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위기 포시즌 레스토랑의 피카소 커튼 '삼각모자' 어디로 가나?
피카소와 발레, 그리고 그의 여인들
포시즌 무대커튼 '삼각모자' 뉴욕히스토리컬소사이어티로 이전
피카소가 그린 발레뤼스의 '삼각모자' (1919) 무대 커튼
'피카소 커튼' 줄다리기
'20세기 최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작품이 건물주의 천대를 받다가 마침내 정착지를 찾았다.
맨해튼 미드타운 씨그램 빌딩 (Seagram Building, 375 Park Ave. 52-53rd St.) 내 포시즌 레스토랑(Four Season)에 걸려있는 피카소가 그린 발레 무대 커튼 '삼각모자(Le Tricorne)'가 결국 뉴욕히스토리컬소사이어티(New York Historical Society) 뮤지엄으로 기부됐다.
피카소 커튼은 뉴욕유적지보존회(NYLC, New York Landmarks Conservancy)와 씨그램 빌딩의 소유주인 RFR 홀딩사(RFF Holding Corp) 간의 줄다리기 속에서 훼손될 위기에 놓였었다. 문제는 피카소 커튼를 소유한 것은 뉴욕유적지보존회지만, 걸린 장소는 씨그램 빌딩이라는 것. 건물주 RFR 측에서는 커튼의 철거를 요구했다.
RFR은 지난해 가을 커튼이 걸린 벽이 포시즌 키친에서 오는 물기 때문에 증기시설 보수공사를 위해 피카소 커튼을 철거해갈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뉴욕유적지보존회는 이 커튼이 무거운데다가 캔버스 재료가 이전 시 감자칩처럼 부스러지기 쉽다고 반발했었다. 이에 올 2월 NYLC 측에선 RFR 홀딩사를 상대로 제소했다.
19x20피트(5.8x6미터) 크기의 이 커튼은 피카소가 1919년 발레 뤼스(Ballet Russe, 러시아 발레단)가 파리 오페라에서 공연했던 '삼각모자'를 위해 무대 커튼에 그린 회화다. 투우장을 배경으로 한눈파는 귀부인들과 대화에 열중하는 여성들의 모습, 과일 파는 소년과 왼쪽에는 셰리주가 그려져 있다. 오른쪽 하단에는 피카소의 사인도 있다. 미국 내 있는 피카소 작품 중 최대 규모로 2008년 현재 싯가는 160만 달러로 감정됐다.
발레 '삼각 모자'는 디아길레프가 안무가 레오니드 마씬과 작곡가 마누엘 드 파야에게 위임한 작품이다. 방앗간집 유부녀를 유혹하는 판사의 이야기를 그린 스페인 작가 페드로 안토니오 드 알락의 단편 '삼각 모자(El Sombrero de Tres Picos)'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소년의 모습이 뒷모습처럼 엉성하다.
이 커튼은 1958년 씨그램사의 창단주였던 사무엘 브론프만의 딸 필리스 램버트가 사와 이듬해 파크애브뉴 씨그램 빌딩 내 오픈한 포시즌 레스토랑 입구에 전시되어 왔다. 정확히 말하면, 2층 그릴(Grill)과 메인 다이닝룸인 풀 룸(Pool Room)을 이어주는 통로 벽에 걸려있다. 이 통로는 '피카소의 골목(Picasso Alley)'로 불리우기도 한다.
1989년 뉴욕시 유적지로 지정된 38층짜리 씨그램 빌딩은 독일 출신 건축가 루드비히 미스 반데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가 설계했으며, 포시즌 레스토랑을 비롯 로비와 인테리어는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의 작품이다. 당대의 두 명장 건축가 설계 건물과 인테리어에 피카소까지 걸린 것이다.
52스트릿@파크애브뉴 코너의 씨그램빌딩(왼쪽)과 52스트릿의 포시즌 레스토랑 입구. SP
그러나, 2000년 비벤디 SA가 씨그램 컴퍼니를 매입하면서 빚을 삭감하기 위해 피카소 커튼을 포함한 아트 콜렉션 2500여점을 경매에 붙이려했다. 이에 램버트 여사의 간청으로 2005년 뉴욕유적지보존회에 기부하게 됐다. 씨그램 빌딩과 포시즌 레스토랑의 인테리어는 유적지로 지정됐으나, 피카소 커튼은 이에 포함되지 않았다.
1991년 에비 로젠과 마이클 퍼크스가 창립한 RFR은 비벤디가 컴퍼니를 살 즈음인 2000년 씨그램 건물을 3억7500만 달러에 매입했다. RFR은 파크애브뉴 건너편 레버 하우스(Lever House, 390 Park Ave.) 건물과 그래머시 파크 호텔(Gramercy Park Hotel)도 소유하고 있다.
사실 에비 로젠은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 800여점, 싯가 5억 달러 상당의 미술품을 소장한 컬렉터지만, 피카소를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삼각모' 커튼에 대해 '누더기'라고 비난했다는 것.
지난 6월 양측은 피카소 커튼을 뉴욕히스토리컬소사이어티로 이전하며, 이전과 복원 비용은 RFR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합의됐다.
피카소와 발레 Pablo Picasso & Ballet
젊은 시절 피카소는 발레에 관심이 많았다.
러시아 출신 흥행사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이끈 발레단 발레뤼스(Ballet Russe)의 무대 세트와 의상 디자이너로 '퍼레이드'(1917), '삼각 모자'(1919) 그리고 '풀치넬라'(1920)까지 세 작품에서 일했다. 당시 피카소의 디자인은 전위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이즈음 피카소는 발레뤼스의 댄서 올가 코클로바와 사랑에 빠진다. '외국인'이라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18년 첫 결혼에 이른다. 당시 피카소는 36세, 올가는 26세였다.
피카소의 '삼각모자' 의상 디자인.
1919년 7월 런던에서 피카소가 무대와 의상 디자인을 맡은 '삼각모자'가 공연됐으며, 이때 올가가 무대에 올랐다. '삼각 모자'는 스페인 알함브라를 거쳐 파리 오페라에서 성공리에 공연됐다. 포시즌의 커튼은 프랑스어로 타이틀이 붙은 것으로 보아 파리 오페라 무대에서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21년 올가가 아들 파올로를 출산한 이후 피카소는 17세의 프랑스 소녀 마리 테레즈 월터와 연애를 시작한다. 1935년 마리 테레즈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올가는 이혼을 청구했지만, 피카소가 재산을 반으로 나누는 프랑스 법에 반발해서 이혼이 성립되지 못했다. 올가는 1955년 칸느에서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피카소의 법적 아내로 남아 있었다.
Pablo Picasso, 1917-18, Portrait d'Olga dans un fauteuil (Olga in an Armchair), oil on canvas, 130 x 88.8 cm, Musée Picasso, Paris, France
피카소 골목길을 지나가는 소년.
*뉴욕히스토리컬소사이어티: 빌 커닝햄: 파사드(Facades), 뉴욕 건축, 패션과 카메라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