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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이수임: 언니의 영주권 오디세이
창가의 선인장 (3)
언니의 영주권 오디세이
"언니 영주권 챙겨와!"
언니와 형부 그리고 우리 부부는 차를 몰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천 섬을 돌고 캐나다로 가서 갓 받은 따끈따끈한 언니와 형부의 영주권 효능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였다.
Soo Im Lee, Crouching, 2010, gouache on paper, 24 x 18 inches
천 섬을 구경하고 다리를 건너 캐나다로 들어가려고 접경지역에서 얼쩡거리다 경찰의 검문을 받았다. 약간의 걱정을 동반한 심정으로 영주권을 보여주니 ‘즐거운 여행 잘하라.’며 보내주는 것이 아닌가. 이 영주권을 받으려고 그리도 애타게 기다렸던 긴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언니는 딸을 통해서 영주권을 받았다.
언니 딸, 내 조카는 나와는 반대로 여자 키 치고는 큰 편이다. 친정아버지 왈 ‘나는 키가 작아서, 조카는 키가 커서 한국에서는 결혼하기 쉽지 않으니 떠나는 것이 낫겠다.’는 견해 또한 우리 둘이 한국을 떠난 작은 이유 중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6.25 전쟁을 혹독히 겪은 친정 엄마는 늘 "전쟁이 나면 딸들이 군인들에 의해 망가지기에 십상이고, 딸들도 공부를 많이 시켜야 한다"며 유학을 권장했다. 친정아버지 또한 "사람은 넓은 세상을 둘러봐야 인간이 된다"는 신조인지라 자식들의 결점을 유학 보내는 것으로 치유하려 했다.
조카는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으로 유학 왔다.
공부도 공부지만 결혼도 해야 하는데 뉴욕에서 결혼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키 크고 인물은 좋은데 애교가 없어서인지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한 조카의 모습이란 ‘방안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보릿자루’ 같았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남자를 소개받았지만, 반응이 없는 조카가 애를 태웠다. 부모가 미국에 없다는 것이 결혼 조건의 단점 중의 하나였기에 언니와 형부는 방문 비자로 미국에 왔다.
세 번째 소개받은 남자를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아 하는 조카를 더 만나 볼 것을 강요했다. 남자 쪽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왔다. 조카도 서너 번을 더 만나더니 마음을 주는 듯했다.
어릴 때 이민 온 조카사위와 다 커서 유학 온 조카는 다른 문화권에서 자랐기 때문에 맞을 리 없겠다는 불안한 요소가 없지는 않았지만, 워낙에 조카사위가 성실하고 조카 또한 나무랄 것이 없는지라 둘은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잘 산다.
조카를 결혼시키느라 애쓰는 사이에 언니와 형부는 불법체류자가 되었다. 난 조카에게 빨리 시민권을 받아 부모에게 영주권을 해 줄 것을 또 강요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조카사위가 서둘러 언니 부부도 영주권을 받았다.
조카를 결혼시키고 언니가 영주권을 손에 쥘 때까지의 그 오랜 세월을 되돌아보니 어찌 그리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는지. 한끝의 오차만 있었어도 언니는 불법으로, 조카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방구석에 우두커니들 있을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