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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rley Temple 셜리 템플 타계 


아역 스타에서 외교관, 이제 저 하늘의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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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long as our country has Shirley Temple, we will be all right.”

  -Franklin D. Roosevelt-



곱슬머리 금발과 보조개, 춤과 노래로 공황기 미국인들의 마음을 달래주던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아역 스타 셜리 템플(Shirley Temple)이 10일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5세.


셜리 템플은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스타였을 뿐만 아니라 약물 중독이나 스캔달 없이 21세에 은퇴했다. 이후 정치계로 입문 가나와 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미 대사로 일하며 제 2의 인생도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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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은 1935년 아카데미상 특별상으로 제정된 아역상을 수상했으며, 1935년부터 1938년까지 할리우드 흥행의 여왕이었다. 할리우드의 은하계에서 클라크 게이블, 빙 크로스비, 로버트 테일러, 게리 쿠퍼, 조안 크로포드 등을 제치고 4년간 최대의 관객을 끄는 스타였다.


*Shirley Temple: Singing and dancing (1932-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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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 스타 템플은 또한 인종의 장벽을 넘나들었던 배우였다. 템플은 스크린 속 흑인 남자 배우와 손을 잡은 최초의 백인 여우이기도 했다. 1935년 영화 ‘꼬마 대령(The Little Colonel)’에서 빌 “보장글스’ 로빈슨과 춤추고 노래하면서 인종장벽을 깨는데 수훈을 세웠다.


*Bill Bojangles Robinson and Shirley Temple Tap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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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여배우에게 스캔달은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지만, 리틀 셜리는 1949년 ‘씨비스킷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총 43편의 영화를 뒤로 하고 쇼 비지니스계를 은퇴하게 된다. 그녀 나이 2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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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서의 인생 제 1막을 끝낸 후 제 2막은 정치계였다. 1967년 공화당 소속으로 캘리포니아 의원직에 도전했다가 좌절한다.


이후 닉슨, 포드, 레이건과 부시(아버지) 대통령을 거치면서 가나와 1989년 ‘철의 장막’ 공산주의가 무너지던 체코슬로바키에서 대사직을 지냈다.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셜리 템플 블랙 대사의 ‘터프함’에 칭찬을 했다고 알려졌다.


*아역 스타: 셜리 템플 스토리(2001) TV 영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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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리 템플은 1928년 4월 23일 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에서 태어났다. 세살 때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 다섯살 때 이미 스타덤에 올랐다. 템플은 ‘Curly Top’ ‘The Little Rebel’ 등 흥행작에 출연하며 파산 위기에 빠졌던 20세기 폭스사를 구해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은 “우리 나라에 셜리 템플이 있는 한 우리는 괜찮다”는 말까지 했다.


8세 생일 때 셜리 템플은 전 세계 팬들로부터 무려 13만5000여점의 선물을 받았다. 그 중에는 호주에서 보내온 새끼 캥거루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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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자신의 딸들에게 셜리 템플 인형, 레코드, 머그잔, 모자와 옷을 사주었으며, 어린이용 비 알코올 ‘셜리 템플 칵테일’도 나왔다. 


그러나, 템플에겐 정상적인 어린 시절이 결여됐다. 산타도 믿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셜리는 엄마와 백화점에 갔더니 산타 복장의 할아버지가 셜리에게 사인을 요청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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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리 템플에겐 엄격한 매니저 어머니 거트루드가 있었다. 어느날 어머니는 감독이 촬영장에서 셜리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호통을 쳐서 우는 장면을 찍게 하는 것을 본 후 격분해 이후부터는 결코 딸과 떨어져 있지 않았다고 한다.


1949년 할리우드에서 퇴장했던 템플은 1958년 NBC-TV의 '셜리 템플 스토리북'의 사회자로 등장했으며, 2년 후 '셜리 템플 쇼'에 출연했다.


템플은 16세에 고등학교 동창이자 해군 출신 배우 존 에이가와 결혼했다. 그러나 22세에 자신의 영화를 한편도 안본 파인애플 회사 간부 찰스 블랙과 사랑에 빠져 12일만에 웨딩마치를 울렸다. 셜리 템플 블랙의 재혼은 55년간 남편이 사망할 때까지 지속됐다. 템플에겐 1남 2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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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rley Temple's SAG Life Achievement Award Presentation-2006



그의 삶에서 가장 어두었던 시절은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였을 것이다. 1972년 유방 절제수술을 받았고, 여성들에게 “집에 앉아 불안에 떨고 있지 말라”고 역설했다. 1988년 출간된 자서전 ‘아역 스타(Child Star)’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2001년 자서전을 원작으로 TV 영화 '아역 스타: 셜리 템플 스토리'가 제작됐다.


1999년 미영화협회(American Film Institute)는 셜리 템플을 50명의 ‘영화 전설’ 중 여배우 25명에서 18위에 선정했다.


2006년 영화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은 템플에게 평생공로상을 헌사했다. 할리우드 커플 토니 커티스와 자넷 리의 딸 제이미 리 커티스가 시상한 이날 템플은 “여러분께 한가지 조언을 하고 싶어요. 평생 공로상을 받으려면, '일찍' 배우 생활을 시작하세요!"라고 농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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