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한인 남자 요리사들이 뜨는 이유
왜 한국 남자들이 요리를 잘하나?
데이빗 장(모모푸쿠, 왼쪽부터), 로이 최(고기 타코트럭), 대니 보윈(미션 차이니즈 푸드), 후니 김(단지), 에드워드 리(610 마그놀리아), 코리 리(베누)... 지금 미국의 식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요리사들을 보라. 한인 2세들이 일으키는 한류(Korean Wave)가 거세다.
토니 유 셰프가 왜 한인 남자 요리사들이 미국 식문화의 첨병이 되었는지를 분석했다.
1. 젓가락 문화
2. 비빔밥 문화, '비빔의 미각'
3. 미래의 맛 '발효'
1. 젓가락 문화: 그 정교함과 섬세함
다른 나라의 음식문화를 이해할 때 그 나라의 요리에 쓰이는 도구나,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하는 기구에서 힌트를 얻을 때가 많이 있다. 서양요리에서 포크가 대표적인 도구라면 아시아인들에게는 젓가락이 있다.
서양인들이 보기에는 다 똑 같은 젓가락이겠지만 사실 그 안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우선 한국과 중국, 일본의 젓가락은 사이즈나 재질 등에서 차이가 나는데, 한국음식의 특징 중 하나인 많은 반찬들을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집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고 어렵다. 왜냐하면 모든 음식들의 크기나 질감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국의 젓가락을 일본 요리사들의 사시미 칼에 많이 비유한다. 보통 나무로 된 젓가락을 사용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한국만이 가늘고 힘이 좋은 쇠 젓가락을 사용하는데, 마치 일본의 셰프들이 예리한 칼로 생선의 살을 정확하게 발라내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야 하듯 한국의 젓가락 사용법을 익히기 까지는 많은 수련이 필요하다.
한국의 이러한 젓가락 문화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데, 필자 역시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많이 혼나가면서 배웠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할머니께서 어린 손주에게 젓가락 사용법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작은 콩 하나를 건네 주시며 젓가락으로 집어내는 연습을 시키셨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젓가락으로 이제는 가느다란 머리카락이나, 쌀 한 톨을 실수 없이 단번에 짚어내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필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성인 한국인들의 젓가락을 다루는 기술은 수준급 이상이다. 어린 시절 어른들께 젓가락을 잘 사용하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때는 이해가 안됐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젓가락을 쓴다는 것은 손가락 몇 개를 움직이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몸의 30개의 관절과 50개의 근육이 움직이게 되는데, 이를 관장하는 우리 뇌의 근육조절 능력이나 작은 물체를 집어내는 고도의 집중력 등이 함께 발달하게 된다. 또한 식재료의 질감이나 무게중심을 이해하고, 마찰관계 같은 과학적인 지식도 함께 발달하게 된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손재주는 섬세함을 필요로 하는 요리에 있어서도 유감없이 발휘가 되는 것이다.
필자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요리를 잘 할 수 있게 태어났고, 실제로 더 잘한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서 요리를 잘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섬세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남자들은 젓가락 사용과 함께 자연스럽게 섬세함이 발달했고, 보통의 남자들에게 부족한 이러한 섬세함이 한국의 남자요리사들에게 큰 자산이고, 한국남자들이 요리를 잘 하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2. 비빔밥 문화, '비빔의 미각': 믹스&매치
크리스탈벨리의 비빔밥
한국음식의 대표주자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비빔밥. “다 비벼버려!” 비빔밥을 먹을 때 한국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필자는 한국의 비빔밥 문화의 시작에는 남자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에서 누가 최초로 비빔밥을 먹기 시작했는지는 오늘날에 와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비빔밥의 유래는 많은 설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유교사상에서 비롯된 한국의 오래된 제사문화에서 찾을 수 있겠다. 그럼 한국의 제사문화를 관찰해 볼 필요가 있겠는데, 제사에 올리는 음식의 가짓수는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수십 가지의 전식부터 디저트까지의 음식들이 한 상에 올라가는데, 음식 준비가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대개 여자들이 모든 음식을 준비하고 남자들은 음식 이외의 제사준비와 손님을 접대하고, 제를 지내는 일들을 하게 되는데, 모든 식이 끝나면 모두 함께 제사음식을 음복하면서 후손들이 조상들과 함께 먹는다는 의식을 치르게 된다. 아마 이때 집안의 어르신 중 한 분이 제사음식을 한데 모아서 비벼먹기 시작했고, 그 집안에서 다른 집안으로 더 나아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히게 되지 않았을까?
단지의 파머스마켓 비빔밥
실제로 제사 음식은 다채롭고 화려하다. 조상에게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들이니 각각의 맛 또한 이미 독립적으로 완성되어있다. 이런 음식들을 한데 섞어서 먹는다는 것은 사실 음식을 준비한 요리사에게는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마치 셰프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각각의 셰프 테이스팅 메뉴의 음식들을 한 상에 차려놓고 모두 섞어서 비벼먹는 느낌이랄까? 아무리 성격 좋은 셰프라도 당장 쫓겨날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집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데, 바로 한국남자들의 유별난 미각이다. 필자 역시 한국 남자이지만 한국 남자들 입맛 참 까다롭다. 보통 이태리 남자들의 입맛이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한국 남자들 역시 그에 못지 않다. 필자도 그런 편이지만 한국 사람들 중에서도 유독 남자들이 비벼먹는 것 좋아한다. 사실 한국 사람들 중에서도 비빔밥이 천박하고 맛을 축낸다는 이유로 안 먹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미식가들 중에서 비빔밥에 찬사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비빔밥을 먹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두부류 사이의 격차는 크다. 한부류는 음식의 맛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다른 한 부류는 절대 미각의 소유자들이다. 비빔밥 안에는 다양한 맛이 존재한다. 밥 위에 올라가있는 재료들의 맛이 다르고, 사용되는 소스의 종류, 비비는 정도 등에 따라 각각 다른 맛이 나게 된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비빔밥의 맛을 이해한다는 것은 한식의 기본인 쌀밥부터 시작해서 한국 맛의 최고봉인 발효의 맛까지 다양한 맛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제대로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기 힘든 복합적인 맛의 어울림 인 것이다.
모모푸쿠 쌈바(데이빗 장)의 비빔밥. 초창기에 제공했으나, 메뉴에서 사라졌다.
하나의 맛과 다른 하나의 맛이 섞이면 두 가지 맛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새로운 맛이 탄생한다. 그러니 비빔밥은 단순히 여러 재료들을 섞어놓은 맛이 아니라 새로운 맛으로 재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요리사들이 요리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누구나 하는 고민은 자신만의 새로운 맛을 만들고 싶어한다. 보통 성공하는 셰프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맛과 레시피를 완성하는 이들인데, 사실 새로운 맛이란 없을 수도 있다. 새로운 맛이라기 보다는 ‘섞인 맛’ 이라는 표현이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새로운 맛의 창조는 맛의 모방에서 시작되고, 모방을 받아들이고 다른 맛들과 섞이는 맛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섞임을 거리낌없이 시도하는 노력들이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비빔문화를 이해하는 한국의 요리사들에게 새로운 맛을 찾은 일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모든 맛이 섞이고 있는 지금의 시대와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 요리사들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3. 미래의 맛 '발효': 슬로우 푸드
발효식품 김치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혀로 느끼는 기본 맛은 단맛, 신맛, 짠맛, 쓴맛의 네 가지이다. 각각의 독창적인 맛이지만 이 네 가지의 맛이 입안에서 복합되어서 여러 가지 맛을 느끼게 된다. 한국인들에게는 이러한 네 가지 맛 이외에 두 가지를 더 할 수가 있는데, 바로 매운맛과 발효의 맛이다. 매운맛은 미각이라기보다는 통증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 역시 음식에 맛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의 맛에 가장 독창적인 특징은 ‘발효의 맛’이다.
한국음식의 맛을 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간장과 된장, 고추장 모두 발효를 통해서 만들어지는데, 장을 통해서 음식의 맛이 완성되니 장맛이 곧 한국 음식의 맛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에서 발효의 맛에 대해 언급했는데, 제1의 맛은 소금, 제2의 맛은 양념, 제3의 맛은 발효의 맛이라고 그 가치를 인정했다. 어찌 보면 가장 원시적인 ‘음식을 썩히는 맛’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맛이라니 쉽게 이해하기 힘들게 들리겠지만, 아마도 발효를 통한 영양학적 분석과 그 독특한 감칠 맛 때문이라 생각된다.
간장, 고추장, 된장...발효 트리오
실제로 발효의 맛은 설명하기 힘든 고차원의 맛이다. 또한 강한 중독성이 있다. 지구상에는 각 나라별로 다양한 음식과 맛이 존재하는데, 비록 각각의 음식이나 양념은 다를지라도 맛에 있어서 만큼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발효음식이 갖고 있는 맛은 세계인들이 공감할 충분한 가치와 이유가 있다.
장이나 발효식품을 만들거나 개발하는 작업은 실제로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안에는 발효와 분해의 과정을 거치며 생긴 다양한 맛의 조화가 숨어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발효의 맛을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은 요리사로서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의 모든 요리사들이 발효음식을 잘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맛을 이해하고, 양념에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은 요리사로서 큰 장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Tony Yoo 유현수
주영한국대사관 총괄셰프 (London, UK)
Executive Chef of Embassy of the Republic of Korea (London, UK)
한국 슬로푸드협회 정책위원
D6 (전)총괄셰프(Contemporary Local Korean Cuisine)
Executive Chef of Restaurant D6 (Seoul, Korea)
Aqua Restaurant (Michelin Guide Two Stars) (San Francisco, California)
*Beyond BBQ and Kimchi: Five Korean-American Star Chefs at Inside Korea’s 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