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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 이수임: 주근깨 100불 어치만...
창가의 선인장 (78) 자유 부인의 외출
주근깨 100불어치만...
한달에 한번 나는 북클럽에 간다. 이날만큼은 나의 유일한 자유의 하루다. 온종일,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저녁 때가 지나고 밤늦게까지 밖에서 친구들과 놀아도 남편은 잔소리하지 않는다. 잔소리는 둘째치고 밤이 깊어지면 픽업까지 해준다.
이런 황금 같은 날, 친구는 북클럽이 끝나자마자 바삐 플러싱에 갈 일이 있다며 헤어질 의사를 비쳤다. “지금 집에 가면 밥해야 한단 말이야. 어디 가는 데?” 얼굴 점을 빼러 간다고 약속했단다. “그럼 나도 갈게.”
친구가 점을 빼는 동안 함께 간 다른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스킨케어 주인이 얼굴이 깨끗하고 고운 친구는 나 몰라라 하고 내 옆에 앉아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며 말을 시키려고 기회를 보는 듯했다. 얼굴에 주근깨가 쫙 깔린 내 얼굴이야말로 잘 걸렸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주근깨가 많은 얼굴은 견적이 얼마나 나올까요?”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주인은 나에게 관심 있는 시선을 계속 보냈다. 호기심이 발동해 견적을 물었다. “손님은 점 빼는 것으로는 안 되고요. IPL 레이저로 하셔야 해요.”
IPL가 뭔지 확실하진 않지만, 주근깨가 너무 많아 한개 한개 뺄 수 없고 한 꺼풀 벗긴다는 것 같은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래야겠지. 얼굴에 쫙 깔렸으니 어찌 하나하나 수놓듯이 뺄 수 있단 말인가. “그냥 커다란 것만 100불어치 빼 주실 수 있나요? 내 친구처럼.” 친구는 이곳에서 화장품도 많이 사고 얼굴이 나보다 깨끗해 싸게 해주는 것 같았다.
‘살 타는 냄새가 난다. 얼굴이 따끔거리며 아프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예뻐지려면 아파도 참아야지.’ 일어나 거울을 보니 붉은 생채기가 빼지 못한 주근깨 위에 드문드문 솟아있다. ‘점을 뺀 것이 아니라 아예 뜨거운 인두로 지져댔군.’
밖은 어둡고 춥다. 얼굴은 얼얼하다.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나 배도 고프다. 친구와 마주 보며 서로 더 점을 많이 뺐다며 ‘이 나이에, 이 밤에 웬일이니!’ 하며 웃어댔다.
친구들과 밤길을 걸으니 그 옛날 도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던 때가 떠올랐다. 밤하늘을 보며 분식집으로 달려가던 그 시절. 우리는 분식집을 찾아 들어갔다. 우리 앞에 요란한 색채의 떡볶이와 김밥 그리고 오징어 볶음이 놓였다. 내 주머니, 친구 주머니를 탈탈 털어 동전이 마를 때까지 먹고 또 먹었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했다.
뽀얗고 곱던 야릿야릿한 시절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항상 그 시절에 머물다 남편의 퉁명한 소리에 깨곤 한다. “주근깨가 그냥 다 있잖아! 100불어치나 뺐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