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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 허병렬: 송편과 터키
은총의 교실 (73) 감사의 계절
송편과 터키
송편 사진: 나무위키/ Oven-Roasted Turkey 사진: 해리 앤 데이빗 https://www.harryanddavid.com
송편이 담긴 그릇이 있다. 이것을 에워싸고 어린이들이 모여섰다. ‘먹고 싶지요. 마음대로 집어 먹어도 돼요’ 어린이들이 서로 얼굴을 본다. 한 어린이가 하얀 송편 하나를 집더니 먹기 시작한다. 또다른 어린이도 송편을 맛본다. 몇 어린이들도 흉내를 낸다. 그래도 끝까지 보고만 있는 어린이 몇 명이 남는다. 흰 송편은 다 없어졌지만 쑥송편은 그대로 남아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송편을 본 일도 없는 어린이가 있다. 본 일은 있어도 먹어본 일이 없는 어린이도 있다. 송편을 먹어 보았지만 쑥송편을 처음 보는 어린이도 있다. 전에 먹어본 송편 맛을 기억하고 그 맛을 즐기는 어린이가 있다. 그런가 하면 송편 맛은 별로 모르지만, 다시 맛보는 어린이도 있다. 끝까지 처음 맛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어린이도 있다.이 모든 것은 체험을 했느냐, 첫 체험이냐에 달려 있다. 우리 생활의 모든 행동은 체험을 통하여 익히게 된다. 학교 교육도 학생들에게 실제로 체험하면서 배우도록 교사가 유도한다. 지식과 이론은 실제로 체험하면서 확고하게 자기 것이 된다. 송편 한 가지만 보더라도 학생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들의 가정 생활이 여실히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
송편은 무엇인가. 일년 내내 먹어볼 수 있지만, 송편은 추석의 특별 음식이다. 추석은 한민족의 명절 중의 명절이다. 이 날을 ‘한가위’라고도 하는데 그 어원은 ‘큰 갚음’이란 뜻이라고 한다. 누구에게 무엇을 갚나. 조상 어른과 자연에 대한 감사이고, 그 갚음을 하는 날인 것이다. 그래서 추석에는 온 가족이 모여서 선조들에게 햇밥과 햇과일을 올리는 것이다. 송편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렇다고 큰 은혜를 어찌 갚겠는가만.
왜 한국의 고속도로는 추석을 전후하여 차로 꽉 차는가. 명덜은 다 같이 모여야 명절이어서 가족들이 모이는 것이다. 함께 모여서 조상어른과 자연에 감사하는 것이다. 명절은 한 가족의 행사가 아닌, 한민족의 행사이기 때문에 그 뜻이 더욱 크다. 추석에 민족혼이 담겨있다.
그런데 미국내의 추석은 어떤가. 그 존재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날짜조차 희미하다. 미국내 발행 달력에는 음력 날짜가 없기 때문이다. 설사 그 날짜를 안다고 하더라도 다 같이, 여럿이 즐기지 않기 때문에 멀쑥해질 수 밖에 없다. 큰 도시에서는 다양한 행사를 펼쳐 그 면목을 살린다. 그러나 중소도시나 시골에서는 쓸쓸한 가족 행사가 되어 버린다.
흔히 추석은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같다고 한다. 그 뜻이 같다고 하기보다는 비슷하다. 미국 개척민들이 신과 자연에 바친 감사의 날이기 때문이다. 추수감사절의 특별 음식은 터키이다. 학교에서도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여기에 관한 학습이 이루어진다. 이 때 보면 동양 학생들은 활발하게 학습에 참가하지 못한다. 왜인가. 그들의 가정에서 풍부한 체험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추석이나 추수감사절에 엉거주춤할 수 밖에 없는 자세가 되어버린다. 가정이나 학교가 도와야 한다. 추석과 추수감사절의 뜻을 살리고 다 함께 즐기도록 하는 것이다.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대신, 가족이 모여서 추도 모임을 가질 수 있다. 송편을 빚어서 이웃과 나누며 즐길 수도 있다. 송편을 사올 수도 있다.
추수감사절에는 미국 친구들을 초대하여 터키 맛을 즐길 수 있다. 이 날 한국음식을 한 두가지 곁들이면 특색있는 추수감사절이 될게 아닌가. 추석과 추수감사절은 두 가지를 다 지킬 수 있는 명절이다. 송편과 터키는 두 가지를 다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혼자’ 보다 ‘여럿이’ 더 풍요롭고, 재미있고, 다채롭고, 힘이 세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좋은 환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을 제대로 활용 못하는 좁은 마음을 가지거나 융통성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경제와 시간이 허락지 않는다는 핑계는 대지 말자. 생각만 있으면 길이 있게 마련이다. 한 나라의 명절은 생활문화의 집합체이다. 여러 나라의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충분히 즐기자. 우리 모두가 송편과 터키를 양손에 들고, 한 입씩 번갈아 먹고 있는 상상의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까 즐거워진다. 하늘은 더 파래지고, 공기는 더 맑아진다. <2007>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