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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기, 돌멩이와 노끈이 함축한 철학 

이승택의 '고드렛 돌'(1958)@테이트 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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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폴 성당의 종탑에서 내려다본 전경. 밀레니움 브리지를 건너 굴뚝처럼 길쭉한 구조물이 있는 건물이 테이트 모던.
 
최근 런던을 방문해서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 들른 이유는 두 명의 제 3세계 여성 미술가들의 특별전에 끌렸기 때문이다. 
 
지난 7월 페미니스트 작가 주디 시카고가 브루클린뮤지엄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여전히 뮤지엄들이 남성 중심’이라고 비판했었다. 
 
마침 올 여름 뉴욕의 메이저 뮤지엄에선 르 코르뷔지에, 엘스워스 켈리(MoMA), 제임스 터렐(구겐하임), 로버트 어윈(휘트니), 켄 프라이스, 임란 쿠레쉬(메트뮤지엄) 등 올 남성작가들의 무대였다.  올 가을에도 르네 마그리트(MoMA), 로버트 인디애나(휘트니), 로버트 마더웰(구겐하임) 특별전 등 남성 작가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schendel_t1999_34_gs-graphicobject.jpg 미라 셴델
테이트 모던에서 브라질 출신 여성작가 미라 셴델(Mira Schendel, 1919-1988)과 97세의 레바논 여성 작가 살루아 라우다 슈케어(Saloua Raouda Choucair, 1916-)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변방의 여성작가들을 초빙한 기획전에서 테이트 모던의 앞서가는 지성을 읽을 수 있었다. 가부장적인 뮤지엄의 관습에서 벗어나 앞으로 전진하는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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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루아 라우다 슈케어
토요일 밤 10시까지 오픈하기에 늦게 갔더니, 겨우 슈케어 전시만 볼 수 있었고, 셴델 전은 들어가지 못했다. 그 덕에 소장품 갤러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승택씨의 '고드렛 돌'을 만났다.
 
MoMA와 함께 세계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있는 테이트 모던은 2000년 테임스강변 뱅크사이드 발전소를 보수해서 오픈한 미술관이다. 철도역을 보수한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만큼 로맨틱하지는 않지만, 거대하다. 
 
테이트 모던은 지난해 530만명의 방문객을 끌며, 루브르, 메트, 대영박물관(브리티쉬뮤지엄)에 이어 4번째의 최다 방문객수를 기록했다. MoMA는 280만명으로 14위에 그쳤다. 테이트 모던은 MoMA(입장료 $25)와는 달리 특별전을 제외하고는 입장이 무료다. 또, 토요일과 금요일엔 밤 10시까지 오픈한다. http://www.tate.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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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테이트 모던에 전시된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임바크먼트(Embankment, 적재)'은 백색 레고 설치작 같았다.
 
테이트 모던에선 오픈 초기 연대별이 아닌 주제별로 콜렉션을 전시했다.
 
▶역사/기억/사회(History/Memory/Society)
▶누드/액션/신체(Nude/Action/Body) 
▶풍경/상황/환경(Landscape/Matter/Environment) 
▶정물/오브제/실 생활(Still Life/Object/Real Life)
 
 
2006년 컬렉션 전시를 다시 조정했다.
 
▶물질적 제스처(Material Gestures, 끝남)=인상주의와 추상표현주의. 모네, 마티스, 마크 로스코, 바넷 뉴만, 아니쉬 카푸어
▶시와 꿈(Poetry and Dream)=초현실주의, 키리코, 프란시스 베이컨, 신디 셔만
▶에너지와 절차(Energy and Process)=아르테 포베라. 알리지에로 보에티, 마리오 제르트, 제니 홀처 등
▶플럭스의 상태(끝남): 큐비즘, 미래파, 팝아트 등 피카소,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등
 
 
최근 테이트 모던을 방문했을 때 4층의 ‘에너지와 절차’ 섹션에 이승택씨의 고드렛 돌이 전시 중이었다. 
 
1960년대 이탈리아의 조각가 알리지에로 보에티(Alighiero Boetti) 등은 작업 과정을 강조하면서, 작품 내에 에너지의 아이디어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일상 생활에서 발견한 재료를 활용한 미술이 부상했다.
 
지난해 7월부터 10월 초까지 MoMA에서 열린 ‘알리지에로 보에티: 게임 플랜(Alighiero Boetti: Game Plan)’는 테이트 모던을 거쳐 MoMA로 순회된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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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택 Seung-Taek Lee(1932- ), 고드렛 돌(Godret Stone,1958), 돌 40개, 나무 막대 2, 노끈, 740 x 1730 x 100 mm
2013년 아시아-태평양 구입 위원회 기금으로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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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택(1932- )씨의 ‘고드렛 돌’(1958)은 가난한 미술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의 선구자인 알리지에로 보에티(1940-1994)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보에티가 일상의 재료로 작업하기 전 이승택씨는 돌멩이와 나무 막대, 노끈 같은 오브제를 발견했다.
 
고드렛 돌은 돗자리 짤 때 노끈이나 새끼를 감아 늘어뜨리고, 풀어줄 수 있는 돌이다. 그 돌을 끈으로 묶어 막대에 매달아 단단한 돌멩이가 연약하고, 부드러워 보인다. 긴 막대에 달려있는 돌들은 끈의 길이에 따라 악보처럼 리드미컬하다. 막대는 지레 저울처럼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 하다. 그 막대는 도그마나 이데올로기, 혹은 리더십으로 보아도 좋다. 아래 매달린 돌멩이들이 인간의 자유의지와 감성이라면, 막대는 통치의 이성이라고나 할까.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그리고, 지구촌의 이질적이고, 다양한 컬러를 조율할 수 있는 이성. 조화와 평화, 그리고 그 아름다움. 이승택씨의 돌멩이들, 노끈과 막대가 던져주는 하모니는 의미심장하다.
 
이승택씨는 1932년 함경남도 고원에서 태어나 1959년 홍익대학교 조각과를 졸업했다. 2009년 제 1회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을 수상했다. http://www.galleryhyundai.com/kor/artists/introduction.asp?SiteNum=1&ArtistsPK=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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