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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김미경: 왼손잡이의 행복한 비명
서촌 오후 4시 (9)
왼손잡이의 '행복한 비명'
오른손 작품
아침에 일어났는데 오른팔이 욱씬허니 아프다. “하하하. 그동안 나 쫌 열심히 그렸나?” 하고 으쓱대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진짜 팔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오른손을 못 쓰게 되면 그림을 어떻게 그리지?’ 온갖 걱정을 해대다 “하하하. 그럼 왼손으로 그리면 되지~” 하고 맘을 편히 먹었다.
어릴 때 난 왼손잡이였다. 왼손잡이들이 대부분 그랬듯 나도 왼손으로 뭔가를 하고 있는 현장을 엄마 아빠에게 들켜 된통 혼이 난 적이 꽤 있었다. 가위쓰기, 칼쓰기, 글씨쓰기, 그림그리기를 모두 왼손으로 시작했지만, 여러 번 혼나면서 글씨쓰기, 그림그리기는 일찌감치 오른손으로 바꿨다. 가위쓰기와 칼쓰기는 바꾸지 않아 요즘도 여전히 칼과 가위는 왼손잡이다.
‘내가 원래 왼손잡이였으니 왼손으로 그림도 잘 그리는 거 아닐까?’ 비상시를 대비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ㅎㅎㅎ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왼손 작품
몇 주 전 그림 그리는 친구들끼리 함께 술집에 간 날. 술상 위에 놓인 주전자 속 해바라기가 너무 멋져 숙제로 각자 그려 보기로 약속한 적이 있었다. 오른손으로 한 장 그렸었는데 똑같은 장면을 왼손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어렵다. 선이 똑바로 그어지질 않는다. 삐뚤빼뚤 울퉁불퉁. 섬세한 터치를 하기는 영 힘들다. 그래도 제법 꼴은 갖춰진다. 거친 선이 오히려 정겹기도 하다. 훈련되지 않은 내 속 야성이 쑥쑥 고개를 내민 현장 같기도 하고 말이다. 왼손으로 자주자주 그려봐야겠다. 길들여지지 않은 내 왼손의 야성이 그려낼 그림이 엄청 기대까지 된다.
김미경/'브루클린 오후 2시' 작가
대구에서 태어나 서강대 국문과와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를 졸업했다. 여성신문 편집장,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2005년 뉴욕으로 이주 한국문화원 기획실에서 일했다. 2010년 뉴욕 생활을 담은 수필집 '브루클린 오후 2시'를 펴냈다. 2012년 서울로 부메랑,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2014년 3월부터 화가로서 인생의 새 챕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