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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이수임: 파김치 아리랑
창가의 선인장 (6)
파김치 아리랑
조심스럽게 “저 서울에서 온 이수임인데요.”
다음 말을 잇기도 전에 “난 한국 사람 안 만납니다.”
차가운 목소리로 단칼에 잘라 밀어냈다. 쇠몽둥이로 머리를 심하게 얻어맞은 듯 몸이 굳어졌다.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을 기운도 없었다.
Soo Im Lee, Sleep on water, 2012, gouache on panel, 12 x 12 inches
“정신 차려. 애가 소금에 푹 절인 파김치 같네. 그 못된 성질 다 어디 갔어? 미국 가기 전에는 제 성질대로 안되면 방바닥을 뒹굴며 난리 치던 애가, 미국 가더니 성질 다 죽고 사람 됐네!”
“미국물이 특히 뉴욕물이 세기는 센가 보다. 미국 가기 잘했지. 공부해서 좋고, 못된 성질 고쳐 좋지, 결혼비용 안 들었으니 일 석 삼조다. 너 한국에서 결혼했으면 돈 엄청나게 깨졌다. 모르긴 해도 유학 비용보다 훨씬 더 들었을 거다.”
오래 전, 한국을 방문하니 친정 아버지가 기뻐하시며 하신 말씀이다. 이종사촌 언니는 뉴욕으로 가는 나에게 한국 음식이 가득 든 커다란 박스를 공항에 가져왔다. 시카고에 사는 시누이에게 전해 달란다. 시카고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뉴욕과 가까운 곳이란다.
연락하면 가지러 올 거라며 짐 부치는 곳에 밀어 넣었다. JFK공항에 도착했다. 학교에서 나온 말레이시아 여학생이 내 이름이 쓰인 종이를 들고 서 있었다. 박스에서 한국 음식 냄새가 솔솔 새는 것이 아닌가! 가뜩이나 못 하는 영어가 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 등록을 마치고 박스를 가지러 오라고 시카고에 전화했다. 시카고에서 뉴욕이 얼마나 뭔 곳인데 가지러 가느냐며 우편으로 부치란다. 차도 없고, 우체국도 모를뿐더러 어떻게 붙일 줄도 모르는 나에게 ‘왜 가져 왔느냐?’며 귀찮다는 듯이 전화를 끊었다.
미국에 유학 간다니까 교수님이 미국에 사는 지인의 전화번호를 줬다. 몇 개월을 번호가 적힌 종이를 꺼내 보기만 하고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전화했다.
조심스럽게 “저 서울에서 온 이수임인데요.” 다음 말을 잇기도 전에 “난 한국 사람 안 만납니다.” 차가운 목소리로 단칼에 잘라 밀어냈다. 쇠몽둥이로 머리를 심하게 얻어맞은 듯 몸이 굳어졌다.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을 기운도 없었다.
동양 사람을 오랜만에 우연히 봤다. 한국 아줌마였다. 매우 반가웠다. “나는 서울에서 방금 온 약아 빠진 아가씨는 무서워서 상대 안 해요.” 깊은 늪으로 빠져들며 허우적거렸다.
외로움에 절은 내가 한국 남자와 차를 마실 일이 있었다. 잘 보이려고 작은 눈을 반짝거리며 열심히 남자의 말에 경청하고 있었다. “이러고 노닥거릴 시간에 돈을 벌면 벌써 꽤 벌었겠네, 미국에서는 시간이 돈이지요.” 절벽 아래로 등 떠밀려 떨어지는 느낌에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이렇게 나는 오랜 미국 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절벽으로 떨어졌다가는 기어 올라오고, 떨어졌다가는 다시 악착같이 기어 올라오며 서서히 파김치가 되어갔다. 나 또한 누군가를 파김치로 만들었을 덴데…“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