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추석 스페셜: 어름소편과 밤묵 디저트
송편 대신 '어름소편', 양갱 대신 '밤묵'
키친플로스의 추석 스페셜 메뉴
밤나무 Photo: Tony Yoo
길고 길었던 장마와 여름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이제 추석도 지났다. 추석은 계절상으로 여름과 겨울의 중간이며 농경사회였던 우리민족에게 한 해 농사를 잘 마무리 하게 해준 감사의 의미와 다음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예로부터 의미 깊은 명절이다. 봄부터 여름 동안 정성으로 가꾼 곡식과 과일들이 익어 수확을 거둘 시기여서 대체로 식재료가 풍성해서 일년 중 가장 여유롭고 넉넉한 때인데, 그 중에서도 쌀은 가장 의미가 크기 때문에 그 해 수확한 햅쌀로 송편을 만들어 감사의 의미로 조상님의 제삿상에 올린다.
그래서 추석하면 송편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이다. 조선 후기의 우리 음식을 정리해놓은 고서 '시의전서(是議全書)'를 찾아보다 재미있는 요리를 발견했는데, 바로 ‘어름소편’이라는 음식이다. 보통 ‘송편’하면 콩이나 깨, 꿀, 등을 속에 넣고 찌기 때문에 후식이나 디저트의 느낌이 강한 반면, '시의전서'에서는 송편의 ‘속재료로 숙주나 오이등의 채소를 사용하고 초장에 찍어먹는다’고 기록하였다. 오늘날의 만두와 같이 하나의 요리로 만들어 먹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키친플로스의 어름소편 Photo: Tony Yoo
이름도 재미있고 색다른 음식인 ‘어름소편’을 나름 재해석해서 올 추석을 전후로 키친플로스(kitchen flos)의 메뉴에 넣어봤다. 송편이지만 화려하게 식용꽃으로 장식도 하고 고서에 기록된 레시피와 같이 속재료로 숙주와 오이를 다져넣고, 미나리와 나물을 이용한 소스를 곁들여 만들어 보았다.
그때의 맛을 그대로 재연할 수는 없겠지만 전통 한식도 이렇게 다양한 음식이 있었다라고 찾아 주시는 손님들에게 알리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음식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에게도 새로운 요리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송편도 이렇게 만들어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색다른 미각 경험을 드릴 수가 있었다.
필자에게 추석하면 쌀 다음으로 가장 생각나는 식재료는 밤이다. 어린시절 살던 강원도의 집 근처에 밤나무와 대추나무가 많이 있어서 추석 즈음이 되면 나무에서 떨어진 대추 주워서 먹고, 밤송이 까서 먹고, 밤송이 까다가 가시에 찔려 상처도 많이 나기도 했다. 요즘에는 밤껍질을 쉽게 깔 수 있는 밤 전용 칼이 따로 나오지만 예전에는 작은 과도를 이용해 많이 까서 먹었는데, 어린 고사리 손으로 밤을 까기 여간 어려웠던 기억이다.
키친플로스의 밤묵 Photo: Tony Yoo
밤은 맛있는 식재료이긴 하지만 조리법이 다양하지 않아서 보통 갈비찜과 같은 찜요리나 조림등에 넣어서 먹게 되는데, 밤으로 별식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밤묵을 이용한 가을 디저트를 만들어 봤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밤묵을 쑤어 먹기도 하는데, 밤나무가 많은 공주 지방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기도 하다.
밤의 껍질을 벗겨 물과 함께 맷돌에 갈아서 앙금을 가라앉히고 웃물을 따라낸 후 앙금을 걸쭉하게 끓인 후 식히면 되는데, 디저트로 만들기 위해 좀 더 부드러운 농도로 만들었고, 늙은 호박으로 조청을 만들어 밤묵에 뿌리고 팥양갱과 현미튀김, 감말랭이를 함께 곁들여 완성하였다. 계절의 느낌을 살리고 싶어 고향의 밤나무 가지도 함께 곁들여 보았다. 밤묵의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새로운 식감과 다른 재료들과의 어울림이 좋아서 코스 메뉴에서 디저트로 나가고 있고, 손님들의 반응도 좋다.
Tony Yoo 유현수
키친클로스(kitchen flos, Seoul) 셰프
주영한국대사관 총괄셰프 (London, UK)
Executive Chef of Embassy of the Republic of Korea (London, UK)
한국 슬로푸드협회 정책위원
D6 (전)총괄셰프(Contemporary Local Korean Cuisine)
Executive Chef of Restaurant D6 (Seoul, Korea)
Aqua Restaurant (Michelin Guide Two Stars) (San Francisco, Califor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