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뮤지컬 프로듀서 신춘수
"브로드웨이에서 내 이름 걸고, 내 작품 제작하고 싶다"
국문학과 영화를 전공한 후 한국 뮤지컬계의 귀재가 된 신춘수씨. Photo: 오디뮤지컬컴퍼니
지금 ‘한국의 카메론 매킨토시(Cameron Mackintosh)’를 꿈꾸는 남자가 있다. 영국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매킨토시 경은 '팬텀 오브 오페라' ‘레 미제라블’’캐츠’’미스 사이공’'메리 포핀스' 등을 히트시킨 뮤지컬계의 마이더스다.
2001년 독립제작사 오디뮤지컬컴퍼니(OD Musical Comapny)를 세운 후 이제까지 35여편의 뮤지컬과 연극을 무대에 올려온 신춘수(Choonsoo Shin•44)씨. 그는 명실공히 브로드웨이 뮤지컬 프로듀서다. 신씨는 올 3월 22일 브로드웨이 닐사이먼시어터에 공식 개막된 리바이벌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JCS, Jesus Christ Superstar)’의 12 프로듀서 명단에 오르며, '그들만의 리그'에 당당히 어깨를 겨누었다.
12년만에 브로드웨이에 리바이벌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웨버와 라이스 콤비의 'I don't know how to love him'과 'Supersta'는 뮤지컬 불후의 명곡이 됐다. 지난 3월 닐사이먼시어터에 개박된 JCS 중에서. Photo: Joan Marcus
신씨가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2월 브로드웨이 부스시어터에 초연된 2인극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The Story of My Life)’에 빌링 프로듀서로 데뷔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5회 공연으로 막을 내리고 만다.
같은 해 12월 대담하게 라이선스 뮤지컬 ‘드림걸스(Dreamgirls)’를 한국에서 제작, 역으로 브로드웨이 문을 두드렸다. 신춘수 제작의 '드림걸스'는 맨해튼 할렘의 아폴로시어터에서 미국 초연된 후 몇 개 도시를 돌았지만, 끝내 브로드웨이 입성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한국산 뮤지컬(드림걸스), 브로드웨이 초연작(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그리고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리바이벌(JCS) 등 다양한 카드로 ‘뮤지컬의 심장’ 브로드웨이를 공략해온 신씨의 행보는 주목할 만 하다. 그는 로컬 스토리로 무장한 코리안 뮤지컬로 브로드웨이 성(城) 밖에서 역시 로컬한 관심만 받다가 씁쓸하게 돌아가는 비운의 프로듀서는 아닌 셈이다.
지난 10여년 간 신씨는 ‘그리스(Grease)’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킹 앤 아이(The King and I)’ ‘맨 오브 라만차(Man of La Mancha)’ ‘올 슉 업(All Shook Up)’ ‘싱잉 인더 레인(Singing in the Rain)’ '나쁜 녀석들(Dirty Rotten Scoundrels), '컨택(Contact)', 블루룸(The Blue Room)', '갈매기(Seagull)' 등에서 대성공을 거둔 ‘지킬 앤 하이드(Jekyll & Hyde)’까지 다양한 장르의 뮤지컬과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한국에서 공연이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철자법 경시대회 이야기 ‘스펠링 비(Spelling Bee)’는 신씨가 직접 연출까지 맡았다.
그가 브로드웨이 산 라이선스 뮤지컬에만 집중한 것도 아니다. ‘사랑은 비를 타고’’더 리허설’ ‘안녕 비틀즈’ ‘호두까기 인형’ ‘싱글즈’ ‘웨딩 펀드’ 등 모험이 수반되는 창작 뮤지컬 개발로 프로듀서로서 균형감도 잡았다. 그리고, 가깝게는 일본에서 ‘지킬 앤 하이드’와 ‘맨 오브 라만차’를, 올 2월 호주에서 세계 초연된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를 공동 제작하면서 글로벌 프로듀서로서의 시각도 키웠다.
올 1월 샤롯데씨어터에 올린 ‘닥터 지바고’에 이어 신씨는 이달 22일 시작될 ‘맨 오브 라 만차’의 리바이벌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가 제작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올 토니상 2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지만, 아쉽게도 10일 뉴욕 비컨시어터에서 열릴 시상식에 참가하지 못한다.
브로드웨이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제작하기를 꿈꾸며 세계 뮤지컬의 지도를 종횡무진하는 신씨를 E-메일로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했다.
브로드웨이 진출 1호작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2006년 토론토에서 초연된 후 2009년 브로드웨이로 건너온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6살부터 35살 까지
두 남자의 우정을 담았다. 신씨의 브로드웨이 진출 1호작은 5일만에 막을 내렸다.
-한인으로서는 브로드웨이 제 1호 프로듀서인가.
“나보다는 브로드웨이에서 빌링 크레딧을 받은 최초 한인 프로듀서는 2002년 ‘라보엠 (La Bohème)’을 공동 제작한 설앤컴퍼니의 설도윤 대표와 ‘난타’를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PMC 송승환 전 대표를 제 1호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첫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The Story of My Life)’였다. 어떻게 제작에 참가하게 됐나.
“개발 중에 있는 대본과 음악을 검토하고 참여하게 됐다.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에 참여한 한국 프로듀서는 나 하나였다.”
-평이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프리뷰 이후 정식 공연 5회 만에 막을 내렸다. 이유는.
“오랜 만에 브로드웨이에 선보인 2인극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오픈 후 좋은 리뷰를 받지 못했다. 또, 관객들을 감동시킬 흡입력과 공감대가 부족해 박스오피스를 비롯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일찍 막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운영비용보다 티켓판매가 낮았던 것도 폐막을 결정한 요인 중 하나였다.”
-폐막 결정은 어떤 과정을 거치나.
“프로듀서들이 모여서 관객과 평단의 리뷰, 크리에이티브 팀 멤버들의 의견 등 여러 가지 자료를 바탕으로 논의해 결정한다.”
-그런데도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드라마데스크상 최우수 뮤지컬작품상 등 4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그때 느낌이 어땠나.
“흥행에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2인극 뮤지컬로서 관객들에게 진솔하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을 인정받아 기뻤다.”
2010년 오디뮤지컬컴퍼니가 무대에 올린 신성록, 이석준 주연의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Photo: 오디뮤지컬컴퍼니
-첫 브로드웨이 제작 뮤지컬에서 얻은 교훈은.
“한국의 뮤지컬 시장은 지금 확대되고 산업화되는 단계, 다시 말하자면 젊은 시장이어서 미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한 마디로 도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반면, 브로드웨이는 이미 완전히 성장한, 세계 뮤지컬 시장을 이끌어가는 곳이기 때문에 냉정한 상업적인 판단 하에 뮤지컬이 제작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한국 뮤지컬 시장이 앞으로 더욱 탄탄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브로드웨이처럼 철저한 분석과 준비,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공연했는데, 반응은.
“한국 프로덕션은 미국 프로덕션과는 완벽하게 다른 프로덕션이었다. 대본과 음악만 같을 뿐, 무대•연출•의상 등 모든 것이 달랐다. 한국에서는 전달성을 높이기 위해 미니멀한 미국 프로덕션과는 달리 감성적이고 정적인 부분을 펼쳐서 연출, 많은 관객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여성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웠으며, 확고한 매니아를 가진 뮤지컬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신춘수씨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각색한 영화 '멋진 인생'을 연출했다.)
브로드웨이의 냉철하고 합리적 정신 배워
히트 뮤지컬 제조사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 콤비의 뮤지컬 JCS는 12년만에 브로드웨이에 복귀했다. Photo: Joan Marcus
-두 번째 브로드웨이 제작 작품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JCS)’인가. 플레이빌(Playbill) 제작자 명단에 Shin/Coleman으로 나온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와 더불어 미국 프로듀서와 ‘드림걸스’를 만들었다. 새로운 리바이벌 프로덕션으로 한국에서 초연을 하고 미국으로 넘어갔지만, 투어만 하고 브로드웨이에는 입성하지 못했다. 따라서, JCS가 두 번째 브로드웨이 작품이 됐다. JCS 참여는 ‘닥터 지바고’ 연출자인 데스 맥아너프(Des McAnuff)가 JCS의 연출을 맡고 있었고, 파트너로 호주에서 ‘닥터 지바고’를 함께 제작한 프로듀서 아니타 왁스만(Anita Waxman)도 참여하고 있어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콜만도 그렇게 알게 된 사이다.”
-브로드웨이 제작자가 되려면 최소한 얼마를 투자해야 하나.
“투자 금액도 중요하지만 프로듀서의 신용과 명성이 더 중요하다. 시장에서 평판이 좋지 않으면 투자 기회도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빌링을 받는) ‘타이틀 프로듀서’가 되려면 보통 30만불 이상 투자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프로듀서의 역할은 무엇인가. 투자 외에, 캐스팅이나 연출에 의견도 제시할 수 있나.
“프로듀서는 작품 제작에 있어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기획, 제작 방향성 설정, 크리에이티브 팀 선정뿐만 아니라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컴퍼니를 이끌어 가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투자, 캐스팅, 연출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JCS에 대한 관객과 비평가의 반응은.
“젊은 관객들은 열광하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그 반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이 가진 강렬함을 배가시키는 연출과 무대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안타깝게도 호불호(好不好)가 다소 갈리는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열정적이고 에너지 많은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티켓 세일 성적은.
“미국도 경기가 그렇게 좋지는 않은 편이어서 모두 고전하고 있지만, 세일즈가 나쁘지는 않다.”
JCS는 오는 10일 열릴 토니상 최우수 리바이벌뮤지컬과 뮤지컬 조연남우상(유다 역의 조쉬 영) 2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사진은 JCS가 공연 중인 닐사이먼 시어터. SP
-토니상 2개 부문(최우수 리바이벌 뮤지컬, 최우수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기대 이하였나.
“여러 부문의 후보에 오를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해서 솔직히 조금 아쉬웠다,”
-토니상이 브로드웨이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나. 토니상 후보 발표 후 속속 막을 내리는 뮤지컬도 많은데.
“정말 막대한 영향을 준다. 단순히 흥행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다. 후보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명성과 명예를 얻게 된다. 공연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영광스러운 상이다. 작품이 후보에 오르면 참가한 배우와 크리에이티브 팀 관계자 모두가 그 노력과 실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기 때문이다. 후보 발표 후 막을 내린다는 것은 토니상이 그만큼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브로드웨이 신작 뮤지컬 ‘립 오브 페이스(Leap of Faith)’는 토니상 최우수뮤지컬상 후보에 올랐는데, 토니상 시상식까지 못 가고 폐막했다.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로 어떻게 생각하나.
“’립 오브 페이스’를 보진 못했다. 하지만, 프리뷰에서의 관객과 평단의 반응을 보고 프로듀서들이 정말 많은 고민과 논의를 하고 그러한 결정을 내렸을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이것이 한국 상황이었다면, 나는 제작자로서 아마 시상식까지는 버텼을 것 같다. 하지만 합리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하는 미국이기 때문에 충분히 많은 고민을 하고 이런 어려운 결정을 했을 것으로 믿는다.”
그리스도 최후의 7일을 그린 JCS에서 막달라 마리아(왼쪽부터), 유다, 예수. Photo: Joan Marcus
-JCS를 제작하면서 배운 점은.
“브로드웨이에서 계속 활동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더 많은 프로듀서들, 작가/디자이너 등 크리에이티브들과의 교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JCS에 참여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된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물론 미국 뮤지컬 시장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지금 브로드웨이엔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작품이 셋(팬텀 오브 오페라, 에비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다. 웨버의 강점은.
“음악. 음악이 정말 뛰어나다. 결국은 작품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연출 경험도 있는데, 브로드웨이 JCS 프로덕션에서 혹시 바꾸고 싶은 것이 있나.
“지금으로서도 충분히 훌륭한 프로덕션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꼽으라고 한다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유다 사이의 드라마와 캐릭터를 좀 더 강렬하고 진중하게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있다.”
한국은 뮤지컬 천국...연간 100여편 무대 올라
2009년 '드림걸스' 제작 발표회에서 작곡가 헨리 크리거(왼쪽부터), 신춘수씨,제작자 존 브리글리오, 연출자 로버트 롱버텀.
Photo: 오디뮤지컬컴퍼니
-한국 뮤지컬은 지금 어디에 와 있나. 연간 몇 작품이 제작되고 있나.
“지난 10여 년간 한국 뮤지컬 시장은 질적, 양적으로 성장하며, 본격적인 뮤지컬 시대를 열었다. 최근 10년간의 그래프는 급격한 상승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너무나 많은 작품들이 제작되고 있다. 대학로에서 개발되고 있는 소규모 뮤지컬의 경우 셀 수도 없이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기존 작품들과 이렇게 숫자가 파악이 안 되는 작품들까지 포함한다면 연간 100여 편의 작품이 공연되는 것 같다.”
-창작 뮤지컬과 라이선스 뮤지컬의 비율은.
“대형 창작 뮤지컬은 연간 3-4편, 소규모 창작품은 상당 수가 제작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관객에게 많은 사랑 받는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 라이선스 작품이며, 유럽 작품이 큰 사랑을 받는 경우도 있다.”
-라이선스 공연의 경우 각색이 어디까지 허용되나.
“각색은 라이선스 계약 때문에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 관객의 정서에 맞출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또, 라이선스 회사 또한 문화적 차이 때문에 각색이 필요함을 인지하고 있어서 최대한 협력해주고 있다.”
-한국에서 ‘맘마미아’나 ‘저지 보이스’같은 한국의 가요를 소재로 한 주크박스 뮤지컬이 제작되고 있나.
“여러 편 제작됐다. 가장 성공한 작품이 가수 이문세씨가 많이 불렀던 이영훈씨 곡으로 만든 ‘광화문 연가’다.”
-‘라이온 킹’’시스터 액트’’고스트’ 등처럼 영화 원작 뮤지컬도 제작되나.
“물론이다. 하지만, 여러 번 시도된 것에 비해서 빅 히트했다고 할 수 있는 케이스는 없다. 크게 성공한 영화라 할지라도 영화의 지명도와 성공이 뮤지컬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 제작 경험에서 볼 때 한국 뮤지컬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한다면.
“브로드웨이는 제작의 프로세스, 기본적인 인프라가 확립되어 있고 수준 높은 크리에이티브들이 존재하고 있는 곳인데 반해, 한국은 아직 젊고 성장하기 위해 배우는 과정에 있다. 도전 정신이 훨씬 강하다. 이 부분이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12월 아폴로시어터에서 미국 초연된 '드림걸스'. Photo: Joan Marcus
-직접 제작한 한국산 뮤지컬 ‘드림걸즈(Dream Girls)’로 브로드웨이 입성하려다 좌절됐다. 어떻게 시작했고, 무엇이 문제였나.
“’드림걸즈’의 새 프로덕션을 만들고 싶어서, 작가들을 직접 찾아갔다. 그 동안 발전한 한국 뮤지컬 시장의 인프라를 활용해 한국에서 프리미어를 하고 미국으로 넘어가는 프로덕션을 기획했다. 때마침 동명의 할리우드 영화도 개봉, 인기가 있어서 새 프로덕션을 선보이기에 좋은 시기였다. 그렇지만, 미국 경기 침체로 좋은 리뷰를 받았음에도 투어 프로덕션이 생각보다 고전을 면치 못했다. 따라서 브로드웨이에 입성할 수 있는 원동력도 잃게 됐다. 관객들을 끌어들일만한 스타를 캐스팅하지 못한 것도 브로드웨이에 진입하지 못한 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브로드웨이 공연의 75%는 손실을 본다고 한다. 한국 뮤지컬의 흥행 타산율은.
“한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10개 작품이 올라가면 8개 작품은 손실을 보는 것 같다.”
-그럼, 뮤지컬 제작은 도박일까.
“절대 아니다. 흥행의 변수는 많지만 근본적으로 작품의 예술성과 완성도가 높다면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기획과 제작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야 외적인 요소에 흔들리지 않고 오랜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신춘수-조승우의 블록버스터 '지킬 앤 하이드'
신춘수씨의 메가 히트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92010)의 커튼 콜. 앞줄 왼쪽부터 루시 역의 김선영, 지킬/하이드 역의 조승우, 엠마 역의 김소현.
Photo: 오디뮤지컬컴퍼니
프로듀서 신춘수씨의 최대 흥행작은 ‘지킬 앤 하이드’. 이 작품은 2004년 첫 공연 후 2010년 11월 리바이벌되어 9개월간 35만명을 동원했다. 이로써 설도윤씨 제작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가 올린 33만명의 기록을 깼다. 한국 뮤지컬 사상 최고흥행작이 된 ‘지킬 앤 하이드’는 275억원 매출에 120억원 수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크게 성공했는데. 비결은 어디에 있었나.
“한국에서는 유래가 없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 관객들의 공감을 받기 위해 여러차례 공연하면서 작품을 더욱 발전시키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 프로덕션은 기존의 다른 ‘지킬 앤 하이드’ 프로덕션보다는 훨씬 더 드라마틱하고 빠른 템포로 작품이 전개된다. 캐스팅 등 매 프로덕션마다 화제를 몰고 올 수 있는 요소가 많았던 것도 흥행에 도움이 됐다.”
-뮤지컬 제작과 연출 경험을 비교하면.
“프로듀서는 전체 작품을 기획하고 방향성을 정하고, 공연까지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예술적인 측면 보다는 행정적인 측면에 역할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연출은 자신이 그리는 작품의 세계를 디자이너와 배우를 통해 무대에서 직접적인 구현하는 작업을 한다. 예술적인 측면에 역할이 집중되어 있다.”
-브로드웨이 제작자 체험 중 에피소드는,
“뮤지컬은 작품 그 자체로는 언어와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모두에게 동일한 감정을 줄 수 있다. 하지만, 해외 스탭과 함께 작업할 때는 제작 환경이나 그 나라의 문화 때문에 같은 것을 다르게 느낄 때가 있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A처럼 전달하면 좋겠지만, 미국 관객에게는 B로 전달하는 게 나을 때가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은 스킨쉽을 중요하고, 관계가 계약보다 우선시 되는 경우도 있지만, 미국은 철저하게 계약이 우선 된다.”
-제작자의 매력과 연출가의 매력은.
“제작자는 공연이 올라 갈 때까지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공연이 무대에 오르면 산에 정상에 오르는 쾌감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연출자로서는 자신이 그리는 작품의 세계를 디자이너와 배우를 통해 무대에서 직접적인 구현을 할 수 있는 부분이 매력적이다.”
시대를 초월하는 뮤지컬 고민 중
-처음 본 뮤지컬은.
“1985년쯤으로 ‘방황하는 별들’을 봤다. 상업적인 것이 아니라 극단에서 만든 학생들에게 계몽적인 프로덕션이었다. 무대에서 춤과 노래, 연기를 같이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10살 때 꿈은.
“시 쓰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동시를 많이 썼다.”
-대학에서 전공이 뮤지컬 제작에 도움이 됐나.
“국문학과 영화연출을 공부했다. 인문 지식을 많이 갖게 되고 연출에 대한 지식도 쌓을 수 있어서 뮤지컬 제작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어떤 일을 했나.
“프리랜서로 영화사에서는 조연출과 기획으로, 광고회사에서는 크리에이터로 활동했다. 카피라이터로도 잠시 활동했었다.”.
-그러다 어떻게 뮤지컬에 뛰어 들었나.
“영화감독을 목표로 매진하고 있을 때 지인의 소개로 시작하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뮤지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프로듀서로서의 목표가 생긴 것 같다.”
신춘수씨는 지난해 영화 '스토리 오브 마이라이프'로 감독 데뷔의 꿈을 이루었다. 영화의 한 장면.
-지난해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영화 ‘멋진 인생’으로 연출했다. 뮤지컬 연출과 어떻게 다른 경험이었나.
“영화는 감독 중심으로 구현되는 예술이고, 뮤지컬은 다른 크리에이티브 팀, 배우와의 협업을 통해 무대를 구현하는 즐거움이 있는 예술이다. 협업이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 큰 즐거움이 있다.”
-선배 뮤지컬 제작자들인 설도윤, 송승환씨로부터 배운 것은.
“설도윤 대표님과는 각별한 친분이 있다. 나를 많이 가르쳐주시고 이끌어 주신 분이다. 멘토이시다. 도전정신이 뛰어난 분이다. 송승환 대표님은 업계 선배님으로 많은 교감을 나누는 분이다.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를 배울 수 있는 분이다. 두 분 모두 한국공연뮤지컬산업에 대한 영향력이 큰 분들로 후배들이 많이 배우고 있다.”
-제작자로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독립해서 회사를 세웠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여러가지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인정받는 프로듀서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카메론 매킨토시처럼 시대를 뛰어넘어 모두가 좋아하는 뮤지컬을 만들지 못했다. 물론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작품에 대한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고,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달 22일 리바이벌될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키호테 역의 정성화가 ‘맘브리노의 황금 투구’를 부르고 있다. Photo: 오디뮤지컬컴퍼니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맨오브라만차(Man of La Mancha)’. 오래된 작품이지만 대본과 음악이 모두 너무나 훌륭하다. 공연을 제작할 때마다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한국에서 꼭 공연하고 싶은 작품은.
“지금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원스(Once)’를 꼭 한국에서 제작하고 싶다. 그 다음으로는 JCS를 다시 선보이고 싶다.”
프로듀서의 필요충분 조건은 '열정과 사랑'
브로드웨이 작품 중 75%는 제작비를 건지지 못한 채 막을 내린다. 치열한 상업 정신과 합리성이 브로드웨이 게임의 법칙이다. SP
-뉴욕은 자주 방문하나.
“1년에 2-3번 정도 방문하고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하는 작업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서 방문 횟수도 많아지고 체류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즐겨찾는 식당은.
“한국 사람이라 그런 지 미국에 있어도 한식당을 즐겨 찾게 된다. 미팅 때는 46스트릿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오르소(Orso)’에 자주 간다.”
-뉴욕에서 즐기는 것들.
“공연 보기. 그 때 그 때 다르지만 트렌드를 읽기 위해 일부러 핫(Hot)하다고 알려진 장소들을 찾아가기도 한다. 산책하기 위해 공원을 찾지는 않지만, 걷기를 좋아해서 뉴욕에 머물 때는 가능한 걸어서 이동하려고 한다.”
-뮤지컬 제작을 꿈꾸는 이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은.
“뮤지컬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면 충분하다. 인문, 고전을 많이 읽어 넓은 소양을 갖추었으면 좋겠다.”
오마 샤리프와 줄리 크리스티 주연의 로맨스 '닥터 지바고'가 뮤지컬로 각색됐다. 호주와 신춘수씨의 합작으로
올 1월부터 6월까지 서울에서 공연됐다. Photo: 오디뮤지컬컴퍼니
-계획은.
“현재 공연 중인 아시아 초연작 ‘닥터 지바고’ 공연이 끝나면, 6월 ‘맨 오브 라만차’를 무대에 올린다. 그리고 브로드웨이 연출, 작가들과 영화 ‘과속 스캔들’을 원작으로 새 뮤지컬을 개발 중이다.”
-OD뮤지컬컴퍼니의 OD는 무슨 의미인가.
“Open the Door다. 열려진 문(Open Door)은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관문이자 시작점이 되지만, 닫혀있는 문은 다음 장소로 넘어가기 위한 고비지점이기도 하다. 관객과 작품 사이의 문, 새로운 작품의 세계, 그리고 그 곳으로 가기 위해 막혀있던 소통의 벽 등을 여는 것에 지향점을 둔 사명(社名)이다.”
Photo: 오디뮤지컬컴퍼니
☞신춘수
1968년 정월 초하루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다. 경영학을 전공하다 서울예대 영화과로 옮겼다. 곽재용 감독의 ‘비오는 날 수채화’ 조감독을 거쳐 뮤지컬계에 입문. 2001년 OD뮤지컬컴퍼니를 차렸다.
2007년 더 뮤지컬어워즈 최우수 외국뮤지컬상(올 슉 업), 최우수재공연상(지킬 앤 하이드), 2008년 더뮤지컬어워즈 최우수 재공연상(맨 오브 라만차), 2009 한국관광공사 한류 공연상, 더뮤지컬어워즈 최우수 외국뮤지컬상(드림걸스) 및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프로듀서상, 그리고 지난해 한국뮤지컬대상 베스트 외국뮤지컬상(스패멀롯)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