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뮤지컬 '립 오브 페이스'를 저격했나?
'립 오브 페이스'는 토니상 작품상 후보에 오르고도 13일 폐막한다. 토니상 4회 후보 경력의 라울 에스파자가 사기꾼 목사로 출연하는 이 작품은 뉴욕타임스 등 언론로부터 악평을 받았다. 코너에 몰린 '립 오브 페이스'는 결국 막을 내리면서 1400만불의 손해를 봤다. Photo: Joan Marcus
바람과 함께 사라진 1400만불... ‘립 오브 페이스’ 최후의 숨결
토니상이 뭐길래?
지난해 이맘때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큰 조롱거리는 7500만불짜리 뮤지컬 ‘스파이더맨: 어둠을 꺼라’였다. 배우들의 연이은 사상 최장기의 프리뷰를 거치면서 떠들썩한 토니상이 끝난 이틀 후 공식 개막했다. 대신 블록버스터 원작 영화의 힘과 스파이더맨의 곡예술에 의존한 티켓 세일로 올 토니상에 2개 부문(세트 디자인&의상 디자인) 후보에 오르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아직도 해고당한 연출가 줄리 테이머와의 소송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1일 2012 토니상 발표 후 브로드웨이에 거센 폭풍이 불어닥쳤다. 토니상 후보에서 추풍낙엽처럼 떨어진 브로드웨이 공연들이 연달아 폐막을 선언한 것이다. 연극 ‘세미나’는 일주일 만인 7일 폐막했고, 농구 연극 ‘매직/버드’는 12일 막을 내렸다. 리바이벌 뮤지컬 '가즈펠'도 이달 말까지만 공연한다고 발표했다.
가장 큰 이변은 2012 토니상 작품상 후보에 올랐지만 13일 브로드웨이와 작별하는 뮤지컬 ‘립 오브 페이스(LOF, Leap of Faith)’다. 4월 3일 세인트제임스시어터에서 24회의 프리뷰를 거쳐 26일 공식 개막된 LOF는 20회 공연으로 종지부를 찍게 됐다. 프로듀서들은 1400만 달러를 고스란히 날렸고, 배우와 스탭, 오케스트라 뮤지션들은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이 뮤지컬을 즐긴 관객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1992년 스티브 마틴 주연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립 오브 페이스'는 '미녀와 야수' '시스터 액트'의 귀재 알란 멘킨이 곡을 썼다.
LOF는 개막 후 뉴욕타임스를 비롯 주요 언론의 혹평 소나기를 맞고, 1일 아침 운명의 토니상 후보 발표를 기다렸다.그리고, LOF는 토니상에서 유일하게 작품상에만 노미네이트됐다. 11개 부문 후보에 오른 ‘원스(Once)’를 비롯, 10개 후보에 오른 매튜 브로데릭 주연의 ‘네가 알아듣는다면, 잘한 일(Nice Work If You Can Get It)’ 그리고,9개 후보에 오른 ‘뉴시즈(Newsies)’와 위태로운 절름발이 상태로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그런데, 왜 LOF는 6월 10일 CBS에서 미 전역에 중계될 토니상조차 기다리지 못한 채 막을 내리는 것일까? LOF의 자진 사퇴로 2012 토니상 뮤지컬 최우수 작품상은 3파전이 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제작팀은 ‘LOF 티켓 판매가 저조함에 따라 지난 주엔 27만5000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는 상태라 도무지 토니상까지 이어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100만 달러가 필요하지만, 흥행 담보 없이 자금을 조성을 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작품상 후보작에만 부여되는 토니상 무대 공연도 5만-25만 달러 제작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 작품상에서 미끄러질 게 뻔한데, 출혈을 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셈이다. 사실 LOF는 뉴욕의 비평가들이 선정하는 드라마데스크상 작품상 등 6개 부문, 드라마리그상 3개 부문, 그리고 라울 에스파라자는 아우터크리틱서클어워드 최우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는 상태다.
13일 마더스 데이, LOF는 브로드웨이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헤어스프레이’와 ‘프로듀서’를 히트시킨 프로듀서들이 주도한 제작진은 1400만 달러의 손실을 보게 된다. LOF는 끝내 브로드웨이 게임의 규칙에 항복한 것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평균 제작비는 800만 달러, 브로드웨이 공연의 75%가 손실 상태에서 막을 내리는 것이 브로드웨이의 현실이다.
2010년 LA에서 라울 에스파자와 브룩 쉴즈 주연으로 시범공연됐던 LOF는 원래 올 겨울 브로드웨이로 도약할 예정이었다. 갑자기 흥행 뮤지컬 '프로듀서'가 공연됐던 명당 세인트제임스 시어터가 손짓해왔다. 해리 코닉 주니어가 주연한 리바이벌 뮤지컬 ‘청명한 날 당신은 영원히 볼 수 있어요(On a Clear Day You Can See Forever)’가 흥행 부진으로 조기에 폐막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들은 이 유혹을 버리지 못하고, 브로드웨이 데뷔를 6개월 이상 앞당기게 된다. 브로드웨이 도약에 맞는 정비를 할 틈이 없이 도박에 뛰어든 셈이다.
'북 오브 몰몬''시스터 액트'를 비롯,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스펠'과 함께 종교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 범람한 브로드웨이
에서 치열한 사투를 벌여야했던 라울 에스파자 주연의 뮤지컬 '립 오브 페이스'. Photo: Joan Marcus
그러면, LOF가 그 정도로 함량미달의 뮤지컬인가? 지난 22일 일행과 셋이 본 경험에 의하면 LOF는 그런대로 즐길만한 뮤지컬이었다. 스티브 마틴이 주연한 동명 할리우드 영화(1992)가 원작인 LOF는 젊은 목사 조나스 나이팅게일(라울 에스파자 분)이 가스펠 합창단을 데리고 캔사스의 작은 마을에 와서 신도들에게 사기치는 이야기를 그렸다.
캔사스의 스윗워터에 도착한 목사 일행은 3일간 이곳에서 서민들의 신앙심을 이용해 돈을 뜯을 궁리를 한다. 합창단은 가스펠로, 나이팅게일은 라스베이거스 스타일의 번쩍이는 재킷을 입고, 선량한 서민들을 유혹한다. 한국 옛날 시골 장터의 약장수나 뱀장수를 연상하면 된다. 이 동네의 과부 보안관 말라 맥관(제시카 필립스 분)은 그의 의도를 알아채고, 중단시키려 한다. 그런데, 목사와 보안관의 사이는 가까워지고, 교통사고로 지체부자유아가 된 그녀의 아들 제이크는 휠체어에서 일어서기 위해 나이팅게일과 기적을 믿게 된다.
LOF는 소년의 걷고 싶은 욕망, ‘기적’을 기다리는 신념의 도약(leap of faith)과 함께 주인공 목사의 개과천선을 역설하는 작품이다. 서커스 천막 같은 단순한 무대 세트에 ‘시스터 액트’ 풍의 노래와 연출이 다소 구태의연하고, 이야기도 상투적이긴 하다.
하지만, 알란 멘킨의 노래들이 역시 기본이 되고, 특히 콰이어가 ‘Are You on the Bus’를 부를 때 무신론자조차도 믿음에 관해 찡하게 생각할 여운을 준다. 에스파라자의 혼신을 다한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에 기적 같은 일이 발생하고, 비가 내리면 무미건조한 듯했던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뮤지컬 ‘맘마 미아’의 관객들처럼 LOF의 관객들도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극장 문을 나설 때 대부분의 관객들이 흡족한 표정들이 포착됐다.
LOF는 ‘북 오브 몰몬’처럼 재기발랄하고, 모든 노래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스파이더맨’이나 ‘아담스 패밀리’처럼 이야기가 빈약하면서 약간의 볼거리만 있는 뮤지컬보다는 훨씬 수준급이다. 알란 멘킨이 작곡한 뮤지컬 ‘시스터 액트’나 2년 전 토니상 작품상을 수상한 ‘멤피스’ 정도로 만족도를 주는 작품이었다. 그렇다고, ‘웨딩 싱어’나 ‘아담스 패밀리’처럼 돈도 시간도 아까울 정도는 아니었다. 함께 본 우리 가족은 ‘시스터 액트’ 보다 더 재미나게 보았다고 입을 모았고, 에스파라자는 토니상 주연감이라고 평가했다. ‘컴퍼니’로 주목받은 에스파라자는 이미 4번 토니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캔사스의 작은 마을 스윗워터에 도착한 사기꾼 목사와 여동생은 이를 저지하려는 동네 보안관과 부딪힌다. Photo: Joan Marcus
비평가가 뭐길래?
그런데, LOF이 공식 개막하자마자 뉴욕타임스를 비롯 비평가들은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브로드웨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뉴욕타임스의 벤 브랜틀리가 악평을 썼다. 그의 독설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엔 화살이 아니라 총탄이며, 사형선고다. 뉴욕타임스의 혹평에 LOF가 굴복했을까? 브랜틀리가 브로드웨이에 총탄을 날린 것일까? 우디 알렌의 영화 '브로드웨이로 날아간 총탄(Bullets Over Broadway)'이 떠오른다.
다음은 뉴욕타임스 벤 브랜틀리의 리뷰다.
♣뉴욕타임스- 벤 브랜틀리 2012, 4, 27
‘교활한 목사, 기도도 없이’
“’립 오브 페이스’는 누그든 근처에 가기만 하면 에너지를 빨아버릴 이번 시즌 뮤지컬 코미디의 블랙홀이다. 이것에는 불행한 출연진도 포함된다…에스페자는 인물로부터 냉랭한 거리감을 두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의 자의식은 항상 그 연기의 부분이기도 했다는 것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말라 맥관(금박 드라이클린된 것처럼 보이고, 연기하는 제시카 필립스)… 가스펠은 에스파라자의 강력한 정장이 아니다. 그가 손을 들어보세요하고 신을 위해 기도할 때, 그는 티나 터너 흉내내는 2류 연예인처엄 들린다….”
브랜틀리는 특히 에스파라자의 연기에 시비를 걸었다. 티나 터너까지 들먹이며 모욕에 가까운 악담을 마다하지 않았다.'블랙홀' '드라이 클리닝' 등의 선택한 단어들도 진지한 비평가라기보다는 감정적인 언어유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연극 '세미나'에 출연한 한인 2세 헤티엔 박과 영화배우 출신 제리 오코널에 대해서도 "(비록 둘다 이상적인 캐스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이라고 토를 달았다. 하지만, 5인 출연진 중 알란 리크만을 비롯 3인이 하차하고, 7일 폐막할 때까지 무대를 지킨 이들은 박씨와 오코넬이다. 특히 박씨는 브로드웨이 데뷔 배우들에게 주는 2012 시어터월드상까지 수상했다.
프랑스의 어느 시인은 말했다. "비평가들이란 예술가들이 밤새 해놓은 작업을 벌건 대낮에 들여다보는 사람들"이라고. 예술가들의 창작 노력을 무시한 채 악평을 일삼는 비평가들에 대한 경고다. 그러면, '립 오브 페이스'에 치명적인 총구를 겨눈 것은 뉴욕타임스였을까?
흥미로운 것은 브랜틀리의 리뷰에 반대하는 독자들의 리뷰가 뉴욕타임스 웹사이트에 줄을 이은 것이다. 1년 전 개막한 ‘북 오브 몰몬’에 대한 독자의 리뷰가 104건인데, 20회가 채 안되는 LOF 리뷰는 82건이나 올라있다. 게다가 5점 만점에서 LOF는 ‘북 오브 몰몬’과 마찬가지로 3.5점을 받았다.
뉴욕타임스의 악평으로 일자리를 잃게된 배우 라울 에스파자와 제시카 필립스.
♣NYT 독자 리뷰 발췌
-“잔인한 리뷰, 위대한 쇼: 벤 브랜틀리는 거대한 불량배다. 난 훌륭한 쇼들이 그의 독설 때문에 페막하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이 경우엔, 다시 한번, 그가 틀렸다. 이 쇼는 재미나고, 감동적이며, 청중은 ‘사랑했다’.”
-“당신도 저와 같은 쇼를 보셨나요? LOF는 정말 좋은 공연이다. 라울 에스파자는 탁월했다. 에너지가 놀라웠고, 목소리도… 오 정말 놀라운 목소리… 청중 모두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의 그 악명높은 비평가님은 내가 못본 것을 보셨단 말인가? 당신은 공연 전 틀림없이 나쁜 저녁식사를 한 모양이다. 쇼는 나쁘지 않았고, 훌륭했다. 사실, 우리 딸이 뉴욕에 돌아오면, 함께 보러가고 싶다. 난 이 쇼가 계속 공연되기를, 잘 되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벤 브랜틀리가 빗나갔다. 우린 이번 뉴욕 여행에서 5일간 동안 7편을 보았다. 그런데 시어터팬인 우리 셋 모두 LOF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멤피스’와 ‘비즈니스에서 노력하지않고 성공하는 법(How To Succeed in Business Without Really Trying)’을 봤을 때처럼, 우린 벤 브랜틀리가 우리와 같은 쇼를 본 것인가 의심스럽다. 아마도 그는 보청기나 새 안경이 필요한가 보다. 아마도 뉴욕타임스가 시대에 맞는 비평가를 얻어야 하지 않을까. 난 입소문이 브랜틀리가 주는 운명으로부터 LOF를 구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봤을 땐 관객들이 무척 행복하게 노래를 하면서 떠났다.”
-“비평가들 엿먹어라: 벤 브랜틀리가 LOF를 리뷰하는 날 아침식사로 무엇을 먹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생각은 나와 내 아내와 다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즐긴 쇼의 모든 관객들과도 다르다. 전 출연진이 일류급이였으며, 라울 에스파자는 특별히 주연으로서 파워풀했다. 난 극장에서 즐거운 저녁을 보내고 싶은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겠다. 커튼콜의 비명에 찬 승인이 뉴욕타임스의 틀린 리뷰를 능가하기를 바란다.”
조나스 나이팅게일의 부정을 폭로하는 청년과 나이팅게일을 추종하는 가스펠 맘. Photo: Joan Marc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