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허병렬/은총의 교실
2020.02.24 21:13

(463) 허병렬: 열린 마음, 겸허한 태도

조회 수 342 댓글 0

은총의 교실 (60) Arts in the City


열린 마음, 겸허한 태도


IMG_5217.jpg

Simone Leigh, Stick, 2019, Bronze (left)/ Janiva Ellis, Uh Oh, Look Who Got Wet, 2019 (right). 2019 Whitney Biennale


람의 크기는 무엇에 따를까. 요즈음 상념으로는 그의 언동이 얼마나 넓게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얼마나 오래 사람들의 마음에 간직되느냐에 따르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500여년 전의 미국은 지금과 달랐다. 그것도 남부의 시민 생활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졌다. 내쉬빌은 테네시주의 주도이다. 그 당시 그 곳은 이미 컨트리뮤직의 중심지로서 명성을 얻고 있었다. 내쉬빌에는 인구 10여만명이 살고 있었지만 교회와 대학이 많은 도시였다.


그러나, 필자가 재학하였던 대학에는 한 명의 흑인 교수나 학생도 없었다. 대학 구내에서 볼 수 있는 흑인은 청소나 경비 담당자 뿐이었다. 시내 버스를 타면 아무런 표시가 없었지만 앞 자리에는 으레 백인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뒷자리에는 흑인들의 얼굴이 있었다.


엉거주춤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너는 앞에 앉으라고 하였지만 잠시 비틀거리다가 중간쯤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장거리 여행을 하려고 버스 정거장 대기실에 가면 ‘블랙 온리(Black Only)’ ‘화이트 온리(White Only)’라는 사인이 있어 할 수 없이 밖에서 어슬렁거리다 버스를 탄 기억이 있다. 하루가 멀게 흑인들의 침묵 혹은 폭력시위가 이어져 시내 중심지는 험악한 분위기였었다. 필자는 이런 광경을 목격하면서 조용한 방관자일 수 밖에 없는 한심한 입장의 외국 학생이었다.


금의 뉴욕을 생각해 본다. 그 시절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변화가 왔다. 흐르는 시간은 변화의 속도가 느린 사람들의 의식을 바꿔 놓았다.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 삽화에 흑인이 등장하고, 거리의 진열장에서는 흑인 마네킹을 볼 수 있는 시대이다. 흑인들에게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 차별대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한국내 신문 기사에서 읽은 외국인 흑인 노동자의 말 중에 ‘나는 처음에 멸시를 당했지만 미국에서 왔다니까 금새 대우가 달라지더라’는 대목이 있었다. 우리의 치부를 보여준 것 같아 민망하였다. 미국 방문자들한테서 흔히 ‘그 동네에 흑인이 있어요?’라는 질문을 듣게 된다. ‘미국에서 흑인이 없는 곳을 찾기는 힘들 겁니다’ 이게 필자의 대답일 수 밖에 없다. ‘차별 대우’라는 말에 민감하며, 거기서 멀어지려고 몸을 도사리는 우리는 아무래도 그들을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차별 대우’를 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누군가를 ‘차별’해서도 안될 줄 안다. 내 자신이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동안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부족한 것이다. 열린 마음, 겸허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한다면 차별이 있겠는가.


마틴 루터 킹은 흑인만 생각한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의 인권과 복지를 생각한 점이 다르다. 인종을 초월한 모든 사람의 평등한 공동체를 이루겠다는 것이 바로 그의 꿈이었다. 그는 흑인을 위한 인권 옹호자일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바른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마틴 루터 킹이 큰 사람임을 느끼게 한다. 또한 그의 마음이 크게 느껴진다. 


부모나 교사가 좋은 친구를 사귀도록 하라고 말하자 ‘그럼 나쁜 친구는 누구하고 놀아야 하느냐?’고 걱정한 학생이 있었다. 이 경우는 ‘백로야 까마귀 노는 곳에 가지 말라’는 격이지만, 자녀들의 교우 관계에 조언을 할 때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 친구가 적당치 않다는 설명을 하다가 자칫 차별하는 마음이 드러나면 어른들에 대한 신뢰도에 손상을 입게된다.



-같은 지구에서-


까만 눈도/ 파란 눈도/사과를 보며/ 책을 읽는다.

낮은 코도/ 높은 코도/ 향내를 맡으며/ 푸른 공기를 마신다.

까만 머리도/ 노란 머리도/ 길게 자라며/ 바람에 나부낀다.

노란 손도/갈색 손도/ 손가락이 다섯이며/ 만지면 따뜻하다.

노란 마음도/ 하얀 마음도/ 갈색 마음도/ 서로서로 맞닿으면/ 뜨거운 사랑을 안다.


우리들은 자란다.

같은 시대에

같은 지구에서.



허병렬100.jpg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