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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김미경: “이 그림 저 주세요~. 지금 찢어 주세요~”
서촌 오후 4시 (12) 우리 집이 담긴 풍경
“이 그림 저 주세요~. 지금 찢어 주세요~”
지난 여름 전라도 쪽으로 여행 갔을 때였다.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아침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던 게스트하우스 관리인에게 내 스케치북 그림들을 펼쳐 보여줬다.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갑자기 그 관리인이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어머머머…이게 웬일이래요? 정말 이게 웬일이래요? 이거이거이거 우리 집이에요. 맞아요. 우리 집이에요. 이 집 말이에요~~.”
지난해 3월 북촌으로 스케치 나갔을 때 그린 한옥이었다. 북촌 골목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어느 집 뒷문 계단에 올라앉아 그렸다. 처음 펜으로 그려보는 한옥이었다. 요즘은 좀 익숙해졌지만 그땐 기와 그리기가 왜 그렇게 어렵던지. 말 그대로 기와 한 장 한 장을 한 땀 한 땀 그렸었다. 이리저리 맞춰보니 정말 그 관리인 집이 맞았다.
흥분해서 “이 그림 저 주세요~. 지금 찢어 주세요~” 하신다. 나도 너무 희한한 인연에 주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솔직히 친한 사이도 아닌데 몇 날 몇 일 그린 그림을 쑥 내밀기엔 너무 아까웠다. “다 완성한 후에 드릴께요~” 하고는 잊어버렸다.
집을 그리다 보니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집을 그린 그림을 참 좋아하는구나~’ 하는 걸 느낀다. 얼마 전 페이스북으로 내 그림을 봐왔던 어떤 분이 자신이 초등학생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살았던 집을 그려 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해 오기도 했다. 부모님 결혼기념일에 선물하고 싶어서란다.
동네 한 친구도 자신의 집과 사무실로 쓰는 집을 그려주면 전시회때 그 그림을 꼭 사겠다고 페이스북 댓글로 공언하기도 했다.ㅎ 옥상에서 그린 동네 그림을 동네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자기 집이 뒷담 정도로만 그려져 있어도 까르르까르르 행복해했다...자신의 집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정 붙이고 오래 산 집은 자신의 분신처럼 여겨지는 게 아닐까? 싶다.
P.S. 저 그림을 희한한 인연의 그 관리인분께 그냥 선물로 드려야 할지(사실 나는 처음 보는 분이었지만 내 친한 친구가 건너건너 아는 분!), 아님 전시회에 걸어두고 연락해서 사가시라고 해야 할지…ㅎㅎ
김미경/'브루클린 오후 2시' 작가
대구에서 태어나 서강대 국문과와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를 졸업했다. 여성신문 편집장,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2005년 뉴욕으로 이주 한국문화원 기획실에서 일했다. 2010년 뉴욕 생활을 담은 수필집 '브루클린 오후 2시'를 펴냈다. 2012년 서울로 부메랑,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2014년 3월부터 화가로서 인생의 새 챕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