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
2020.04.01 00:43

(479) 스테파니 S. 리: 코로나19에서 배운 것

조회 수 586 댓글 0

흔들리며 피는 꽃 (43) 봄을 기다리며...

코로나19에서 배운 것


4 traditional virtue detail.jpg

Traditional Virtue(detail), Stephanie S. Lee, 2019, Pine black, natural mineral pigment, and ink on linen, 33.5” H x 12.5” W each


COVID-19 때문에 딸 아이도 나도 집에서 뒹굴뒹굴 한지 벌써 2주일이 넘었다. 첫 한주 동안 딸 아이는 하루종일 Roblox를 하고 YouTube를 보다 지겨워지면, 방에서 나와 청소나 요리하는 것을 도와주었고, 나는 며칠을 늘어져 밀린 한국 드라마들을 봤다. 


익숙치않던 것들을 해야 하고 늘 하던 일들을 못하게 되니 일상이 조금씩 틀어진다. 보이면 도망을 가든 싸우든 결판을 낼텐데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상대하자니 쉽지 않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막연하고 지루한 불안을 견뎌야 하는데 공포의 정도를 가늠할 수 없으니 얼마나 대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불확실 하니 의욕없이 처진다. 머리는 복잡한데 이상하게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아 며칠간 내리 드라마 보기에만 집중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보다보니 수감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슬기로운 감빵 생활’, 역병이 돌아 좀비들이 창궐하는 ‘킹덤’, 응급실 이야기를 그린 ‘낭만닥터 김사부’ 까지, 지금의 시국이 많이 반영된 드라마들만 본 것 같다.


그래도, 수요일엔 모처럼 날씨도 좋고 세식구가 다 집에 있어서 바람도 쐴겸 함께 나가 밀린 일들을 처리했다. 언제 관공서들이 문을 닫을지 모르니 집 근처 우체국과 은행, 식료품점 등을 가기로 했다. 조금 불안해서 마스크를 쓰고 나갈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아직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고,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보다는 인종차별로 인한 따가운 시선이 더 무섭게 느껴져서 마스크는 쓰지 않고 나갔다.


우선 종종 브런치를 먹는 집 근처 파네라(Panera)에 간단히 아침을 먹으러 들렀다. 요즘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니 가게들이 손해가 많지않을까 우려했던 것과 달리 손님으로 차 있었다. 평소같으면 앉아서 먹었겠지만, 왠지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찬 실내가 내키지 않아 베이글과 커피를 포장해 나와 차안에서 먹었다. 화장품이 떨어져 근처 세포라(Sephora)에서 크림을 사고, 잘못 온 우편물들을 반송하고 우표도 살겸 우체국에도 들렀다. 우체국 직원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일하고 있었고, 몇몇 동양인들도 마스크를 쓰고 줄을 서고 있었다. 모두가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스크를 하지 않은 나이 지긋한 동양인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니 긴장감 돌던 공기에서 사람들의 예민함이 확 느껴졌다.


살얼음 위를 걷듯 조용한 우체국을 얼른 나와 디파짓을 하러 신한은행에도 들렀다. 마스크를 쓴 손님도, 직원도 없었고 한국 은행이라 모두 한국 사람이니 왠지 마음이 편했다. 남편이 허리가 아프시다는 어머님께 등 펴는 의자를 보낸다해서 UPS에도 들렀다. 시댁이 있는 LA는 여기보다 상황이 심각한지 외부 출입도 어렵고 마트에 물건도 없다고 한다. 소포 우송비만 무려 $150이라 의자 가격의 3배였지만, 회사가 망해 다시 살수도 없는 물건이라서 비싸도 그냥 부치기로 했다.


금방 의자만 전해주고 나오려고 주차권을 끊지 않고 UPS로 갔었다. 그런데, 견적내는 동안 시간이 꽤 걸렸나 보다. 나오니 부지런한 경찰께서 주차위반 티켓을 끊고 계셨다. 남편이 지금 동전 넣으러 간다며 주차권발매기로 뛰어 갔지만, 이미 입력 중이라 캔슬하지 못한다며 주차권이 나오면 티켓이랑 같이 보내 면제받으라 하신다. 이 와중에 참 부지런도 하시네 싶었지만, 그래도 모든게 비정상인 가운데 그나마 은행도, 운송업체도, 교통경찰도 평소대로 기능을 하고 있는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여기저기 들르는 동안 출출해져 한국 돈까스집에서 테이크 아웃을 시켜 픽업했다. 돈까스집 사장님 말씀이 오늘 마스크를 안쓰고 온 손님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들어 오는 길에는 남편이 피부과 약을 찾으러 가야 한다고 해서 약국에도 들렀다. 줄 서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내일 남편이 혼자 다시 오기로 했다. 그래도, 근처에 한인마트며 식당들이 많아 참 다행이다. 무사히 볼일을 다 마치고 집 뒷뜰에서 우산을 펴고 사온 돈까스를 꺼내 먹으니 소풍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가족끼리 이렇게 잠시나마 나가 돌아다닐 수 있던 날들도 잠시, 16일부터 뉴욕에서는 공식적으로 정말 필요한 곳이 아니면 영업도 중지하고 모임도 금지다. 딸 아이 학교는 4월 20일까지 휴교를 하고, 여름까지도 휴교가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3월 말과 4월에 예정되어 있던 아이의 State wide test도 다 취소되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공식적으로 선포되니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불편하다. 



IMG_1153.jpg

Empty Parking Lot


오늘은 날씨마저 을씨년스럽게 춥고 비바람이 분다. 공식 발표가 나온 후부터는 거리에 눈에 띄게 행인들과 차가 줄었고, 이제는 마스크를 안쓴 사람을 찾기가 힘들어 졌다. 위기 상항은 어떤 이들에게는 공포고, 다른이들에게는 기회다. 있는 자들은 주식이냐, 부동산이냐, 금이냐, 어떤 것을 사고 팔아야 손해보지 않을지 고민하고, 없는 자들은 휴지와 물을 두고 싸운다. 마스크가 귀해 순번제로 줄을 서는 한국에서는 몰지각한 상인이 창고 가득 마스크를 쌓아뒀다 적발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니 모두 정상이 아닌거겠지... 하면서도 왜 하필 휴지와 물일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않았다. 뒤처리야 샤워를 하든지 해서 해결하면 될일이지. 단수가 되는것도 아니고... 하고 코웃음을 쳤는데, 집에있는 정수기가 어제부터 말썽이다. 필터를 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물이 졸졸 약해지다 아예 나오질 않는다. 수돗물을 끓여먹으면 되지만, 막상 식수를 마음 편히 구할 수 없게 되니 불안감이 밀려왔다. 다행히 코디님이 발빠르게 방문해 필터를 갈아주셨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이렇게 남의 일인줄 알고 비웃었는데, 그것이 바로 나의 일이 되어 닥치는 경험을 연이어 하고 있다.


처음 중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단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워낙 더러우니 그렇지… 하며 중국인 입국금지를 해야한다는 쪽이었는데 정작 바이러스를 한국으로 들여오고 대대적으로 퍼트린 것은 한국의 사이비 종교였다. 각국 여러 나라에서 입항 거절을 당한 크루즈 선박이 연료와 물자를 구하러 부산항에 정박한다고 할 때도 왜 굳이 다른 곳에서도 안받아주는 배를 위험하게 받아주는 걸까 하고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후에 그들이 우리도 사람이라며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반성했다. 그리고, 요즘 미국과 유럽에서 아시아인을 통째로 차별하는 경우를 보며 배에 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당한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혼란 속에서 소위 선진국이라 믿었던 각국의 민낯도 드러났다. 며칠 만에 세운 병동건물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진실을 알리겠다고 동영상을 찍어 올리던 모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막고, 덮고, 가리기 바쁜 무책임하고 무서운 공산국가 중국. 관광 일순위이던 이탈리아의 낙후된 의료 시스템과 장인 대신 중국에서 온 기술자들이 생산하고 있는 'Made in Italy' 명품의 실체. 깨끗하고 안전해 어학 연수지로 선호하던 호주에서 국민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시하고, 휴지로 싸우는 모습. 신사의 나라 영국 슈퍼에 사재기 때문에 과일과 채소가 동이나 이틀 밤새 일한 간호사가 식료품을 구하지 못해 좌절하는 상황. 세계 최고라 자부하던 미국의 턱없이 부족한 의료장비와 허술한 의료시스템. 대통령의 무지와 거짓말, 그리고 그것을 믿고 인종차별에 동참하는 국민들...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다며 사회적 거리 두기에 참여하지 않는 연예인,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고 장미꽃 띄운 욕조에서 영상을 찍어올린 마돈나… 위기상황을 처리하는 태도와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에서는 이렇듯 많은 것이 드러난다.



IMG_1169.jpg

Empty Shelves


남의 일인줄 알았던 인종차별과 폭행이 이제 뉴욕 지하철에서, 거리에서도 자주 일어나고 있어 두렵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물리적 공격에 까지 신경써야 하는 상황이 숨막힌다. 마스크, 손세정제, 물티슈 등은 온라인에도 스토어에서도 구하기 힘들지만, 그나마 우리 동네는 물이나 휴지를 빼고는 아직 식료품이 눈에 띄게 동이 난다던지 폭행사건이 일어난다던지 하는 일은 없어 다행이다. 


그래도 먼지 알러지가 있어서 잔기침을 많이 하는 편이라 밖에 나가서는 ‘기침하면 죽는다’라는 정신으로 혹시라도 기침이 나올까봐 최대한 숨을 참고 다닌다. 시국을 겨냥한 자극적인 가짜 뉴스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나라 마트에서 기침하던 중국 여성이 주위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고 시장도 되도록 한국 시장을 간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먹기는 어찌나 많이 먹는지 시장보러 갈일이 더 잦아지는데 알러지 시즌까지 다가와 걱정이다.


지금까지는 인류가 공통으로 느끼는 것이 자본의 힘이었다. 지구 각지에서 기상변화와 오염, 자연재해들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것은 ‘남의 일’이었기에 ‘나’ 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내 일이 아니면 바쁜 일상과 돈의 힘 앞에서 모든 것이 우선 순위 뒤로 밀린다. 그런데, 이번 사태처럼 제 목숨이 걸린 일 눈앞에서 생기니 모두가 지구는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인류의 common good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교만한 인간에게 정신 차리라고 준 벌인지, 아니면 고통받던 지구가 자정작용을 시작하는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번사태가 일상에 대해 돌아보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1 daughter's desk.jpg

아이의 Remote Learning


이번 주부터 온라인으로 시행되는 아이의 Remote Learning 준비도 만만치가 않다. 이미 집에서 하고 있던 iready.com 과 raz-kids.com 도 겨우 따라가고 있었는데 이제는 Google class, science, math, social science, dance, 그리고 optional enrichment 까지… 내 온라인 계정들 로그인 정보도 외우기 버거운데 요놈 계정에 딸린 로그인 정보만으로 벽 한면이 꽉 찬다. 정말 애 여럿 있는 집은 로그인 정보만 해도 엄청날텐데 엄마들이 웬만한 대기업 비서실장보다 더 유능할게다.


천신만고 끝에 컴퓨터는 준비가 되었고, 아이는 무사히 리모트 러닝을 시작한다. 간단한 구글 질문지로 출석을 체크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과제들을 파일로 받았다. 선생님이 되도록 텍스트가 밀리니 질문이나 잡담은 남기지 말라고 했는데 아이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파일이 어디있냐고 물으며 연신 채팅창을 채운다. 그 아이들 뒤로 엄마들의 당황하는 모습이 읽힌다. 딸 아이가 친구가 쓴 글을 읽으며 “이건 얘네 엄마가 쓴거야” 한다 어떻게 아느냐 물으니 “얘는 이렇게 길게 안써. 그냥 Where is it? 이라고 했을거야” 한다. 요놈은 비서를 잘 만나 좍 프린트 해서 책상 위에 올려준 자료를 하나씩 보며 검토만 한다. 나름 운동하라는 지침도 있어서 집안에서 운동도 하고 뭔 캐릭터를 만들라는 질문지 작성도 하고 바쁘다. 그래도 주말 내내 셋업해준 보람이 있다.


뮤지엄들이 다 문을 닫고 아트페어들도 모두 취소되었다. 나도 오늘은 집에서 일을 했다. 늘 나가던 퀸즈 컬리지 도서관 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아 당분간 학교가 패쇄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내가 다니는 뮤지엄 건물은 도서관 건물과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아는 곳에서 확진자가 나오니 더 무섭다. 보스가 학교 폐쇄 전에 들러 급한 파일들을 복사해와 이메일로 전달해 줘 급한대로 소셜 미디어와 웹사이트에서 계획되었던 전시에 관한 포스팅을 다 내리고 뮤지엄을 닫는다는 공지를 띄웠다. 뮤지엄이 쉬는 기간 동안 컬렉션 검색과 미술교육 가이드 검색을 할 수 있도록 링크도 만들어 걸어두었다.


개인적으로 참여하려던 전시들도 다 취소가 되었다. 3월 중순 오픈 예정이었던 그룹 전시에 맞춰 작품을 급히 보내느라 특송비가 $600이나 들었지만, 11월로 전시가 연기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취소되는 것이 아니고 연기되는 것이고, 작품 보관도 해주신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다. 기대하던 스페인에서의 그룹전시 역시 기약없이 연기되었다. 뉴욕주 백림사에서 예정되었던 그룹전도 잠정 연기되었고, 4월부터 시작하려고 계획했던 비영리 단체의 전시 오픈과 워크숍도 하지 않기로 했다. 뮤지엄과 갤러리들은 가상현실 기술을 도입하던지 영상이나 사진들로 전시를 대처하려는 추세이니 이 와중에 나도 영상편집 기술까지 배워야 하는건가 싶다. 


밥도 두배 세배 해야 하고 도시락까지 싸줘야 하니 설거지 지옥이 따로 없고, 하루하루 정신없지만 어쨌든 공포와 혼란 속에서도 아직 큰 탈 없이 일상은 굴러가고 있다. 식구 모두 건강하니 감사하고 상황이 어떻든 하루하루 살아내야 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손도 못대는 상황이다. 그저 벽에 세워진 ‘예의 염치’를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예절, 의리, 청렴,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 바르고 검소하게 무엇이 부끄러운지 알고 예의범절을 지키며 생활하는 자세라… 그 어느 때보다 와닿는 말 아닌가. 


기본에 충실하고 상식과 예의를 지키며 일상을 지내다 보면 무사히 다 지나갈 것이다. 

꽃피는 봄이 반드시 올게다. 



Stephanie_100-2.jpg Stephanie S. Lee (김소연)/화가, 큐레이터 

부산에서 태어나 예술고등학교 졸업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프랫인스티튜트 학부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후 맨해튼 마케팅회사, 세무회사, 법률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딸을 출산하면서 한동안 전업 주부생활을 했다. 2010년 한국 방문 중 우연히 접한 민화에 매료되어 창작민화 작업을 시작했다. 2014년 한국민화연구소(Korean Folk Art)를 창설, 플러싱 타운홀의 티칭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전시도 기획하고 있다. http://www.stephaniesle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