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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영주: 사위 사랑은 오토바이를 타고
뉴욕 촌뜨기의 일기 (2)
사위 사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난해 생일날 맏사위와 오토바이를...
제게는 사위가 셋입니다. 딸이 셋이니 응당 사위도 세 명일 것이다? 아니지요. 작년까지만 해도 제게는 사위가 두 명 밖에 없었습니다. 2006년에 막내가 갑자기 결혼했고, 둘째가 2011년에 결혼했습니다. 그 둘째가 결혼 다음 해인 2012년 10월에 손자 블루를 낳았습니다.
두 딸은 결혼했는데, 혼자 남은 첫째가 제겐 여간 큰 걱정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남의 집 일에 관심들이 많은지 만나는 사람마다 “따님들 모두 결혼하셨나요?”하고 물으면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본인들이 하는 대로 했더니 결혼 순서가 거꾸로여서 그것도 설명하기 불편했습니다. 늘 불편해서 전전긍긍하던 차에 드디어 작년 8월 21일, 첫째까지 결혼했으니 이젠 마음의 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위 얘기를 하자니 막내가 결혼했을 때 생각이 불현듯 마음을 흔듭니다. 아주 괘씸하게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결혼하기 전날 전화로 “엄마, 내일 제일 예쁜 옷 입고 맨하튼으로 나와.”, 하길래, “왜?”, 하고 물었더니 “나 내일 결혼해.”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습니까? 한동안 함께 사귄 사이니 혹여 결혼한다고 해도 반대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라면, 세상의 어떤 엄마든 모두 딸의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잖습니까? 저도 항상 딸 결혼을 꿈꾸며 “작은 성을 하나 빌려서 꽃으로 장식하고, 음식은 내가 만들고 어쩌고...”하면서 계획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전날 전화로 일방적인 통보를 하다니. 이건 절대 용납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나중에 큰애한테 얘기 들으니 제가 전화통 속에서 40분 동안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밤 늦게 겁에 질려 밥도 못 먹고 얼굴이 하얘서 둘이서 제 집으로 찾아오는 바람에 마음 약한 저는 그들에게 밥을 먹였고, 밥만 먹으면 제게는 모든 것이 만사형통입니다. 그래서 다음 날 예쁘게 차려 입고 맨하튼에 나가 시청에서 결혼 하는 둘의 결혼을 온 마음 다해 축하해주었습니다.
둘째 사위는 벨지움 사람입니다. 2010년, 뉴욕에 여행 왔다가 우연히 둘째와 만나 그야말로 첫눈에 반해서 초스피드로 2011년 2월에 결혼했습니다. 그는 한 마디로 낭만 청년입니다. 감성이 풍부하고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 벨지움에서 광고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습니다. 얼마 전엔 큰 사위가 이탈리아 신문에 ‘현재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광고인 20명’에 둘째 사위가 들어있다며 이메일을 보내준 적이 있습니다.
눈 치 채셨겠지만, 맏사위는 이탈리아 사람입니다. 막내 사위는 시카고 토박이 미국인이니 우리 가족은 그야말로 글로벌 가족입니다. 이탈리아는 여러모로 우리 한국과 통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선지 맏사위와 저는 대화가 잘 통합니다. 무슨 얘기든, 제 영어가 대화 나눌 수 있는 수준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로 부담없이 얘기를 합니다.
작년 제 생일엔 뉴욕에 첫째네 밖엔 없었습니다. 첫째는 소호의 로맨틱한 식당에 저녁 예약을 해놓고 저를 픽업하러 온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되자 나타난 것은 사위였습니다.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가지고 저를 데리러 온 것입니다. 제가 눈이 휘둥그레지자 “마리아가 오토바이로 어머니 모시고 오라고 했어요. 제가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갈 거니까 안심하세요.”, 하면서 제게도 헬멧을 씌워 주었습니다. 생일이라고 빨간 드레스를 입고 검정색 롱가디건을 걸치고 한껏 맵시를 낸 저는 “아이, 어떻게?”, 짐짓 무서운 척 하면서 그의 등 뒤에 올라 허리를 양팔로 꽉 끌어 안았습니다. 사위는 미트팩킹 디스트릭트에서부터 소호까지 얌전하게 오토바이를 몰았습니다.
복근이 웬만한 운동선수 뺨치는 사위의 등과 허리는 돌덩이처럼 단단하고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젊은이 등에 그렇게 기대어 본 것도, 허리를 안아본 것도 제겐 첫 경험입니다. 사위 등에 기대니 기분이 좋아지고, 가슴도 설레고, 마치 젊은 시절에 사랑하는 사람의 등에 기대어 고속도로라도 달리는 느낌으로 저도 모르게 볼이 달아올랐습니다.
달리는 자동차들의 불빛으로 수놓아진 밤거리는 마치 별들의 바다 같았고, 바람도 고요해서 얼굴을 스치는 훈풍은 비단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지나는 거리 쇼윈도의 장식들은 별들의 공원에 핀 꽃처럼 각각의 색을 화려하게 뿜어내고, 그 파도 가운데를 헤치며 달리니 마치 영화라도 찍는 것처럼 황홀한 기분이었습니다. 나이 들어 이렇게 사위의 젊고 건강한 몸에 기대어 그의 향수 냄새까지 맡으며 소호를 누비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저의 세 사위들은 연봉 몇 십 만 불짜리 고소득자는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젊은이들입니다. 그렇지만 아내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근면한 사회의 일꾼들입니다. 이들과 불고기를 함께 구워 먹고, 비빔밥을 함께 비벼먹으면서, 우리 가족은 오늘도 서로를 귀하게 존중해주고 소중한 정을 나누는 따뜻한 가족입니다.
서로 국적은 달라도 이렇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우리가 어쩌면 세계 평화의 첨병이 아닐까, 하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아무튼 저는 오늘도 행복합니다.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