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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5 01:26
마종기 시인: 모국어의 아름다움에 취해 시를 쓰는 것은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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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속에 들어가 살고 싶다"
의사 시인에서 전업 시인으로... 마종기 시인의 세계
"모국어 아름다움 취해 시 쓰는 것은 축복"
"너무 아름답고 빛나서
보이지 않는 詩
의미가 없어진 詩
너무 순하고 깨끗해서
이해할 수 없는 詩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詩
혈혈단신의 몸이 다시 되어
그 詩 속에 들어가 살고 싶다
그 詩의 눈물에 빠져
끝없이 헤엄치고 싶다."
-잡담 길들이기 7-
플로리다에 사는 마종기(67.사진) 시인이 최근 시집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문학과 지성 간)과 영문 시선집 '이슬의 눈(Eyes of Dew)'(안선재 역.화이트파인프레스 간)을 출간했다.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방사선과 의사로 일하면서 꾸준히 시를 써오던 '의사 시인' 마씨는 4년 전 은퇴 후 '전업 시인'으로서 뒤늦게 작가로서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마씨는 1939년 일본 동경에서 아동문학가 마해송씨와 무용가 박외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의대와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1966년 미국으로 이주, 톨레도에서 방사선과 의사로 근무하다가 2002년 은퇴했다.
1959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해부학 교실'을 발표하며 등단한 후 시집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이슬의 눈'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등을 출간했다.
마씨는 학원문학상을 비롯해 한국문학작가상 미주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제목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는 어디서 왔나.
"시집 제목 달기는 골칫거리다. 시집 해설을 쓴 젊은 시인 권혁웅씨가 제안한 것이다. 물론 내 시집에 몇번 되풀이해 나오는 구절이다. 아마도 내가 멀리 미국에 살고 있는 것을 상기해서 어울릴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이민 40년 동안 시는 어떤 의미였나.
"시는 내게 위로와 힘을 주었다. 한국인이 별로 없는 중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미국 의사들과 매일 부딪히며 미국 환자들을 보며 영어로만 생활해야 하는 고된 미국 생활에서 모국어를 다듬으며 모국어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시를 쓰는 시간은 내게 축복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 시를 읽어주는 분들이 내 시에서 그 분들 나름대로 모국을 떠나 사는 생활에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기를 바란다. 모국을 떠나 사는 많은 이들이 모국어로 글쓰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의사로 일하면서 환자의 생과 사를 목도한 것이 시 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환자들의 생과 사를 보면서 사실은 내가 시인이 되었다. 만약 내가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시인의 생명은 길지 못했을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내가 고국을 떠나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열심히 시를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학에 대한 막연한 취미 만으로는 그 긴 세월 시인으로 살아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할 만큼 미국 생활과 의사생활이 내 시의 근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06년 6월 29일 뉴욕한국문화원에서 열린 마종기 시인과 동포 문학인들의 만남에서. Photo: The Korea Daily
-'의사 시인'에서 '전업 시인'이 된 소감은.
"처음에는 초조감이 들기도 했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내 문학에서 시도하겠다는 의욕이 치솟기도 한 감정적으로 복잡한 몇 해였다. 지난 4년 동안 고국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져 문인 친구들과 시간을 많이 가졌고 뒤로 미루어오던 일들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그 첫째가 지난 30여년 드물게 써 모은 산문들을 모아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을 발간했다. 올해 시선집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를 냈고 그 시선집을 주축으로 해서 영시집이 얼마 전 나온 것도 '의사' 노릇 때문에 못했던 일이다. 내 영시집을 번역한 안토니 수사(안선재 교수)와 수십시간을 만나면서 번역된 한편 한편의 시를 고치고 닦은 것도 고국에 오래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선친의 100세 기념 문학강연회가 두세군데 열려서 그 모임을 위해 '아버지 마해송'이란 책을 간행했다."
-번역된 한국시가 미국에서 상업성이 있나.
"한 마디로 쉽지않은 것 같다. 이번에서야 알게된 것이지만 우선 한국의 현대시가 미국에 전혀 알려져있지 않은 형편이다. 그간 국가 보조금으로 10여 시인의 시집이 문학전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지만 하버드와 버클리 등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이나 몇 교수들 앞에서 시를 읽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 누구의 시집도 미국서 100권을 팔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나 역시 경악했다.
어차피 현대시는 미국 사회에서 그 난해성으로 외면을 당했고 그것은 서구 사회에 공통된 사정이다. 이떻게 시장을 개척하고 시의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오늘날 시인의 역할은.
"선구자도 아니고 진리 발견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인은 기계적이고 통계학적이고 편견에 사로 잡힌 그리고 고도의 문명의 이기에 짓밟혀져있는 동물적인 인간으로 하여금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고급한 인간이 되도록 도와주고 순화시켜주고 각성시켜 주려는 운동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박숙희 기자/뉴욕중앙일보
*이 인터뷰는 뉴욕중앙일보 2006년 12월 5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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