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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1 01:35
김정기: 조선 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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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고추
김정기
삼십 년 넘게 태평양을 건너 물결 타고
조선 고추 한 그루 이 땅에 당도했네.
파도 칠 때마다 휘청거리는 수족
허공에 심겨져 실뿌리 내렸네.
오리나무가 청청한 하늘에 찔려도
한반도에 이는 황사바람에
발 담그고 자라는 토종 고추
그 매운 맛.
뉴욕의 바람과 한몸 되려
억울하고 독한 것 삼키고 삼킨
어질고 흰 고추 꽃이 지고
톡 쏘게 매운 고추 한 알
당신의 몸에서 담금질로 익어가는
가늘디가는 핏발 선명하네.
아니라고 손사래쳐도 고추 모종 한 그루에
매어달린 맵고 아린 우리는
영락없는 조선 고추 가족.
-시집 '빗소리를 듣는 나무(문학동네, 2014)' 중에서-
김정기
1970년 “시문학”지로 문단 데뷔, 1975년 시집“당신의 군복” 출간. 1979년 도미.
시집 "구름에 부치는 시" "사랑의 눈빛으로" "꽃들은 말한다" "빗소리를 듣는 나무", 수필집 등 다수. 제 13회 미주문학상 수상.
라디오코리아 양서추천 담당 [16년], 현재 뉴욕 중앙일보 문학교실 담당[14년].
김정기 선생님, 10년만에 시집 '빗소리를 듣는 나무' 출간하신 것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