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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고픈 화가들의 아버지' 알리지에로 보에티 회고전

Alighiero Boetti: Game 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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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름은 알리지에로 & 보에티. 자신을 일란성 쌍둥이로 표현한 보에티의 자화상(1968). MoMA 회고전 '게임 플랜'의 입구. Photo: Sukie Park  

  

 

가난한 화가의 초상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핀란드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 ‘라 비 드 보엠(La Vie de Boheme)’이다. 푸치니 작곡 오페라 ‘라 보엠’을 각색한 이 영화에서 가난한 화가는 모델을 구하지 못해 자신의 개를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 자화상을 그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지만, 예술가에게 ‘빈곤은 창작의 어머니’일지도 모른다. 캔버스와 물감조차 비싸게 느껴질 때 일상생활의 소품이나 버려진 물건들을 이용한 믹스드미디어 작업을 하는 것이 지금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1960년대 그건 미술계의 신선한 조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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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변기를 갤러리에 갖다 놓고 아트(Art)라고 한 마르셸 뒤샹이 가난한 화가, 혹은 게으른 화가의 원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가난한 미술을 의미하는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운동의 선구자가 있었으니, 그가 알리지에로 보에티(Alighiero Boetti, 1940-1994)다. 그는 우표, 엽서, 잡지, 스타이로폼, 볼펜, 석고 등 일상의 물품을 소재로 작업한 ‘배고픈 화가들의 아버지’였다. 그에게 미술의 소재는' 무엇이든 된다(Anything Goes)'의 개방 철학이 깔려 있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7월 1일부터 10월 1일까지 알리지에로 보에티의 회고전 ‘알리지에로 보에티: 게임 플랜(Alighiero Boetti: Game Plan)’을 연다.

 

 보에티 회고전은 MoMA, 마드리드의 현대미술관 ‘무세오 레이나 소피아(Museo Reina Sofia)’와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이 전시는 3-5월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후 MoMA로 순회 전시되는 것이다. 

 

 

개방시간: 수-월 오전 10시30분-오후 5시, 금요일 오후 8시, 첫째 목요일 오후 8시30분. 화요일 휴관, 추수감사절•크리스마스 휴관.*여름(6월 26일-9월 25일, 화요일도 오픈)  ♤입장료: 성인($25), 65세 이상($18), 학생($14). 금요일 오후 4시 이후는 무료. 11 West 53rd St. www.mom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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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에티는 무엇이든 미술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가 가장 좋아한 곳은 하드웨어 스토어였다. SP

 

 


▶알리지에로 보에티: 보에티는 1940년 자동차 피아트(Fiat)로 유명한 토리노(영어 튜린 Turin)에서 변호사(아버지)와 바이올리니스트(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토리노는 예수의 성의를 보관한 성당과 함께 동계올림픽으로 유명해진 도시다. 보에티는 토리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보에티의 영웅: 소년 시절 보에티는 소설가 헤르만 헤세, 화가 바우하우스, 폴 클레를 숭배했다. 열일곱살 때 독일 원조 액션 페인팅 화가 볼스(Wols)와 아르헨티나 출신 이탈리아 화가 루치오 폰타나의 캔버스 절개 그림을 발견한 후 화가가 되기로 결심, 대학교를 중퇴한다.

 

▶파리 유학: 보에티는 스무살 때 판화 공부하러 파리로 갔다. 2년 후 미술비평가 안나마리 사우조를 만나 결혼에 이르렀다. 둘 사이에는 자녀 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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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be,  Wood, polystyrene, stell rods, aluminum, fiberglass, cardboard,
plastic, glass, rubber, wire wool and glue in a Plexiglas box. 1968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의 선구자: 보에티는 고향 토리노에서 루치아노 파브로, 마리오 메르츠, 줄리오 파올리니,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등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아르테 포베라 운동의 기수가 됐다.

 

1963년부터 보에티는 코르크, 전선, 헝겊, 석고, 섬유판(masonite), 플렉시글래스, 조명기구나 산업 재료를 이용해 작품을 제작했다. 1967년 토리노에서 첫 개인전을 한 후 제노아에서 ‘아르테 포베라’ 작가들과 그룹전을 열게 된다. 아르테 포베라는 미술비평가 제르마노 첼란트(Germano Celant)가 붙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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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리노에서 선탠하고 있는 나, 1969년 1월 19일. 111 pieces of concrete molded by hand cabbage, butterfly,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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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 것도 없고, 감출 것도 없다. Iron and glass, 1969(오른쪽), 비디오, Unidentification: Aleghiero Boetti, Untitled-
  토리노, 1970년 9월 24일.16mm film, b/w, sound, 1970 

 

 

▶가난한 미술과의 결별: 1969년 보에티는 이중성과 복잡성, 질서와 무질서, 여행과 지리, 그리고 우편과 지도 등을 탐구하면서 아르테 포베라와 서서히 멀어져가기 시작한다.
 

 

난 건축재료를 파는 가게에 갔다. 그곳에 있는 훌륭한 물건들을 봐서 무척 즐거웠다. 그 모든 물건들을 보니 무척이나 열광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가서는 구토증까지 생겼다. 하지만 아직도 ‘아르테 포베라’의 가장 좋았던 순간들은 철물점에서의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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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al Work, 1970 


 

▶우편 미술: 보에티는 1969년 여름부터 친구, 가족, 동료 화가들에게 상상의 주소를 쓴 편지를 보내기 시작하는 ‘Viaggi Postali’ 작업을 시작했다. 수취인 불명으로 돌아온 편지를 다시 부재하는 주소로 발송하는 작업. 이를 통해 보에티는 그가 존경했던 사람들을 위한 상상의 여정을 창조했다.

 

1970년대 보에티는 세계 여행 중 우표를 조합해 봉투에 붙여 고향의 기념비적인 그림이 있는 엽서를 자신에게 보내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우표와 엽서, 편지봉투 콜라쥬 작품이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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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에티가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연 원 호텔. © 2012 Estate of Alighiero Boetti

 

 

▶아프가니스탄 여행: 1971년 보에티는 개인전에서 작품 전작을 팔았다. 체크를 받아든 그는 바로 공항으로 갔다. 그리고 물었다. “다음 비행기는 어디로 가나?” 20분 후에 아프가니스탄 행 비행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로부터 보에티의 화가로서 새로운 시작이다.

 

보에티는 1979년 소련이 침공하기 전까지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원 호텔(One Hotel)’이라는 숙소를 운영하면서 카펫 기술자들과 자수가들을 동원해서 지도(Mappas), 사각 단어(Arazzi), 모든 것(Tuttos)을 주제로 한 공동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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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찌감치 세계를 여행하며 정치분쟁에 눈을 뜬 보에티가 아프카니스탄에서 자수로 제작한 세계 지도. 1971-72 

 

 

“나는  한 방향으로만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 방향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1969년 봄, 난 토리노의 작업실을 떠났다. 그건 재료의 창고가 되버렸다. 난 이 모든 것을 떠났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이 한장과 연필로, 제로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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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 12월. 당시 잡지의 커버를 캔버스 위에 연필로 그렸다. 1983.

 

  

▶볼펜 그림: 보에티는 1973년부터 비로(Biro) 볼펜을 써서 모노크롬 색면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세상 속에 세상을 불러오다(Mettere a mondo il mondo)”는 보에티가화가로서 무엇을 발명한다기보다는 기존의 물질들을 작업에 불러온다는 의미다. 보에티에게 소재와 재료는 ‘무엇이든(Anything Goes)’이었다. 재료의 다양성, 개념의 복잡성과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보에티 작품의 에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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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펜 그림 The Six Sense(1974-75, 왼쪽)와 세상 안으로 세상을 들여오기(오른쪽). SP

 

 

 

볼펜 그림(lavori biro) 작업 때 보에티는 친구들과 지인들을 불러 큰 종이에 볼펜을 칠해 메꾸도록 했다. 1972년 볼펜 그림을 시작한 보에티는 80년대까지 지속하게 된다. MoMA에 전시 중인 ‘6감(I Sei Sensi, 1973)’는 알파벳과 콤마를 사용해 이탈리아어로 보기, 맛보기, 만지기, 듣기, 냄새 맡기, 생각하기 등의 6감을 표현하고 있다.

 

▶유랑 화가: 보에티는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구아테말라, 이디오피아, 수단 등 비서구권을 여행하면서 세계 정치에 관심을 가졌으며, 지역의 싼 노동력을 활용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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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atemala. 1974

 

 

▶연간 조명(Lampada Annuale, 1966): 아르 포베라의 대표작은 거울이 부착된 나무  상자 안에 전구 하나를 설치해 매년 무작위로 11초간만 불을 밝히는 작품이다.

 

 

▶알리지에로 & 보에티(Alighiero e Boetti): 1973년 아르테 포베라와 작별하며 로마로 이주한 보에티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에로 & 보에티’로 개명했다. 이를 통해 보에티는 개인과 사회, 실수와 완벽, 질서와 무질서 등의 상반되는 개념을 작품에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1968년 일란성 쌍둥이로서 자신의 자화상(I Gemelli)을 발표한다.


 

 

“때때로 나는 양손으로 그린다. 보통 난 오른손 잡이다. 내가 왼손으로 그릴 때는 나 자신의 긍정과 부정, 자아와 또 다른 자아, 질서와 무질서를 탐구해서 종이에 올리는 나 자신과의 대화와도 같다. 그것은 마치 한 손에 알리지에로와 타자인 보에티가 있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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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을 오가면서 자수 기술자들을 기용해 제작한 지도, 모든 것, 러그 작품. 2층 아트리움에서 볼 수 있다. SP

 

 

▶지도와 자수: 보에티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자수 기술자들에게 자신이 디자인한 프로젝트를 맡겼다. 그러나, 컬러의 조합이나 모양을 차차 기술자들에게 맡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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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Mappa): 보에티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세계 ‘자수’ 지도일 것이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 보에티는 전쟁지역을 보도한 신문을 수집해서 71년까지 정치위기 지역의 지도 ’1967년 6월 10일부터 12가지의 모양(Dodici forme dal 10 guigno 1967 (Twelve Shapes Starting from 10 June 1967, 1967-1971)’을 제작했다. 보에티는 자수학교의 여성들에게 위임해 각 나라 지도 안에 국기가 들어가도록 디자인했다.

 

  

“내게 자수 지도 작업은 아름다움의 최고치다. 난 한 일이 없다. 선택한 것도 없다. 세상은 그 대로 만들어진 것이지, 내가 디자인한 것이 아니다. 국기는 기존에 있는 것이지 내가 디자인한 것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 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컨셉이 나왔을 때 나머지는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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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tto(Everything), Embroidery on cloth, 1992-93

 

 

▶모든 것(Tutto): 1975는 삼라만상을 조합한 ‘모든 것(Tutto)’ 작업을 시작했다. 백과사전, 학교 교재, 잡지, 신문 등을 소재로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사물을 모티프로 아프가니스탄 여인들이 컬러풀하게 모자이크 자수를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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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집약 작업: 수학과 음악에 자질이 있었던 보에티는 자수작품 ‘세계에서 가장 긴 강 1000(Classificazione dei Mille Fiumi piu Lunghi del Mondo, 1977)’을 제작했다.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 조사에만 7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긴 강 1000 목록은 이후 ‘보에티 리스트(Boetti List)’로 불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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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보에티는 1993년 청동 조각으로 ‘자화상’을 제작했다. 호수로 열이 나고 있는 머리에 물을 뿌리고 있는 모습이다. 아티스트는 자고로 풍부한 아이디어로 머리가 뜨거워져야 한다는 것. 그는 이듬해 뇌종양으로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53세였다.  

 

 

▶경매: 1989년 크리스티 런던에서 ‘지도(Mappa, 1989)’가 275만 달러에 팔렸다. 같은 해 볼펜 그림 ‘Ononimo, 1973’은 크리스티에서 160만 달러에 낙찰됐다. 2011년 ‘모든 것(Tutto, 1988)’는 크리스티 런던에서 200만 달러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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