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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 스테파니 S. 리: 다이아몬드 같은 삶
흔들리며 피는 꽃 (34) 새해를 맞으며
다이아몬드 같은 삶
Royal Companion, Stephanie S. Lee, 2017, 13” H x 18” W, Natural mineral pigment and ink on linen
다시 끝과 시작. 정유년이 가고 무술년이 온다.
오랜만에 알람을 키지 않고 아이와 늦잠을 잤다. 냉장고를 닦고, 전자렌지 문에 튄 음식 자국들까지 뽀득뽀득 닦아내고는 첫 몇장 읽고는 끝내지 못했던 책을 펴 든다. 식물에 볕을 쬐주며 고요한 집에 앉아있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특별한 계획없는 하루’,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가 생긴게 이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아이가 앓아 누워있을 때 비로소 아이와 함께 누워 책을 펼쳐들 시간이 생긴다는게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어쨌든 아이가 아픈 것만 빼면 참으로 평화로운 하루다.
올해는 '다사다난하다'는 말이 사무치게 느껴진 한 해 였다. 주어진 일들을 닥치는대로 하며 넘어질듯, 넘어질 듯 불안하게 뛰며 숨차게 보낸 것 같다. 이러저러한 사소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 몸이 먼저 무너질지, 신경줄이 먼저 끊어질지 걱정이 될 정도였는데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하며 버티다 보니 이렇게 무사히 연말이 오기는 왔다. 벌여놓은 일들은 많은데 몸은 하나고, 그렇다고 중도에 포기할 수는 없어 꾸역꾸역 하다보니 심신이 방전상태지만 누굴 탓하랴, 다 내가 자초한 일인 것을.
시간을 쪼개고 쪼개 남은 한방울의 에너지까지 쥐어짜내 일하는 내 마음은 급한데 다들 내맘같지 않으니 서운한 일, 화나는 일, 못마땅 한 일들도 많았지만 모두가 나처럼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란 법도 없지 않나. 다 내 욕심이다. 지나고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은 한해, ‘그래도’ 이만하면 큰 탈 없이 잘 넘긴 한해이다. 황당한 일, 손해본 일들도 많았지만 그만큼 배운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았다.
Breaking a New Dawn, Stephanie S. Lee, 2016, 18” H x 13” W, Natural mineral pigment and ink on linen
손사래를 쳐도 올사람은 오고, 붙잡아도 갈사람은 간다. 가벼이 날아가는 인연들은 날아가도록 두고 나는 내 삶을 차근차근 살아가기로 한다. 사람이든 일이든 어디 내가 계획대로 다 되던가, 이렇게 흘러가는 것도, 저렇게 흘러가는 것도 다 하늘의 숨은 뜻이 있으리라 위로해본다. 큰 병 얻지 않고 큰 사고 없이 무사히 한해를 보낼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정말 감사해야 할 일아니던가.
새해엔 나에게 시간을 좀 더 쓰며 스스로를 돌봐야지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것만 하고 나만 챙기겠다는 다짐이라기보다는 상대의 반응과 상관없이 해 줄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낼 수 있도록 나에게 시간을 들여 마음을 단련하도록 노력해 보기로 한다. 결과는 어찌 할 수 없더라도 결과에 대한 반응은 나의 의지요 선택이라고 했다. 상대의 태도가 어쨌든 나는 내 할 도리를 다 하도록 하자. 이기적이고 몰상식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속상한 일이나 나의 삶이 그들로 인해 전보다 더 인색하고 이기적이 된다면 그것 만큼 슬픈일이 어디 있겠나. 이왕이면 남에게 받는 삶 보다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삶, 나줘줄 줄 아는 삶을 사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
이런 다짐들 역시 마음 먹은대로 잘 되지 않을런지 모르지만 어쨌든 새해니까. 연말은 한해를 돌아보게 하고, 새해는 무언가를 다짐하게 해 주는, 모든 이에게 평화와 안녕을 빌어주는 넓은 마음이 생기는 때이니까… 새해는 모두 평안함 가운데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삶을 꽉 쥐는 한 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