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s in the City
2012.12.04 00:28
마티스는 어떻게 '색채의 마술사'가 됐나?@메트로폴리탄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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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isse: In Search of True Painting
진정한 회화를 찾아서...
3월 17일까지,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이번 특별전에선 마티스가 '꿈'(1940)을 완성하기까지 작업 과정이 드로잉 사진 14점과 함께 소개된다. Photo: Sukie Park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21세기 전반기 미술계의 두 거장은 당대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1906년 처음 만나 서로의 천재성에 충격을 받은
마티스와 12살 아래 피카소를 구별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티스는 컬러(color), 피카소는 선(line)의 마술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디트로이트미술관(DIA)에서 내년 1월 6일까지 열리는 '피카소와 마티스 판화와 드로잉'전 입구. SP
마티스와 피카소를 함께 모시는 전시도 종종 열렸다. 2003년 MoMA에서 ‘마티스 피카소(Matisse Picasso)’전이, 지난 9월 디트로이트미술관(Detroit Art Institute)을 방문했을 때는 ‘피카소와 마티스: DIA의 판화와 드로잉(Picasso and Matisse: The DIA's Prints and Drawings)’전이 진행 중이었다.
피카소보다 12살 연상이었지만,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마티스. 그와 피카소 판화 작품이 디트로이트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사진은 마티스의 컷아웃 컬렉션 '재즈(Jazz)' 시리즈. SP
2012년 겨울, 이번엔 피카소와 마티스의 전시가 따로 열리고 있다.
구겐하임뮤지엄에선 10월 5일부터 피카소의 흑백 계열 작품을 소개하는 ‘Picasso Black and White’를 시작했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은 12월 4일 ‘마티스: 진정한 회화를 찾아서-마티스의 그리는 과정 탐구(Matisse: In Search of True Painting—An Exploration of Matisse’s Painting Process)’를 개막했다.
구겐하임이 그림의 본질인 선에 초점을 두고, 색채를 배제한 피카소의 흑백 작품을 집중 소개하는 것과는 달리 메트는 ‘컬러의 마술사’인 마티스가 한 점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거쳐간 과정을 통해, 선과 컬러라는 회화의 본질적인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피카소 전이 흑백 무성영화같다면, 마티스전은 총천연색 영화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뮤지엄마일(5애브뉴)를 사이에 두고 좌청룡(마티스@메트)과 우백호(피카소@구겐하임)을 방불케한다.
안소니 홉킨스가 피카소의 일생을 다룬 전기 영화 'Surviving Picasso'에서 피카소 역을 맡았었다. 할리우드에서 마티스의 전기 영화가 기획 중인데, 알 파치노가 캐스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리 퐁퓌두센터 소장 'Le Luxe I'(1907, 왼쪽부터)와 덴마크국립미술관 소장 'Le Luxe', 퐁퓌두 소장 'Le Luxe II'의 드로잉. SP
마티스 특별전은 야수파(Fauvism)에 잠깐 머물러있었지만, 사실 이즘(ism)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방인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컬러와
화풍의 세계를 구축한 마티스의 헌신적인 노력이 주목거리다.
사진이 발명되면서 마티스는 사진을 작업과정에 도입했다. 일일이 스케치에서 페인팅까지 구도를 바꾸고, 오브제를 제거하면서
흡족할 때까지 이미지를 완성하는 모습을 담았다. 서정주 시인의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한 것 같은 각고의 연구와 노력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마티스 특별전은 3월-6월 파리 퐁퓌두센터, 7월-10월 코펜하겐국립미술관을 거쳐 뉴욕으로 이동한 투어 전시다. 마티스 특별전은
내년 3월 17일까지 계속된다.
▶개방시간: 화-목 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 금-토 오전 9시30분-오후 9시, 일 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 월요일(마틴루터킹스 데이, 프레지던츠데이, 메모리얼데이 제외) 휴관, 추수감사절•크리스마스•1월1일 휴관. ▶입장료: 성인($25), 65세 이상($17), 학생($12). *추천 기부금제(suggested donation). 1000 5th Ave. 82nd St. 212-535-7710, www.metmuseum.org.
Matisse:
In Search of True Painting
“미술은 육체적인 피곤으로부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좋은 안락의자 같아야 한다.”
SP
▶마티스는 어릴 적 루브르박물관에서 거장들의 그림을 복사하면서 수련했다. 그가 특히 존경한 화가는 폴 세잔(1839-1906)과
폴 시냑(1863-1935)이었다.
크라이슬러뮤지엄 소장 '테이블 위의 사과 그릇'(1916)과 '사과'(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소장).
“세잔은, 당신이 보듯이, 회화의 신(God)이다.”
“근대미술에서 의심할 바 없이 난 세잔에게 가장 많은 빚을 졌다.”
▶정물: 1904-05년 마티스는 정물을 두가지 방법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녹색과 보라색을 대각선으로 배치한 ‘퓨로와 정물1(Still Life
with Purro I, 왼쪽)’은 세잔 스타일의 붓질이며, ‘퓨로와 정물 2(Still Life with Purro II, 오른쪽)’는 폴 시냑의 점묘 기교에서 영향받았다.
"기억하라. 선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선은 항상 동반자가 있다. 기억하라. 하나의 선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하나의 선은
볼륨을 만드는 다른 선과 관계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마티스는 쌍으로 그리는 것을 즐겼다. 역시 다양한 실험을 위한 것. 개인 소장 '젊은 선원1'(1906)과 메트뮤지엄 소장 '젊은 선원 2'(1906).
메트 소장 '흑색 배경, 녹색 의상의 로레트'(1916), 개인 소장 '핑크 안락의자에 앉은 로레트', 휴스턴뮤지엄 소장 '로레트의 초상, 명상'. SP
▶세트 그림: 마티스는 짝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구도와 색채의 역할, 완성된 캔버스를 비교하며 그림의 무한한 가능성을 연구했다.
1916-17년엔 이탈리아 출신 로레트를 모델로 초상화와 함께 녹색 의상, 검은 배경, 핑크 안락의자 등을 배경으로 그렸다.
"초상화는 가장 호기심이 많은 예술의 형태 중 하나다. 초상화는 화가에게 특별한 재질, 그리고 모델과 거의 전적인
유대감을 요구한다.”
“내 모델들은 실내의 엑스트라가 아니다. 그들은 내 작업의 주요 테마다. 난 절대적으로 내 모델에 의존한다.”
인체에서 가장 종교적인 체험을 했다는 마티스의 '앉은 누드'(1909)와 코펜하겐국립미술관 소장 '흰 스카프와 누드'.
“내가 삶에 대해 가장 종교적인 느낌에 가깝게 표현하는데 성공하는 것은 인간의 몸매를 통해서다.”
“나에게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정물도 풍경도 아니다. 인간의 몸매다.”
필라델피아뮤지엄 소장 '니스의 인테리어'(1918, 오른쪽)와 개인 소장 '오픈 윈도우'. SP
▶실내 풍경: 마티스는 또한 창문과 방을 그리는 것을 즐겼다. 니스에서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방, 오픈 윈도우, 바이올린이 있는 실내
등을 캔버스에 담았다.
“방을 미스터리인 채로 남겨두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난 테이블을 그 자체로 그리지 않는다. 테이블이 나에게 주는 정서를 그린다.”
“난 물체를 그리지 않는다. 난 물체들간의 차이를 그릴 뿐이다.”
히로시마미술관에서 온 '프랑스(La France, 1939)'와 제작 과정 사진 시리즈. SP
▶사진 활용: 마티스는 1900-10년대에 자신의 그림을 상태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사진을 찍었다. 1930년대 마티스는 사진가를 고용해서 자신의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기 위해 카메라에 담았다.
“내 평생 가장 괴로웠던 것은 난 다른 이들처럼 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창의성엔 용기가 필요하다.”
“진짜 창의적인 화가에게 장미를 그리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왜냐하면, 그리기 전에 그는 먼저 이제까지 그려졌던 모든 장미를
잊어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꿈'(1940)을 완성하기 위한 드로잉의 진화 과정. 마티스는 사진 기술을 회화를 탐구하는데 활용했다. SP
1945년 12월 마티스는 파리의 화랑 갈러리 마잇(Galerie Maeght)에서 그림과 사진을 병치시키는 디스플레이로 전시회를 열었다. 여기서 마티스는 사진을 통해 자신의 그림이 즉흥적인 그리기의 산물이 아니라 그림의 진화과정을 그대로 담았다. 이번 전시에서 메트뮤지엄은 당시 갈러리 마잇의 전시를 재연한다.
‘프랑스’(1939, 히로시마미술관 소장) ‘꿈’(1940, 개인 소장) ‘정물’(1941, 퐁퓌두미술관 소장)이 메트뮤지엄에서 상봉하고 있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호기심이 많고, 융통성이 있으며, 엄청난 모험심을 갖고 독립적이며 놀기를 좋아한다.”
“지난 세대의 영향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는 젊은 화가는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다.”
필라델피아뮤지엄에서 온 '큰 블루 드레스'(1937)는 드레스도 함께 전시 중이다. SP
퐁퓌두센터 소장 '노랑과 파랑 인테리어'(1946)와 벨기에왕실미술관 소장 '베니스 빨강의 인테리어'. SP
▶스튜디오 풍경: 작업실의 풍경은 마티스에게 평생의 모티프였다. 1944년부터 48년까지 프랑스 방스의 빌라 르 레브에서 그린
풍경들은 색채를 내면 표현의 도구로 사용하게 된다.
1948년 아들 피에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티스는 “가장 최근의 그림들은 모두를 감동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생생하고 풍부하기
때문이지”라고 썼다. 피에르 마티스는 뉴욕에서 갤러리를 운영했다.
“영감을 기다리지 말 것. 영감은 일하고 있는 도중에 온다.”
“대부분 미술가에게 성공은 죄수를 의미한다. 미술가는 절대 죄수가 되어서는 안된다. 죄수? 미술가는 자신의 죄수, 스타일의 죄수,
평판의 죄수, 성공의 죄수 등등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퐁퓌두 소장 '금붕어가 있는 인테리어'(1914, 오른쪽)와 MoMA가 소장한 '금붕어와 팔레트'. SP
“컬러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능한 가장 강력한 컬러의 효과를 찾아라…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컬러 도취: 이집트 커튼이 있는 실내: 이집트 커튼이 있는 인테리어(1948, 오른쪽)과 '검은 양치식물이 있는 인테리어(왼쪽), 그리고
'커다란 빨간 인테리어'는 1949년 아들의 화랑인 피에르 마티스의 뉴욕 갤러리에서 프레임 없이 전시됐다. 이유는 관람자들이 느낌을
포용하고, 색채에 도취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꽃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겐 항상 꽃이 있다.”
“일이 만사를 치료한다.”
“왜 내가 지루한 적이 없냐고? 난 지난 50년 이상 일을 멈춘 적이 없지.”
MoMA에서 볼 수 있는 마티스의 작품 '댄스'(1909, 왼쪽)와 '빨간 스튜디오'. 뭉크의 '절규' 옆 갤러리에 있다. 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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