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천장': 안무가 유희라의 '이민자로, 여성으로 산다는 것'
뉴욕한국문화원 OPEN STAGE 'Dance Beats of Korea'
Yoo&Dancers '유리 천장(Glass Ceiling)'
소음간의 불협화음이 스타카토 리듬으로 이어지는 뉴욕에서 ‘몸짓의 언어’ 무용은 선(禪)적인 평온의 시간으로 안내하는 예술일 것이다.
'침묵의 소리'로 표현하는 '육체의 절규'는 뉴요커들을 소음의 공해로부터 명상의 오아시스로 안내한다.
뉴욕한국문화원(Korean Cultural Service of New York, 원장 이우성)은 기획공연 공모전 ‘오픈 스테이지(Open Stage 2012-13)’의 선정작
중 그 세번 째 시리즈로 ‘Dance Beats of Korea’의 3개 무용팀을 1월 30일부터 2월 1일까지 ‘무대’에 선보였다.
한국문화원 내 갤러리코리아에서 무용을 공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0일 첫 번째 프로그램인 ‘유&댄서즈(Yoo&Dancers, 대표
유희라)’의 ‘유리 천장(Glass Ceiling)’은 갤러리코리아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공연이었다.
유희라씨의 안무 레퍼토리엔 발에 관한 독무 ‘첫 스텝(First Step)’에서 패션쇼에 대한 풍자를 담은 ‘캣워크(Catwalk)’, 그리고 북한의
독재상황에 대한 논평격인 ‘160마일(160 Miles)’까지 일상적이며 개인적인 것은 물론,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소재까지 긴 스펙트럼의
유연성이 주목을 끈다.
‘유리 천장’은 유희라씨가 미국, 특히 뉴욕에서 지난 5년간 경험한 이민자로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안무한 작품이다. 그의 자전적 ‘에픽
댄스’는 3개의 챕터로 나뉘어진다. 하지만, 연대기 순의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순서와 상관없이 각 챕터가 완결 구조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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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물 없이(Without a Net)’는 갤러리코리아의 흰 벽과 바닥, 그리고 문을 활용해 5인의 댄서들이 움직인다. 베네통적인 컬러풀한
의상을 입은 3인의 여성과 2인의 남성 댄서들은 따로, 혹은 같이 요가와 판토마임 스타일의 동작으로 육체적인 투쟁과 갈등, 그리고
조화의 욕구를 바닥에 누워서, 바닥을 구르며, 벽을 오르며 표현한다. 스파이더맨은 '꿈의 공장' 할리우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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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아시안 남성 댄서유키 이쉬구로)의 좌절은 더욱 드러났다.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아시안으로서 겪는 장애는
더욱 높을 것이다. 유희라씨는 다민족의 용광로에서 아메리칸 드림과 행복을 추구하려는 소수계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그러나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벽과 바닥을 ‘유리천장’으로 활용하면서 5인의 군무는 관객에게 착시를 체험하게 만든다.
음악은 생상의 아쿠아리움, 리스트의 헝가리언 랩소디, 스캇 조플린의 ‘New Rag’ 그리고 조나단 카츠의 ‘콘론 난캐로우 스터디’가
‘아메리칸 퀼트’처럼 몽타쥬되어 무성영화나 판토마임의 코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카츠가 라이브로 연주했다.
# 2 ‘써지지 않은 A(Unwritten A)’ 는 어쩌면 아시안 남성보다 더 장애가 많을지도 모르는 여성 집단이 출연한다. 5인의 여성 댄서들은
절반쯤 불규칙적으로 노출된 의상을 입고 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갖는 원초적, 사회적 연약함과 한계를 상징하는 듯한
스마트한 디자인이다. 이들은 베를 짜는 그리스의 여신 아라크네(거미)처럼 로프를 설치한 후 자신이 짠 그물 안에 갖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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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색 줄은 어쩌면 탯줄의 은유이자, 평생 짜야하는 여성들에게 내려진 형벌일 수도 있다. 아직도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또 하나의
굴레일 것이다. 역사가 남성들의 이야기 HiStory라면 HerStory는 써지지 않는 침묵의 소리다.
유희라씨는 전자음악 듀오 케미컬브라더스의 음악을 편집해서 안무했다. 무용이 음악에 종속되지 않고, 음악을 안무에 맞추는 발상의
전환이다.
# 3 ‘쓰여지지 않은 B(Unwritten B)’ 이날 ‘유리 천장’의 마지막 챕터는 태고적의 아담과 이브로 돌아간다.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멜란콜리한 피아노곡 ‘리토르나레’(조나단 카츠 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2인무(pas de deux)는 원시시대 남과 여가 언어 대신 몸짓으로
소통하는 남녀의 관계를 묘사한다.
그 시대에는 사회적 갈등이 없을까? 남과 여 사이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섬이 있다. 만남에서 이별까지가 그려지는 파드뒤는 풍성한
동작의 언어로 그려낸 1, 2의 군무에 비해 다소 단조로운 메아리처럼 보였다.
유희라씨의 '유리 천장'은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이민자로 살아가는 체험에서 나온 '침묵의 아우성'인듯 하다. 사람과 사람 간, 집단
속 개인이 갖는 한계를 외면할 수 없기에 몸짓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추상적인 안무보다 더 절실하고, 진실하며, 보편적인
작품으로 승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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