로 먹어야 한다. 7-20코스까지 아주 적은 량의 요리 천천히 음미해야 한다. 세금과 팁을 포함한 계산서는 경악할만 한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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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랭 2스타 한식당 아토믹스(Atomix)의 테이스팅 메뉴는 10코스에 $205. https://www.atomixnyc.com


테이스팅 메뉴는 프랑스어 디거스타시옹(dégustation, tasting)에서 왔다. 원래는 셰프가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거나, 계절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1990년대 중반 전설적인 스페인 식당 엘 불리(El Bulli)의 셰프 페랑 아드리아(Ferran Adrià)와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자리한 프렌치 론드리(French Laundry)의 셰프 토마스 켈러(Thomas Keller)가 무려 40코스 이상으로 테이스팅 메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2004년 토마스 켈러가 맨해튼 컬럼버스 서클 타임워너센터 4층에 퍼 세(Per Se)를 오픈한 후 뉴욕타임스 별 4, 미슐랭 스타 3을 석권하며 고급 레스토랑의 롤 모델이 됐다. 퍼 세의 테이스팅 메뉴는 뉴요커들과 여행자들의 버킷 리스트에 오르고,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여기에 덴마크 코펜하겐의 20코스 테이스팅 메뉴 식당 노마(Noma)가 레스토랑 잡지에 의해 2010-2014년 사이 네차례 넘버 1으로 선정되며 요식업계에서는 테이스팅 메뉴가 유토피아의 상징처럼 됐다.


2020 뉴욕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5곳(퍼세, 일레븐매디슨파크, 르 버나단, 브루클린페어 셰프즈 테이블, 마사) 중  네곳이 모두 테이스팅 메뉴를 고수하며, 르 버나단은 테이스팅 메뉴를 제공하지만, 개별 메뉴(à la carte)를 주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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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퍼세(Per Se)는 9코스에 $355.  https://www.thomaskeller.com/perseny

   

2020년 1월 현재 뉴욕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들의 테이스팅 메뉴를 보자.


타임워너 빌딩 4층의 미슐랭 3스타 일식당 마사(Masa)는 25코스 오마가세(Omakase)/테이스팅 메뉴를 미국 최고가인 1인당 595달러를 받는다. 미슐랭 3스타 셰프 세자르 라미레즈(Cesar Ramirez)의 브루클린 페어 셰프즈 테이블(Chefs Table at Brooklyn Fare)는 14코스에 $362, 퍼 세(per se)는 9코스에 $355, 다니엘 험(Daniel Humm)의 일레븐 매디슨 파크(Eleven Madison park)는 8-10코스가 $335다. 에릭 리퍼르(Eric Ripert)의 르 버나단(Le Bernardin) 셰프 테이스팅 메뉴는 8코스에 $228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한편, 미슐랭 2스타인 데이빗 장(David Chang)의 모모푸쿠 코(Momofuku Ko)는 12코스에 $255다. 임정식씨의 정식(Jungsik)과 박정현씨의 아토믹스(Atomix)는 테이스팅 메뉴로 단숨에 미슐랭 2스타덤에 올랐다. 정식은 7코스에 $165, 아토믹스는 10코스에 $205다. 음료와 세금을 제외한 1인당 가격이며, 메뉴에 따라 추가 부과료가 붙기도 한다. 



우리는 왜 테이스팅 메뉴에 집착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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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2스타 정식(Junsik)은 7코스 테이스팅 메뉴가 $165. http://jungsik.com


고급 레스토랑의 심볼 '테이스팅 메뉴'는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는 우아한 인테리어에 유명 셰프의 창의적인 요리, 그리고 완벽한 서비스를 보장한다. 두사람이 와인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할 경우 1천 달러 이상에 달하기도 한다. 예약은 때때로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테이스팅 메뉴는 요트나, 고급 와인처럼 부자들의 트로피가 됐다. 미술품처럼 아름다운 테이스팅 메뉴는 인스태그램 시대의 달링이다.  


데이빗 장과 호세 안드레스(Jose Andres) 등 셰프들이 타임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에 오르고, 케이블 TV의 요리 프로그램으로 스타 셰프가 레스토랑을 확장하며, 게임쇼를 통해 신인 셰프들이 탄생하는 시대다. 셰프들은 스타를 넘어서 예술가, 천재의 반열에 까지 오른 상태다. 그들은 가장 유니크한 식재료와 레시피로, 핀셋을 사용한 정교한 테크닉으로 순백의 접시에 두입 크기의 요리를 올려 테이블에 내놓는다. Less is More. 고객은 선택할 자유가 없으며, 셰프가 주는대로 한입, 두입 감질나게 접시를 비운다. 테이스팅 메뉴에서 포식이란 없다. 


고급식당들은 돈 있는 고객들을 볼모로 잡아 '테이스팅 메뉴'라는 화려한 올가미를 씌운 채 2-3시간 동안 천천히 10여가지 코스 메뉴로 고문한다. 어느 식도락에게 테이스팅 메뉴는 황홀한 모험이 될 수도, 함정이 될 수도 있다. 테이스팅 메뉴는 바가지일 뿐만 아니라 불친절하며, 고객을 모욕할 수도 있는 메뉴다. 테이스팅 메뉴는 그 갸격만한 가치가 있을까?



테이스팅 메뉴의 10가지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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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으로 이전했지만, 이름은 그대로. Chefs Table at Brooklyn Fare  https://www.brooklynfare.com/pages/chefs-table


첫째, 셰프는 폭군이며, 고객은 종이다. 누가 소비자를 왕이라고 했나? 고객은 종이지만, 왕이라 착각하게 만든다. 테이스팅 메뉴는 고객이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뺏아간다. 그런점에서 마음대로 골라서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뷔페는 민주적이다. 또한, 대부분 테이스팅 메뉴 식당에는 들어가기 전 무엇을 먹게 될지 모른다. 블라인드 데이트처럼, 맘에 들지 않아도 감동한 것처럼 연기를 해야 한다. 셰프는 스타이므로. 


두번째, 음식의 양은 적고, 배는 고프다.   Less is More? 테이스팅 메뉴는 미술작품 같고, 사진발을 잘 받는다. 그양은 한식의 반찬이나 스페인 타파스보다도 대체로 적다. 사람의 혀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더 원하도록 두세 입에 딱 맞는 맞춤형 분량이다. 기교를 한껏 발휘한 요리는 아름답지만, 그렇다고 늘 맛있는 것은 아니다. 빛좋은 개살구(Fool's Gold)일 가능성도 있다. 당신은 식당을 떠날 때 맥도날드 간판을 보며 군침을 흘리게될지도 모른다. 


세째, 고객의 취향에 불친절하다. 특수 다이어트를 하거나, 식품 알러지가 있는 다이너를 환영하지 않는다. 브루클린 페어 셰프즈 테이블은 프렌치 테크닉의 일본 요리 전문이며, 전 코스가 해산물 위주다. 해산물이나 갑각류 알러지가 있는 식도락가는 피해야 한다. 유태인인데 삼겹살을 준다면? 아토믹스는 "어떤 알러지나 갑각류, 해산물, 유제품, 글루텐, 마늘류에 대한 혐오감이나 채식주의자들에게 맞출 수 없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네째, 시간을 앗아간다. 뉴요커들에게 시간은 황금이다. 그러나, 테이스팅 메뉴는 기다림의 미학을 요구한다. 7-25코스를 2-3시간에 걸쳐 제공하므로 당신은 시간이 넉넉한 부자이거나, 인내심이 많아야 한다. 따라서 파트너와 중요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갔다면, 불쑥불쑥 나타나는 접시에 방해될 수도 있다. 시간도 돈도 부족한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다. Pie in th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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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가세(테이스팅 메뉴) $595. Masayoshi Takayama at Masa.  http://www.masanyc.com


다섯째, 과도하게 비싸다. 7-25코스 메뉴에 최소 165달러부터 시작해 600달러에 육박한다. 와인 등 음료, 세금과 팁을 포함해 2인의 저녁식사가 500달러에서 1천달러를 능가한다. 여기에 스페셜 메뉴에는 100달러 이상 별도로 부과하기도 한다. 서민은 상상할 수 없는 식대다. 거꾸로 식당에서 테이스팅 메뉴는 와인처럼 부가가치가 높다. 여기에 미국 최고가의 식당 마사(1인당 $595)는 1주 전 예약을 취소하지 않으면 1천달러를 부과한다고. 


여섯째, 따라서 위화감을 조성한다. 테이스팅 메뉴는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트로피다.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주변에 으시대고 싶은 자랑거리다. 하지만, 위화감을 준다. 세상을 마사나 퍼세에 가본 사람들과 못가본 사람들로 나눌 필요는 없다. 


일곱째, 고객은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다. 비싼 음식값을 지불한 후 식당을 나설 때 우리는 최면을 걸기 시작한다. 10개 코스 중 정말 마음에 든 음식이 몇개였는가? 우리는 가성비가 좋았다고 믿고 싶다. 바가지를 썼다는 착각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XX 셰프는 과연 천재야, 음식은 환상적이었어!"라고 믿고 싶어진다.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여덟째, 셰프와 웨이터의 나르시즘. 테이스팅 메뉴를 제공하는 레스토랑들은 절간처럼 고요하며, 스탭은 수도승들처럼 깔끔하다. 하지만, 어떤 식당 셰프와 스탭은 오만할 정도로 나르시즘이 가득하다. 2009년 브루클린 페어 셰프스 테이블 오픈 초기에 갔을 때 오픈 키친의 ㄷ자형 테이블에 둘러앉았는데, 사진촬영, 메모도 금지했으며, 심지어는 목소리도 낮추어야 했다. 셰프즈 테이블은 2014년 아시아 고객 차별로 집단소송을 당했다. 사실 테이스팅 메뉴 고객의 다수는 아시아계이기도 하다. 마사에서 사진촬영은 금지되며, 퍼세나 르 버나단에선 플래시를 사용하면 웨이터가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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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데이빗 장은 모모푸쿠 코의 주방을 지켰다. Photo: Gabriele Stabile  https://ko.momofuku.com


아홉째, 요리학교가 된 키친. 어느덧 파워 셰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식당 수를 늘려가면서 새싹 셰프들은 이력서를 매력적으로 보이게할 스타 셰프 레스토랑에서 수련하는 것을 꿈꾼다. 요리학교가 된 키친에서 멘토의 테이스팅 메뉴 전략은 최고의 병기가 된다. 이들은 대부분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곧, 투자자를 찾아서 맨해튼, 브루클린 어느 곳에 둥지를 틀고 자신의 '테이스팅 메뉴'를 내놓기 시작한다. 대박을 내거나, 미슐랭 스타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열번째, 과대평가된 셰프들, 남자들만의 세계. 온 세상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으로 떠들썩한데, 요식업계는 조용하다. 레스토랑이야말로 성차별의 표본이다. 남성 셰프들이 과대평가됐다. 여성 셰프들은 대개 패이스트리 분야에 머문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90% 이상이 남성 셰프들인 가부장적 시스템이다. 테이스팅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의 99%가 남자 셰프 오너들이다. 


또한, 대부분의 스타 셰프들은 성공 후 키친을 떠나 돈 세기가 바빠지며, 키친은 그의 조수들로 대체된다. 셰프 자신의 손맛을 느낄 수 없으며, 핀셋으로 다루어진 음식을 즐기는 척 해야 한다. 마사의 셰프 마사요시 타카야마는 시가광이면서 스시를 만든다는 점도 석연치 않거니와 같은 키친을 쓰는 바 마사(Bar Masa)에서 먹어본 스시 롤은 따뜻한 델리의 롤 블라인드 테이스팅하면 구분못할 정도로 평범했다. 셰프들 중에는 #MeToo로 퇴진한 마리오 바탈리(Mario Batali)같은 인물도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뉴욕 블로거의 테이스팅 메뉴 레스토랑에 대한 비틀린 시선은 여우의 신 포도일까? 럭셔리 콘도는 치솟고, 테이스팅 메뉴의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더 높게, 더 비싸게, 더 화려하게, 더 특이하게, 더 차이 나게.... 부동산업계나 요식업계는 우리 사회의 빈익빈부익부를 더욱 심화시킨다.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에겐 씁쓸한 상대적 박탈감을 던져주고 있는듯 하다.



sukiepark100.jpg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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