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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은 따뜻하지 않았네

선댄스영화제 수상작 ‘지슬’  2013 '뉴 디렉터스, 뉴 필름스' 초대


깊이 있는 서사와 더불어 시적인 이미지까지 ‘지슬’은 우리 모두를 강렬하게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선댄스영화제 심사평-


 “숨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오멸 감독은 절망에 맞닥뜨린 인간의 삶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버라이어티-


6.jpg 지슬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우는 비극. 아름다운 섬에서 벌어진 우리 민족의 아픈 과거의 상흔을 서정적으로 그린 영화가 선댄스영화제를 거쳐 뉴욕에 왔다. 


1948년 겨울 제주 4.3항쟁을 그린 오멸(Muel O) 감독의 ‘지슬(Jiseul)’ 이 올 1월 선댄스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에서 월드시네마 극영화 부문 심사위원대상(World Cinema Grand Jury Prize)을 수상한 후 ‘뉴 디렉터스, 뉴 필름스(NDNF, New Directors, New Films)’에 초대됐다.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와 뉴욕현대미술관(MoMA)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NDNF는 세계의 신인감독을 발굴하는 비경쟁 영화제다.

한국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박종원 감독), ‘스캔달’(이재용 감독), ‘세친구’(임순례 감독),‘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 감독) 등의 영화가 상영된 바 있다.



제주도 사투리로 감자를 뜻하는 ‘지슬’은 1948년 미 군정 하 제주도를 배경으로 소개령을 피해 깊은 산 동굴로 피신한 마을 주민들과 그들을 쫓는 토벌군의 대립을 그렸다. 특별한 이유없이 빨갱이로 몰렸던 시대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3월 25일 오후 8시30분 MoMA, 26일 오후 9시 링컨센터 월터리드시어터에서 상영된다.


*'지슬 예고편



▶상영일정: Mar 25, 8:30PM@MoMa Titus 1, Mar 26, 9:00PM@Walter Reade Theater  

▶티켓: $12-$15  http://newdirectors.org/film/jiseul



8.jpg 지슬



▶줄거리=1948년 11월 제주 섬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피안길에 오른다. “해안선 5km 밖 모든 이들은 폭도로 몰린다”는 미군정의 소개령이 퍼졌기 때문이다. 영문을 모른 채 산 속으로 피신한 마을 사람들은 곧 돌아갈 생각을 하며 따뜻한 감자들 나누어 먹는다. 이들은 집에 두고 온 돼지가 굶주릴까, 장가는 언제 가나 등 일상의 가정사를 주고 받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배경=1948년 11월 15일, 제주도 북서부 안덕면 동광리로 토벌대 군인들이 들어와 주민들을 학살하고, 사흘 뒤 마을을 불태워버렸다. 동광리 주변 무동이왓, 삼밭마을 주민들까지 120여명이 공세를 피해 산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들이 숨은 곳은 ‘큰 넓궤’(크고 넓은 동굴, 현 용왕동굴)’이다




 오멸-사진_미확정.jpg

▶오멸 감독=제주에서 태어난 오멸 감독은 “내게 제주는 이야깃거리가 가득 담긴 보물창고다”라고 말한 바 있다. ‘뽕돌’ ‘어이그 저 귓것’ ‘이어도’ 등 제주도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온 그는 상흔이 남아 있는 4.3 사건에 카메라를 향했다.



▶한글 자막 나오는 한국영화=영화 출연진은 아마추어들이며, 내내 제주어로 말한다. 오멸 감독은 이해를 돕기위해 표준어 자막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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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삼촌:  영화 '지슬' 이전에 4.3 항쟁을 널리 알린 소설이 있었다. 현기영씨의 소설 '순이 삼촌'이다. 

1978년 제주 출신 작가 현기영씨가 ‘창작과 비평’에 발표하며  제주 4.3 항쟁을 세상에 알린 소설. 1949년 1월 북제주군 조천읍 북촌리에서 벌어진 양민 학살사건을 극화했다. 


학살 현장에서 두 아이를 잃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순이 삼촌은 그날의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경 쇠약과 환청에 시달리며 불행한 삶을 이어간다. 30년 후 그 살육의 현장에서 독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당시 서울사대부고 교사였던 현기영씨는 유신독재 말기에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당하고, 소설은 판금됐다. 


4.3 항쟁으로 희생된 주민의 수는 최고 3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0년 제주 4.3 특별법이 제정되고,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 사과했다. 2009년 4.3항쟁의 첫 피해지였던 북촌마을에 4.3 기념관과 위령비가 설립됐다




'지슬'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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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곶자왈 & 동백동산

제주도에만 있는 독특한 지형의 숲인 곶자왈은 제주도 방언으로 나무와 덩굴이 마구 엉클어져 자연림을 이루고 있는 곳을 뜻한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 당시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나무들과 사랑스러운 단풍의 모습을 보았다”고 전했을 정도로 풍요로운 생명력을 지닌 곳. 옛날 제주 사람들이 곶자왈에서 나무땔감을 구했고 제주 4.3 때는 주민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2 큰넓궤 동굴

실제 제주 4.3 당시 주민들이 소개령을 피해 5~60일 동안 몸을 숨겼던 곳이다. 동굴촬영은 감독, 배우, 스텝 모두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큰넓궤동굴 입구는 사람이 엎드린 채 기어가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았고, 칼바위라 불리는 내부를 통과하며 전 스텝의 외투가 모두 찢어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장비를 담요로 둘러 보호하고 썰매로 끌어당겨 어렵게 촬영장소까지 운반했다.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배우들은 몸을 사리지 않았다. 영화 후반부에 동굴 속으로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아대는 군인들을 주민들이 불을 피워 연기로 내쫓는 장면이 있다. 처음에는 가짜 연기를 피울 계획이었는데 배우들이 손수 나서서 고추를 태웠다.

  


 #3 돌문화공원 

제주 특유의 돌문화를 집대성한 돌문화공원은 전통적인 주거환경과 제주만의 아름답고 다채로운 자연의 모습이 담겨 있어 ‘지슬’ 대부분의 촬영이 이곳에서 이뤄졌을 정도로 촬영지로서는 최적의 장소였다. 하지만 산간지역에 위치해 있는 돌문화공원의 추위는 같은 제주라 하더라도 다른 곳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매일 아침 마치 전장에 나가는 마음으로 바지를 세 겹씩 입고 온 몸을 핫 팩으로 무장한 채 돌문화공원을 향하곤 했다. 게다가 깊은 산골이라 조명이 없으면 암흑 그 자체가 되곤 했다. 아름다움 이면에는 냉혹한 자연이 있었다. 


하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일도 찾아왔다. 카메라를 고정시킨 후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인서트컷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아무도 건드린 적이 없는 카메라가 혼자 서서히 줌 인을 하고 있었다. 이를 모두들 ‘귀신컷’이라 불렀다. 



5.jpg 지슬

  


#4. 용눈이 오름

오름 역시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지형으로 특히 용눈이 오름은 급격한 경사의 여느 오름과 달리 평탄하고 부드럽다. 368개에 이른다는 제주 오름들 중 유일하게 세 개의 분화구를 함께 가진 특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지슬’을 촬영한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그 해의 겨울은 유독 눈이 많이 내렸다. 제주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용눈이 오름 위에도 눈이 하얗게 쌓였고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몇몇 관광객들이 즐거워하며 사진 찍는 모습을 스쳐 지났다. 이곳에서는 군인 상덕과 순덕이의 긴장감 넘치는 대치 장면을 담아냈다. 


순덕 역할의 배우 강희는 연기 경험이 전혀 없어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긴장을 많이 한 듯 했다. 게다가 표정연기까지 요하는 장면이었는데 초보답지 않게 “잘했어! 표정 연기되네“라는 오멸 감독의 칭찬까지 받으며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용눈이 오름에서 상덕이 순덕에게 총을 겨누는 이 장면은 이후 국내, 해외 포스터로도 쓰일 정도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5 이어도사나  

 오멸 감독의 페르소나라 불리는 배우 양정원의 본업은 사실 ‘제주어로 제주를 노래하는 가수’로 전작 ‘어이그, 저 귓것’에 이어 ‘지슬’에서도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를 선보였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와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했던 노래 ‘이어도사나’이다. 제목은 제주민요에서 따온 것이다. 민요 ‘이어도사나’가 해녀들이 바다에 나갈 때 이별 없는 영원한 이상향에 대해 부른 노래인 것처럼, 양정원 표 ‘이어도사나’ 역시 제주의 근원이자 생명이라 할 수 있는 ‘해녀’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제주’는 오랫동안 해녀, 어머니의 모습으로 투영되어 왔다. ‘지슬’ 엔딩곡 ‘이어도사나’의 가사가 말해주듯 몸을 띄우는 역할의 ‘테왁’ 하나에 목숨을 의지한 채 매일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했던 어머니의 눈물이 바다를 이루고 그 눈물을 먹으며 자라온 것이 우리들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꿈꾸던 유토피아 같은 곳이 ‘이어도’라는 환상의 섬인 것이다. 그러나 그 섬은 멀고 삶은 고단하다. 


 경쾌한 멜로디와는 달리 제주라는 드넓고 따뜻한 땅이 품고 있었을 고달픔과 기나긴 슬픔이 배어있는 ‘이어도사나’는 따뜻한 감자를 나눠먹으며 추운 동굴 속에서의 시간을 견디었던 ‘지슬’의 마을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과도 이어져 뭉클한 감동을 준다. 무엇보다 제주 4.3으로 이름 없이 사라져간 이들이 되돌아간 곳은 어머니의 땅 제주의 품이기에, 그리고 어쩌면 그곳이 그토록 닿고자 했던 ‘이어도’이기에 먹먹한 울림이 한참 마음에서 가시지 않는다. 한편 ‘이어도사나’는 배우 양정원을 비롯해 출연진들이 함께 불러 의미를 더했다.



3.jpg 지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