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Kim Yeong-Nang, Until Peonies Bloom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Until Peonies Bloom
Kim Yeong-Nang
Until peonies bloom
I just go on waiting for my spring to come.
On the days when peonies drop, drop their petals,
I finally languish in sorrow at the loss of spring.
One day in May, one sultry day
when the fallen petals have all withered away
and there is no trace of peonies in all the world,
my soaring fulfillment crumbles into irrepressible sorrow.
Once the peonies have finished blooming, my year is done;
for three hundred and sixty gloomy days I sadly lament.
Until peonies bloom
I just go on waiting
for a spring of glorious sorrow.
Translated by Brother Anthony/An Sonjae
*Published with permission from Brother Anthony.
김영랑(1903∼1950)
본명 김윤식. 전라남도 강진에서 대지주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한학을 배웠다. 열세살에 결혼했으나 이듬해 사별했다. 1919년 3.1운동 때 강진에서 의거하다 체포되어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다 관동 대지진 때 귀국. 스물넷에 재혼했다. 1930년 정지용·박용철과 ‘시문학’ 동인에 가입하며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을 탈출하지 못하고 포탄 파편에 맞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