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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의 레이디 가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퍼포먼스로 돌아왔다.


2010년 MoMA에서 블록버스터 히트 퍼포먼스 '아티스트는 출석중(The Artist is Present)'으로 화제를 모았던 아브라모비치가 6월 11일부터 8월 25일까지 런던의 서펀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에서 퍼포먼스 '512 시간(512 Hours)'을 한다.


'512 시간'은 서펀타인 갤러리의 빈 공간에 '의자도 없이' 아브라모비치와 방문객의 상호교류 에너지를 실험하는 퍼포먼스. 방문객은 갤러리 안 로커에 소지품을 넣고 아브라모비치와 만난다. 


아티스트들이 'Nothing, Emptiness'을 주제로 작업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존 케이지, 오노 요코, 조셉 보이스, 김아타, 그리고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드... An Art Show About Nothing?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아티스트일 뿐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Marina Abramov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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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Photo: Marco Anelli

 

 

 
2010년 봄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퍼포먼스 아티스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65)의 회고전을 대대적으로 열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으로 70년대 초 유럽에서 퍼포먼스를 시작한 아브라모비치는 ‘퍼포먼스 아트의 대모’로 불리운다. 2010년 3월 14일부터 5월 31일까지 그녀의 40여년에 걸친 문제작들을 퍼포먼스, 사진, 설치, 비디오, 사운드 작업 등으로 총 정리한 MoMA 회고전의 타이틀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아티스트는 출석 중(Marina Abamovic: The Artist is Present)’.

 

 그 중의 센터피스는 아브라모비치가 뮤지엄 2층 매론 아트리움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매일 7시간 동안 관람객을 상대로 서로의 눈을 응시하는 퍼포먼스 ‘아티스트는 출석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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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에서 여름까지 736시간 30분 계속된 '아티스트는 출석중'에서 아브라모비치는 관람객과 마주 앉았다.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종종 보였다.  아브라모비치는 그들의 정서적인 거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Photo: Marco Anelli

 

  

 

 마리나와 마주보기 위해 MoMA 앞에서 밤을 새는 이들이 부지기수였으며, 샤론 스톤, 이자벨라 로셀리니, 제임스 프랭코 등 배우와 가수 비욕도 마리나와 ‘기(氣) 싸움’을 벌였다. 3개월간 736시간 30분간 마라톤으로 지속된 이 퍼포먼스는 75여만명이 지켜봤다.

 

 이 역사적인 퍼포먼스를 담은 매튜 에이커 감독의 전시와 동명의 다큐멘터리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아티스트는 출석 중(Marina Abamovic: The Artist is Present)’이 2012년 13일 맨해튼 필름포럼(Film Forum)에서 개봉됐다. 다큐멘터리는 아브라모비치가 어떤 인물이며, 어떤 작업을 해왔고, MoMA 퍼포먼스는 어떻게 준비되고, 진행되었는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다.

 

*다큐멘터리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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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Photo: Marco Anelli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삶과 퍼포먼스                                                                             


   

▶빨갱이 집안:  "우리 집안은 빨갱이 부르주아였다." 엄마 다니카 로시는 부유층, 아버지 보진 아브라모비치는 농가 출신이다. 몬테네그로에서 태어난 이들은 제 2차 세계대전 때 공산당 빨치산으로 싸워 국민영웅이 된 후 티토 정권 하에서 권세를 누렸다. 어머니는 60년대 베오그라드 혁명미술관의 관장을 지냈다. 

 

▶군대식 가정교육:  1964년 아버지가 집을 나가버린다. 이후 엄마는 마리나와 남동생(?)을 군대식으로 길렀다. 엄마는 종종 회초리를 들었다. 29세까지 엄마와 함께 살았던 마리나는 10시 통금을 지켜야만 했다. 퍼포먼스도 10시 이전에 끝내야만 했다.

  

  

▶공산주의와 종교의 희생물: 할아버지의 형은 오소독스 교회의 주교였다가 성인이 됐다. "나의 어린 시절은 종교나 공산주의에 대한 희생이 전부였다. 이것이 내 속에 각인됐다. 때문에 나에게 비정상적인 의지력이 있는 것이다." 마리나는 어릴 적 싸움을 일삼는 부모 곁을 떠나 6년간 공산주의를 혐오하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미술 공부: 베오그라드의 미술아카데미를 거쳐 자그레브의 미술아카데미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이후 미술아카데미에서 강의했다.

 

 

(도피를 위한 미술: 어릴 적 마리나는 그림으로 도피했다. 처음엔 꿈을 그렸고, 이후엔 사회주의 장난감 트럭 2대가 고속도로에서 충돌하는 것을 그렸다. 그리고 이후엔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을 그렸다. 어느 날 파란 하늘에 12대의 군용 비행기들이 날아가면서 아름다운 선을 그렸다. 마리나는 군 기지로 가서 연기로 하늘에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 비행기에 태워달라고 요청했다. 담당자는 마리나에게 신경쇠약이 있는 것으로 판단,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데려가라고 했다.) 

 

 

▶난 그날 이후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내 주변을 둘러보면서 미술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나의 아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시간이 어느 정도 걸렸다.


 

 

rhythm10-dezan-pozananovic.jpg Photo: Dezan Pozananovic

▶첫 퍼포먼스: 칼 20자루와 녹음기 2대로 손가락을 펴놓고 칼로 손가락 사이를 찍는 러시안 게임이 첫 퍼포먼스였다. 손가락을 베일 때마다 칼을 바꾸어가면서 이 과정을 녹음했다. 20번 찌른 후 녹음기를 틀고,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실수를 카피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병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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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스의 입술(Lips of Thomas, 1974): 자신의 몸을 채찍질하고, 면도날로 몸에 공산당 별을 그린 후 30분 동안 위에선 히터(heater)가 돌고 있고, 얼음으로 만든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퍼포먼스다.

 

 

▶리듬 5(Rhythm 5, 1974): 공산주의의 상징인 거대한 별에 석유를 묻혀 불을 붙인 후 자신은 손톱, 발톱과 머리카락을 자른다. 잘린 것들을 화염에 던진다. 자신의 정치 전통을 강조하면서 타오르는 별은 육체적, 정신적인 정화를 상징한다. 마지막에 자신은 불타는 별 속으로 뛰어든다. 이 퍼포먼스에서 아브라모비치는 산소 부족으로 기절해 병원에 호송됐다.

 

 

▶리듬 0(Rhythm 0, 1974): 퍼포머와 관람객의 관계를 탐구하는 퍼포먼스. 탁자 위에 장미, 깃털, 꿀, 회초리, 가위, 장전된 총 등 72가지 물건을 놓고, 6시간 동안 아브라모비치의 육체를 건드리는 것. 처음엔 조심스러웠던 관람객들이 시간의 경과 속에서 과격해진다. 그녀의 옷을 찢고, 장미의 가시를 배에 찍는가 하면, 머리에 총을 겨누기도 했다. 6시간 후 아브라모비치가 벌떡 일어서서 관람객들을 향해 걸어가자 모두들 직면을 피하기 위해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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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레이와 만남: 1976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아브라모비치는 서독 출신 퍼포먼스 아티스트 우웨 레이지에펜(Uwe Laysiepen, 약칭 울레이 Ulay)를 만난다, 세살 연상이었던 울레이의 생일은 아브라모비치와 같은 11월 30일이었다. 운명처럼 연인이 된 이 커플은 함께 퍼포먼스를 하기 시작한다. (센트럴파크 '게이트' 설치작으로 유명한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 커플도 1935년 6월 13일 같은 날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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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퍼포먼스: 자아와 미술적 정체성을 탐구하는 ‘타자(The Other)’ 시리즈다. 둘의 머리를 묶은 채 등대고 앉아 있는 “Two-Headed Body”(사진) 나체로 방을 뛰어다니는 "Relation in Space" (1976) 뮤지엄 안에서 자동차로 365 바퀴 도는 "Relation in Movement"를 선보였다.


 이어 입을 통해 서로를 호흡하는 “Death Self”는 17분이 지나자 이산화탄소 질식으로 기절하고 말았다. 이들은 개인이 타자의 삶을 흡수하고, 교환하며, 멸망시키는 것을 탐구하기 위한 작품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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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폰더라빌리아(Imponderabilia, 1977): 완전 나체인 두 사람이 문 턱에 마주보고 서있다. 관람객은 그 좁은 공간으로 지나가면서 둘 중 한명의 얼굴을 볼 수 밖에 없다. MoMA의 아브라모비치 회고전에서 재연됐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사이가 나빠지고 있던 즈음 1988년 아브라모비치와 울레이는 중국 만리장성을 걸으면서 정신적인 여정을 하기로 한다. 그러나, 서로 반대편에서 2500km를 걸어 중간에서 만나는 것이다. 아브라모비치는 황해부터, 울레이는 고비사막에서 시작했다. 이들은 중간에서 만난 후 서사적인 작별을 고하게 된다.

 

▶발칸 바로크(Balkan Baroque):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나흘 동안 매일 6시간씩 소의 뼈 1500개를 문지르는 퍼포먼스. 눈물을 흘리고, 노래를 하며, 모국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

 

 

*Balcan Erotic Epic 비디오

발칸 반도의 성과 미신에 관한 짧은 다큐멘터리. 포르노로 볼 수도 코미디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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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쉬운 작품(Seven Easy Pieces, November 2005): 2005년 11월 9일부터 뉴욕 구겐하임뮤지엄에서 7일 동안 60-70년대 퍼포먼스를 재연했다. 브루스 나우만, 조셉 보이스 등의 작품을 비롯 ‘토마스의 입술(Lips of Thomas, 1975)’ 등을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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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는 출석 중(The Artist is Present, 2010): MoMA에서 열린 736시간 30분의 고요한 대면 퍼포먼스. 반복해서 참가한 관람객들도 있었다. 작가가 직접 뮤지엄에 등장해 개개인과 소통한다. 관람객은 그저 미술을 보는 사람이 아니다. 아브로모비치에게 미술은 아티스트, 상대, 그리고 관람객 모두가 참가하는 시간과 공간의 예술이다.  Facebook에 ‘마리나와 앉기(Sitting with Marina)’가 생겼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날 울렸어(Marina Abramović made me cry)” 블로그도 나왔다. 

 

 

▶퍼포먼스아트 보존재단: 아브라모비치는 업스테이트 허드슨에 극장을 매입해서 퍼포먼스아트보존재단을 설립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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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육체에 나르시시즘과 가학성을 믹스하는 아브라모비치.

 

 

 

▶미술의 미래: 앞으로 미술은 오브젝트 없는 미술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면, 순수한 에너지의 소통에서 오브젝트는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MoMA 퍼포먼스에서 아브라모비치와 관람객 사이에 테이블이 있었으나, 후에 제거했다.)

 

▶퍼포먼스와 연극: 퍼포먼스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연극을 싫어해야 한다. 연극은 허위다. 칼도 가짜고, 피도, 감정도 가짜다. 퍼포먼스는 정반대다. 칼도, 피도, 감정도 진짜다.

 

▶퍼포먼스의 기능: 난 나 자신을 변형하기 위해서 한계를 시험한다. 또한 관객으로부터 기(氣)를 받아 변형시킨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관객에게 다른 방식으로 돌아간다. 때문에 관객이 종종 울거나, 화가 나거나 하는 것이다. 파워풀한 퍼포먼스는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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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MA 퍼포먼스에 참가한 유명인사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우 이자벨라 로셀리니, 기타리스트 루 리드, 배우
 알란 리크만, 가수 비욕, 가수 루퍼스 와인라이트, 배우 제임스 프랭코. Photo: Marco Anelli
 

 

 

▶’아티스트는 출석중’: 나를 둘러싼 에너지 영역과 커넥트하기 위해서는 육체/배(boat)를 비워야 한다.

 

▶아티스트는 출석 중: 난 많은 사람들의 눈을 응시하면서 즉각적으로 그들의 고통을 보았고, 느꼈다. 난 그들의 감정의 거울이 됐다. 몸 전체에 문신을 한 커다란 몸집의 한 모토사이클족은 나를 강열하게 쳐다보더니 10분 후에 아기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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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자가 떨구는 눈물. Photo: Marco Anelli

 

 

▶아티스트는 출석 중: 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준비했다. 채식주의자가 됐으며, 깊은 명상을 했고, 나 자신을 정화했다. 내 육체와 정신을 훈련했다. 음식을 조절함으로써 7시간 동안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됐다. 잠도 조절했다. 자고, 깨고, 마시고, 소변 보고, 운동하고, 자고, 깨고 하면서… 그래서 준비하는 과정, 비(非) 퍼포먼스도 상당히 강도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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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이었던 울레이가 MoMA 퍼포먼스에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은 규율을 깨고 손을 잡았다. 12년간
동거동락해온 커플은 1988년 만리장성 퍼포먼스 이후 헤어졌다. 울레이는 음주와 마약에 빠졌고,
아브라모비치는 독자적인 아티스트로 정상에 올랐다. Photo: Marco Anelli

 

 

 

▶마돈나와 레이디 가가: 마돈나는 미술과 퍼포먼스에서 베껴가면서 한번도 내 퍼포먼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더라. (내 퍼포먼스에 대해 공식적으로 말한) 레이디 가가는 더 관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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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학? 퍼포먼스(1969): 23세에 강도높은 정치적인 퍼포먼스를 했다. 칼로 손가락 사이를 찍고, 몸에는 공산달 별을 그렸다. 당시엔 퍼포먼스아트는 신체미술(body art)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 (조셉) 보이스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게 됐다.

 

 

▶퍼포먼스 아트: 퍼포먼스 아트는 살고, 살아남아야 한다. 그건 벽에 걸 수 없다. 우리가 퍼포먼스를 하지 않고, 재창조하지 않는다면, 미술하는 놈들, 연극하는 놈들, 그리고 무용하는 놈들이 크레딧도 주지 않고, 우리를 베껴먹을 것이다. 난 퍼포먼스 아트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구역질이 난다. 팝-비디오하는 놈들도 베끼고 있다. 난 젊은이들을 불러와 (조셉) 보이스와 (비토) 아콘치의 아름다운 작업을 경험하게 만들고 싶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의 작품을 불러와 퍼포먼스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난 아티스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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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디 셔만과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공통점은 작가의 육체가 아트의 소재라는 것,
 차이점은 차려입기와 벗기다. 유고슬라비아 판 'Elle' 표지로 등장한 아브라모비치. 

 

 

 

아티스트인가 나르시스트인가? 비하인 더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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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극한까지 몰고가는 아티스트 아브라모비치. 

 

 

▶MoMA 출연료: ‘아티스트는 출석 중’ 퍼포먼스로 아브라모비치가 받은 사례비는 10만 달러. 회고전이 열린 3개월 간 MoMA의 관람객은 75만명에 달했다. 아브라모비치가 회고전 준비에 걸린 기간은 반년이며 자신의 돈까지 들였다고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관장에게 러브레터?: 아브라모비치는 회고전이 결정되기 전 글렌 로우리 MoMA 관장에게 보낸 E-메일에서 “어제 저녁식사에 와주셔서 정말 좋았어요. 당신은 몸매가 좋으며, 완전히 섹시해요”라고 썼다. 이 사실은 아브라모비치의 조수였던 제임스 웨스트콧이 아브라모비치 전기에서 폭로했다.

 

▶MoMA 큐레이터: 회고전을 기획한 클라우스 바이젠바흐 큐레이터는 다큐멘터리에서 “처음에 마리나가 날 사랑하는 줄 알았다”면서 마리나는 사람들과 사랑에 빠진 것처럼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고 밝혔다. 마리나는 유혹적이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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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 회고전을 기혹힌 클라우스  바이젠바흐가 2010년 5월 31일 '아티스트는 출석 중'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울레이와 결별 이유: 만리장성 걷기 퍼포먼스 후 서사극처럼 헤어진 진짜 이유는 울레이가 25세 통역자를 임신시켰기 때문이다. 울레이는 또한 다큐멘터리에서 마리나도 자기가 아는 사람과 바람을 피웠다고 폭로했다.

 

▶울레이와 결별 이후: 마리나는 다큐멘터리에서 울레이와 헤어진 마흔살의 아티스트는 자신이 뚱뚱하고, 못생겼고, 아무도 원치 않는다는 생각에 빠졌다. 그녀는 명품 부티크에 가서 옷을 왕창 샀더니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고백했다. 이후 유방 확대 수술도 했다. 그녀는 ‘기분이 좋아지는데 테크놀로지를 이용 못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장례식 유언: 아브라모비치는 자신이 죽으면 관을 베오그라드, 암스테르담, 뉴욕에서 장례식을 치르라고 유언에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조문객들은 모두 밝은 색의 옷을 입을 것을 요구했다. 죽음 후까지 관람객에게 명령하는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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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해골과 누드,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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