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728)
- 강익중/詩 아닌 詩(83)
- 김미경/서촌 오후 4시(13)
- 김원숙/이야기하는 붓(5)
- 김호봉/Memory(10)
- 김희자/바람의 메시지(30)
- 남광우/일할 수 있는 행복(3)
- 마종일/대나무 숲(6)
- 박준/사람과 사막(9)
- 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49)
- 연사숙/동촌의 꿈(6)
- 이수임/창가의 선인장(149)
- 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65)
- June Korea/잊혀져 갈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12)
- 한혜진/에피소드&오브제(23)
- 필 황/택시 블루스(12)
- 허병렬/은총의 교실(101)
- 홍영혜/빨간 등대(70)
- 박숙희/수다만리(66)
- 사랑방(16)
(579) 이수임: 구름이 흘러가듯
창가의 선인장 (114) Vagabonds
구름이 흘러가듯
“와! 이 사진 근사하네. 어떻게 이런 기막힌 순간을 포착한 거야?”
사진작가인 친구에게 물었다.
“생각 이전에서 찍은 거야.”
“무아? 멍 때리는 상태를 말하는 거야?”
“아니, 생각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
대포만한 카메라를 들고 사진작가 지시에 따라 시녀처럼 포즈를 잡은 화려하거나 음습한 사진이 아니다. 넣을 것을 넣고, 뺄 것을 빼면서 전체적 화면을 조정해 찍은 사진 또한 아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아이폰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녀의 사진을 보면 긴장이 풀리고 복잡함이 단순해지고 싸늘함이 포근해진다.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거야? 생각을 좀 하고 행동해야지.”
어릴 적 주위 사람들의 꾸지람으로 생각을 끊임없이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도록 훈련해야 한다는 뜻인가?
친구와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주중에 집을 떠나 이곳저곳 차 닿는 데로 간다. 고삐 풀린 말처럼 달리다가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춰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바닷가, 산, 호수 그리고 푸른 초원으로 정처 없이 떠돈다. 좋은 곳이 있으면 하룻밤 묵을 수 있게 간단한 세면도구도 챙겼다. 계획도 예약도 없이 기대하지 않은 그 어떤 것과 맞닥뜨리고 싶어서 길을 잃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식당 길가에 있는 식탁에 앉아 배를 채우고 길가는 사람들을 멍청히 구경한다. 와인너리에서 건내주는 잔을 주는 대로 마시며 얼떨떨한 취중에 횡설수설 서로 쳐다보며 히죽댄다.
그녀가 물결치는 파도를 보며 ‘생각 이전’으로 몰입하는 동안 나는 뜬구름을 바라보다가 베트남 승려인 틱낫한의 죽음에 대한 말씀을 떠올렸다.
‘구름에게 묻습니다.
“생년월일은 언제입니까? 태어나기 전에 어디 있었습니까?”
구름은 태어나기 전에 바다 표면의 물이었습니다. 아니면 강이었는데 증기가 되었습니다. 태양이 증기를 만들기 때문에 태양이기도 했습니다. 바람도 거기에 있어 물이 구름이 되도록 도와줍니다. 구름이 비나 눈 또는 얼음으로 바뀔 것입니다. 구름은 손실되지 않습니다. 비가 되고, 비가 풀이되고, 풀이 소가 되고 우유가 되고, 아이스크림이 됩니다.’
그녀도 좋고 나도 좋은 우리의 만행(萬行)은 구름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떠돈다. 그녀의 아이폰에 담긴 파도가 구름을 닮았다. 구름은 아이스크림을 닮았다.
“친구야, 우리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이수임/화가
이수임 작가의 글이 너무 좋아요. 시간 날 때마다 친구와 같이 차를 몰고 구름도 친구로 해서 다니는 자유가 부럽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습니다. 이수임 작가는 늘 나에게 challenge를 줘서 마음이 한껏 젊어집니다. 문득 박목월 시인의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란 시가 떠오릅니다. 구름을 따라가면 어디가 될까요? 엄마가 가신 나라가 될까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