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4.09.17 19:43

(51) 이영주: 황홀했던 '사우스 커튼우드 크릭' 트레일

조회 수 1550 댓글 0

뉴욕 촌뜨기의 일기 (9) 몬태나 마지막 편



황홀했던 ‘사우스 커튼우드 크릭’ 트레일 


한쪽은 깎아지르게 키 큰 나무숲인데 한쪽에선 촬-촬 소리 내면서 강물이 흐르고, 거기다가 산 굽이굽이마다 넓은 목초지와 초원이 있어서 그 초원에는 온갖 색깔의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으니 나무와 꽃향기,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아, 여기가 바로 극락이구나! 황홀한 기분으로 걷고 또 걷게 됩니다. 뉴욕의 산에선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이 온몸을 나비처럼 가볍게 들어주는 산행입니다. 


9IMG_0082.JPG Photo: Young-Joo Rhee

태나 이야기에서 산 얘기를 뺄 수가 없습니다. 지난 번에 간단히 ‘드링킹 호스 마운틴’ 얘기를 조금 했습니다만, 조금 더 보충하고 다른 산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드링킹 호스 마운틴(Drinking Horse Mountain)’ 트레일은 왕복 약 3마일 코스입니다. 반 마일 정도 평탄한 길을 가다가 마지막 0.7마일은 계속 올라가기만 하는 경사가 좀 있는 트레일입니다. 도심에서 가까워서인지 전망대마다 벤치가 하나씩 있었습니다. 벤치에는 그 벤치를 기증한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가까운 산들은 입구서부터 군데군데 개똥을 넣어 버릴 비닐함이 쓰레기통과 함께 비치되어 있습니다. 참 친절한 주 정부입니다. 

트레일은 길 폭이 뉴욕 트레일의 세 배는 될 성싶습니다. 꼬불꼬불 올라가는 산길이지만, 길 폭이 넓은 것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산의 특징은 나무들 거개가 침엽수라는 점입니다. 사막지대 기후라서 그런가 봅니다. 드링킹 호스 마운틴 트레일은 높은 산이 아니라 우거진 숲은 아니어서 숲과 숲 사이의 공간이 제법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공간들을 채우고 있는 것이 바로 야생화들이었습니다. 하양, 노랑, 분홍, 보라색 등의 야생화 천국이었습니다. 한 산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야생화들이 피어있는 모습은 뉴욕에선 볼 수 없는 광경입니다. 저는 야생화 사진 찍느라 수없이 걸음을 멈춰야 했습니다. 신통하게도 동행한 막내는 암말 않고 잘 기다려 주었습니다. 

9IMG_0072.JPG Photo: Young-Joo Rhee

하산 길은 산을 에둘러 내려오는 트레일을 택했습니다. 경사도 덜하고 걷기에도 편해서 반 마일 가량 트레일이 더 길었지만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매우 완만한 트레일이라 아마도 시니어들을 위한 트레일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망대도 많았고, 그만큼 벤치도 적지 않았습니다. 올라갈 땐 헉헉 숨이 차서 수없이 쉬면서 숨을 조절해야 했지만, 내려올 땐 먼 산의 정경까지 감상하면서 즐겁게 걸었습니다. 

이 산의 이름이 ‘드링킹 호스 마운틴’인 까닭은 다른 산에서 보면 이 산의 모양새가 말이 목을 구부리고 물을 마시는 형상이라서 그렇게 붙여졌다고 합니다. 모처럼 하이킹을 하고 나니 흘린 땀만큼이나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9IMG_0067.JPG Photo: Young-Joo Rhee


우스 커튼우드 크릭 트레일(South Cottonwood Creek Trail)은 막내가 제일 좋아하는 트레일이라고 합니다. 딸이 사는 보즈맨에서 차를 타고 남서쪽으로 30분 가량 가면 되니까 가까운 곳입니다. 막내 친구 젯슨이 함께 했습니다. 젯슨은 변호사인데, 아직 싱글입니다. 요리에도 관심이 많고 뛰어나 자주 만나는 친굽니다. 전문직에 요리 실력까지 겸비했으니 누가 신랑이 되든 봉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준재입니다. 하하.

트레일 입구까지 2마일 가량은 대단한 숲길이어서 얼마나 깊은 산인지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몬태나 산들은 먼저도 말씀드렸듯이 길게 쭉쭉 뻗은 침엽수 숲입니다. 수종이 ‘파인 트리’들이라고 하는데, 그 종류가 무지 많습니다. 키가 보통 20m, 30m 되는 엄청난 키다리들이어서, 사진을 찍어도 끝까지 화면에 잡는 게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전화기로 찍는 것이니 그 멋진 광활한 풍경을 담아 보여드리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트레일은 참으로 평평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몬태나 트레일의 특징은 바닥에 돌이 없는 것입니다. 큰 바위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닥은 그냥 평평한 흙길이라 마냥 걸을 수 있습니다. 무릎이 아플 일도 전혀 없어서 저는 아프던 무릎이 오히려 나아져서 왔습니다. 보통 트레킹하는 사람들은 2번째 다리까지 밖에 안 간다고 하는데, 우리는 3번째 다리까지 갔습니다. 3.2마일입니다. 적당한 앉을 자리를 찾아 거기서 좀 더 올라가긴 했습니다. 

9IMG_0111.JPG Photo: Young-Joo Rhee

막내는 오늘 우리가 왕복 7마일을 트레킹한 것이라며 엄마를 대견해 했습니다. 6마일과 8마일 지점에선 다른 트레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그곳까지 가는 사람들은 산악자전거 타는 사람이나 육상 선수들입니다. 워낙 트레일이 평평하고 기니까 산악자전거 타는 사람들이나 육상 선수들이 많이 이용하는 트레일이라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산악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두 번째 다리 가는 길은 유난히 좁고 꼬불꼬불하고 오른쪽이 깎아지른 낭떠러지여서 사실은 강물 소리만 들릴 뿐 강물도 보이지 않는 구간이 0.5마일쯤 됩니다. 가장 힘든(?) 구간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말 타는 여성 두 명을 만났습니다. 길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데, 그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길에서 말을 만나니 난감했습니다. 내려오던 말 가진 여성들이나 올라가던 여러 명의 사람들이 한참동안 묘안을 내느라 지체했습니다. 

어쨌든 말이 지나가야 하므로 말을 갖지 않은 우리 산행자들이 경사진 산 쪽에 발을 의지하고 비켜서서 무사히 그 고비를 극복했습니다. 참으로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만일 말이 뒷발질이라고 하면 어쩌나 겁이 났는데, 말들은 훈련 받은 말들이라 순해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산에서 말 타는 사람은 영화에서 말고 첨 봤습니다.


9IMG_0120.JPG Photo: Young-Joo Rhee


리 이야기를 하니 웬 다리인가 궁금하시지요? 이 트레일은 갤러틴(Gallatin River) 강줄기를 끼고 올라갑니다. 처음엔 왼쪽으로 강이 흐르다가 첫 번째 다리를 건너면 강은 오른쪽으로 흐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다리를 건너면 다시 왼쪽으로 물줄기가 바뀝니다. 

한쪽은 깎아지르게 키 큰 나무숲인데 한쪽에선 촬-촬 소리 내면서 강물이 흐르고, 거기다가 산 굽이굽이마다 넓은 목초지와 초원이 있어서 그 초원에는 온갖 색깔의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으니 나무와 꽃향기,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아, 여기가 바로 극락이구나! 황홀한 기분으로 걷고 또 걷게 됩니다. 뉴욕의 산에선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이 온몸을 나비처럼 가볍게 들어주는 산행입니다. 목초지에 피어난 기기묘묘한 들꽃 풍경은 카메라에 담으면 그 아름다움이 살아나질 않아서 특별한 녀석들만 클로즈업해서 보여드리는 게 너무나 아깝습니다.  

막내와 젯슨은 하이킹 폴을 갖지 않은 저를 위해서 산을 오르던 첫 구간 내내 나무 지팡이를 찾느라 고군분투했습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고목들에서 여러 개의 지팡이 감을 사용해본 후에 그나마 손에 맞고 잡기에도 비교적 부드러운 지팡이를 구했습니다. 몬태나 사람들은 폴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등산화도 신지 않고 보통 운동화 신은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좀 갖춘다는 사람들이 그나마 트레킹 운동화를 신습니다. 제 딸도 일반 운동화만 신고 다니다가 제가 성화를 해서 트레킹 운동화를 샀습니다. 신어 보더니 이젠 안 미끄러진다며 좋아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트레킹 한다는 게 거의 뜀박질 수준입니다. 경이롭습니다.

몬태나에 이렇게 길고 편안한 트레일이 있다는 게 샘이 나도록 부러웠습니다. 평생에 이처럼 많은 야생화에 파묻혀 보긴 처음입니다. 황홀하고 또 황홀한 산행이었습니다. 그후 블루 스카이의 우젤 폭포도 가고, 형섭(*주: 화가 신형섭씨)이네 식구들 왔을 때는 저수지가 있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가는 산(산 이름을 잊었습니다)에도 갔습니다. 그래도 제겐 사우스 커튼우드 크릭 트레일이 최고입니다.


rhee100.jpg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