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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 이수임: 멜랑콜리 맨 Melancholy Man
창가의 선인장 (81) 고개숙인 남자
멜랑콜리 맨
“아니 취소가 됐다고? 모처럼 만의 부부동반 초대였는데!” 아쉬운 듯 말하고는 창밖을 내다보는 남편의 구부정한 등이 씁쓸해 보인다.
모임에서 한 친구가 부부동반 초대를 했다.
“함께 오라는데 갈 거야?”
“가야지.” “정말?”
“나이 들면 오라는 데도 없어. 부를 때 군소리 말고 달려가야지.”
예전 같으면 가긴 어딜 가. 혼자 갔다와 하며 대꾸도 하지 않던 남편이었다. 많이 변한 남편이 좋으면서도 불안하다.
내 또래의 여자들은 여러 교양 모임에 다니느라 바쁘다. 그러나, 남편 또래의 친목 모임은 거의 없다. 남편의 말 상대라고는 LA에 사시는 시어머니와의 전화 통화다. “날씨 참~ 좋다!”라고 시작하는 이틀에 한 번꼴로 전화하신다. “다 어머니 복~이에요.”로 위로하며 그나마 효도랍시고 한다. 워낙에 말주변이 없는 시어머니가 나이 드시니 같은 말만 반복하신다. 서너 달은 날씨에 관해서 그리고 서너 달은 LA 오라고. 얼마 전에 갔다 왔는데 잊으셨는지 또 오라고 하신다. 한동안은 내가 전화를 하지 않는다고 성화셨다. 이제는 아예 나를 잊으셨는지 찾지도 않는다.
남편은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이 하루 10시간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다. 저녁 먹으며 나에게 몇 마디 하는 것이 전부다. 이따금 아이들과 만나 외식할 때면 말이 많다. 아이들도 아빠가 말 할 상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장단 맞춰 거든다. “고만해. 나도 말 좀 하게.” 하고 내가 끼어들면 아이들은 “아빠가 신이 나서 그러잖아요.” 하며 편을 든다.
외로움을 타지 않는 남편이지만, 사람들만 만나면 말이 많다. 자랑도 많다. 왠 헛자랑이냐고 핀잔을 주곤 했다. 그러나 요즈음은 “하고 싶은 말 다해. 사람들은 남 이야기에 관심도 없어. 기억도 하지 못하고. 듣기 싫다면 그만이지 뭐.”하며 말리지 않는다.
우리 남편만 그 초대 날짜를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친구 남편도 그날만 기다리고 있었단다. 나이 든 남자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엔 가난 속에서 제대로 입고 먹지 못했다. 이민 와서는 미국 생활 적응하느라 고생했다. 결혼해서는 가정을 이끄느라 애썼다. 나이 들어 여유는 생겼지만, 어쩌다 불러 주는 곳에 가면 성인병이다 뭐다해서 주저하며 내 놓은 음식을 함부로 집지 못한다.
친구 남편이 요사이 꾸벅꾸벅 졸아서 한약을 지어 먹였단다. 우리 남편도 점심 먹고 산책하고 돌아와서는 봄볕에 내놓은 병아리처럼 존다. “보약 먹을래요?” “마누라나 먹어. 난 그저 마누라가 옆에 있는 것이 보약이야?”
이 사람이 왜 이래. 정말 이상하네. 예전엔 옆에 있는 나를 귀찮아하더니. 아무래도 보약을 먹여야겠다. 안 먹겠다고 버티면 저녁상이라도 신경 써서 차려줘야지. 마음이 짠한 것이 불쌍하다. 부부는 오랫동안 함께 살아야 그 진가를 알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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