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수임/창가의 선인장
2020.03.24 16:26

(476) 이수임: 코로나 크루즈

조회 수 603 댓글 0

창가의 선인장 (93) To Cruise, or Not to Cruise

코로나 크루즈


홀로 뱃사공.jpg


코로나 바이러스 돌림병이 번진다는 유튜브 동영상을 친구가 보내왔다. 보지 않았다. 가끔 나가는 모임에서 몇몇 회원들이 크루즈 예약을 취소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바이러스도 바이러스지만, 배에 탔다가 아시안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멀리하면 기분이 나빠서란다.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백인들이 다 내렸고, 식당에 갔더니 아시안만 한쪽으로 몰아 앉히더란다.


작년에 예약한 크루즈 여행이 곧 다가온다. 남편은 수시로 유튜브를 들여다보며 상황을 말해준다. 혹시라도 바이러스 때문에 배 타기 싫으면 나 혼자 가도 되니 집에 있으라고 했다. 비좁은 크루즈 방을 혼자 쓸 수가 있다. 남편 눈치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쏘다닐 수도 있다.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여름에는 가능하면 피하고, 춥고 으스스한 계절 따뜻한 곳에 가고 싶어서다.


내가 아시안이라고 바이러스 옮긴다고 사람들이 피해 다니면, 나는 오히려 내 주변 공간이 넓어져 더 편하다. 남이 나를 멀리하는 것은 그의 문제이기 때문에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솔직히 배에 타서 손 하나 까딱 않고 남이 차려 놓은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고 싶은데, 자꾸 주섬주섬 다가와 말 붙이면 편치 않다. 밥 먹을 때만은 영어 하기 싫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잘해주면, 나도 잘해주는 척은 해야 한다. 평소 입을 열 때가 별로 없는 노인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조금만 틈을 주면 떠들어 대니.


어릴 적 친정 아버지 늘 하시던 말씀, "남이 오른쪽으로 가면, 너는 왼쪽으로 가라. 남이 하지 않는 일을 찾아서 해라. 남들이 몰려가는 곳으로 가면, 이미 때는 늦어 별 볼 일 없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과 그리 상관있는 조언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예약을 취소하면 배가 한가할 것 같아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배 회사가 취소하지 않는 한 타기로 마음먹고 가방을 쌌다.


배 타러 떠나기 며칠 전이다. 크루즈 회사에서 미국 국무부 여행 권고사항, 미질병통제 센터와 스위스 세계보건기구의 COVID-19 정보 상황을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벌금 없이 예약을 취소 할 수 있다. 그리고, 24개월 안에 다시 탈 수 있는 전액 바우처를 주겠다고 이메일이 왔다. 크루즈 회사에서 이렇게까지 나오니...


바다에 미친 내가 물귀신이 되려고, 아니면 바이러스에 걸려 죽으려고 환장했었나 보다. 사람들은 자기가 열정으로 하는 일로 죽는 경우가 많다. 좋아하다 보면 자주 하게 되고, 자주 하다 보면 아무래도 그 일로 죽을 수밖에 없다. 악어를 약 올리며 사람들의 섬뜩한 반응을 통해 수익을 얻는 사람들도 결국엔 악어 한입에 목숨을 잃듯이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닷물에 빠져 죽을 확률이 높다.


나는 당분간 집에 콕 박혀서 잠수함이 물 밖이 궁금해 잠망경으로 내다보듯 관찰하다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지면 나와야겠다. 그러나저러나 스탁이 떨어지고 경기가 제대로 순환되지 않으니, 바이러스 다음은 생활고에 시달려야 하는 건가? 생활고에 시달리기 전에 바이러스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Soo Im Lee's Poto100.jpg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http://sooimlee3.blogspo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