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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한혜진: 나의 고향 서울, 그리고 DDP
에피소드 & 오브제(4) 나의 고향 서울, 그리고 DDP
한국 여인네 치마폭 같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역 마 살
어릴 적 어떤 점쟁이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던진 말이었다. 운세 감정이 끝나고 어머니께서 복채를 내밀자, 곁에 있던 나를 보더니 마치 덤을 챙겨주시듯, 한마디 해 주신 거였다.
Photo: Hye Jin Han
“이 딸은 큰 물을 건너가서 살겠어.”
믿거나 말거나 하면서도 그말이 내 귀에 쏘옥 들어 온 것은 사실이었다. 점이란 게 그런거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맞추어 보니 맞아 들어가는 것…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을 등지고, 타지에서 삶을 개척하게 되는 괘를 일컬어 역마살이라 하는 것 같다. 그 말대로 나는 뉴욕에 살게 되었나 보다.
이제는 뉴욕에서 산 세월이 한국울 떠날 때의 나이를 웃도는 그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그런가 이번 한국 방문에서는 타향이라 느꼈던 뉴욕이 도리어 고향처럼 느껴지고, 고향이라 느꼈던 서울이 타향으로 여겨지는 그런 감정에 휩싸였었다. 그건 아마 템포때문이었으리라. 서울에서의 삶의 스피드는 엄청 빨라져 있었으니까.
이름 붙이자면 ‘강북소녀’ 였던 나에게 새롭게 단장한 광화문이나 화재 후 복원된 남대문의 모습은, 마치 집은 옛날 그대로인데 그 곳에서 만난 생경하지만 화사한 치장의 새 엄마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현대화라는 새엄마는 의도적으로 꾀죄죄한 세월의 더께를 많이 걷어낸 터였다. 일반적으로 살림이 피게 되면 가재도구가 늘어나는 것처럼, 크고, 세련되고, 육중한 그래서 서울의 위용을 드 높일 수 있는 건축물에 대한 구상이 행정가들의 머릿 속에서 나왔나 보다. 지난 번에 서울 시청사 건물이 새롭더니, 이번엔 옛 동대문 운동장 자리에 개장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가 마침 개장 소식을 알렸다.
Photo: Hye Jin Han
이번 한국 방문에서 DDP의 개장과 함께 할 수 있던 건 행운이었다. 고래 뱃 속 같은 그 곳을 구경하며 나는 다시 고향을 찾을 수 있었으므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이랄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유연한 동선을 기반으로 살림터, 알림터, 배움터라는 기본적인 맥락이 광장과 미로 속에 얽혀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자하 하디드라는 유명 (여성) 건축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것은 4만 5천장이 넘는 알루미늄 패널을 크기를 달리하며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며 우람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아름다움이란 강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으가? 그 강함이 부드러움 속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자하 하디드는 그 아름다움을 거대담론적인 구조물로 보여준 것이 아니라 마치 개개인의 자발성의 발현으로 이루어지는 건강한 사회와같은 디테일의 미학으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21세기는 여성성의 시대라고 한다. 여성성이란 곧 포용하고 아우르는 힘이다. 우주선이나 아나콘다라고 불리기도 하는 DDP의 별명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런데, 왜 자꾸만 나는 DDP의 모습에서 우리 여인네들의 치마폭이 연상되었는지 모르겠다. DDP 안에 살림터라 명명된 장소가 있어서인가? 어느 여성학자가 살림이란 살려내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나는 의연하게 가계를 살려내면서 꾸려 온 한국 여성의 솜씨가 DDP에 배태되길 기대해 보는 것이다. 결국 문화란 것은 한 민족의 솜씨의 다른 말인 것이다.
Photo: Hye Jin Han
이젠 서울엔 또 하나의 멋진 ATTRACTION PLACE가 생겨 났다. 계단을 오르고, 둘레길을 걸으며, 광장에 이르는 짧은 여정일지라도 한국인에게나, 외국인들에게 한 박자 에둘러 갈 수 있었던 ‘여유와 자족’ 이라는 우리 문화의 숨결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 되길 기원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부정형의 구조물이기에 우리의 문화를 접목시키기엔 훨씬 신축성있는 조건을 지녔다고 볼 수도 있겠다. 우리 한식이 양식기에도 아주 잘 어울리는 음식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런 마음, 후련해지는 마음, 흐믓함을 동반한 안위의 감정, 이것은 타향살이를 해 본 사람만이 고향에서 어깨 쭉 펴고 해 볼 수 있는 깊은 심호흡과 같은 것이었다.
“잘 되야 될텐데, 잘 될거야.”
누군가가 내가 생각하는 똑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Photo: Hye Jin Han
한혜진/수필집 '길을 묻지 않는 낙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