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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이수임: 마누라 떠난 후엔
창가의 선인장 (73) 부부간의 의리
마누라 떠난 후엔
“남편은 컴퓨터 자판도 두드릴 줄 몰라요. 이메일은커녕 북마크에 넣어 준 조중동(신문)만 볼 줄 알아요.”
내가 말하자
“이메일은 간신히 할 줄 아는데 내가 죽으면 어떡하려는지 걱정이야"
라며 선배님도 본인 남편에 대해 말했다.
“별 걱정을 다 하시네요. 남자들은 마누라 떠난 후에 젊은 여자 만나 더 잘 살 텐데요.”
남자들은 조강지처가 죽으면 싱싱하고 예쁜 여자 만나 ‘왜 이제야 만났냐!’며 천생연분인 양 알콩달콩 신혼살림 차린다. 그러나 많은 미국 노인들은 자신의 재산에 애착이 강해 새로운 여자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인지 동네 다이너에 가면 손을 덜덜 떨면서 혼자 끼니를 해결하는 노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자마자 우리 언니 또래의 여자가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는듯 화사하게 웃으며 등장했다. 혼자 외롭게 멀리 있는 아버지를 걱정하느니 젊은 아줌마와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다행이라며 반갑게 인사했다. 아버지는 갖은 정성을 다 쏟는 그녀에게 딸린 여러 명의 자식 학자금, 결혼 비용 심지어 이혼한 자식 재혼 비용까지 댔다. 나는 아버지의 행복을 위한 일이기에 장구 치는 옆에서 살살 북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엄마가 돌아가신 후 우리 형제들은 찬밥 신세가 되었지만, 아버지는 나름대로 우리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결혼하지 않아 서류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내가 이만큼 살도록 물심양면으로도 많이 도와주셨다.
이런 기억을 안고 사는 나는 삶의 원칙이 있다. ‘나 살아 생전에 남편과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자. 죽고 난 후, 나 없어도 세상은 잘 굴러갈 것이다. 그리고 남은 사람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라고 생각하며 산다.
단, 살아생전 모은 재산의 반은 내 몫이다. 남편 몫이야 젊은 여자에게 쓰든 말든 내 몫만은 내가 원하는 곳에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남자들이 젊은 여자에게 미치면 물불 가리지 않을뿐더러 여자 또한 더 많은 재산을 차지하려는 것이 요즘 아니 늘 있었던 세상 인심 아닌가! 누구 말처럼 반만년 찌들어 살다 진짜 돈맛을 보고 모두 돈돈하면서 환장하는 시대 아닌가?
리빙트러스트를 만들었다. 부부 중 하나가 가고 나면 남은 사람에게 전부 남겨지는 것이 아닌, 몫의 반만 받는 것으로. 그러나 그건 세상 뜨고 난 후의 서류상의 일이다. 이런저런 골 아픈 서류처리를 늙은 마누라인 내가 컴퓨터로 다 해결해주니 남편은 과연 행복할까? 그냥 부부간의 행복했던 기억이 서로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는 의리로 연결되리라 믿고 싶다. 아버지가 엄마에 대한 의리로 재혼만은 마다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