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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희/수다만리
2014.10.13 12:22

(57) 박숙희: 노벨상의 계절, 'My Way'와 '아리랑'

조회 수 2615 댓글 1

수다만리 (5) 어느 글로벌 가족과의 인연

노벨상의 계절, 'My Way'와 '아리랑'

 

#1 1998년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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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건축가 데보라 나치오스

 

알렉산드라의 집에서 열린 땡스기빙데이 디너. 머리가 허연 밥 먼델 교수 그의 아내 발레리 나치오스 그리고 금발의 아기 니콜라스가 브루클린의 이탈리안 동네 캐롤가든의 브라운스톤 하우스에 나타났다. 변호사 알렉산드라는 보스턴 근처 로웰에 사는 부모님은 물론 언니 발레리와 데보라 부부도 불렀다. 나는 데보라의 친구로 초대됐다. 내가 머나먼 이역에서 혼자 추수감사절을 보낼까 딱하게 여겼나보다. 뉴욕에 와서는 추석날 한인타운에서 송편 사먹는 것과 추수감사절 터키 먹는 것이 가을의 통과의례가 되었다. 

 

알렉산드라의 남편 클레온도 변호사. 그들에게는 한국에서 생후 3개월 때 입양한 한국계 알레그라(진희)가 있다. 엄마의 돌림(?) Al로 시작하는 알레그라는 마산을 떠나 클레온 부부의 따뜻한 정성을 받으며 잘 크고 있었다. 마치 친자매처럼.

 

발레리와 데보라는 오랫동안 싱글로 지내다 뒤늦게 결혼했다. 발레리의 남편 밥은 70을 앞둔 컬럼비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건축가 데보라의 남편은 건축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존 영 그도 역시 데보라보다 20여년 연상이다. 스미스대 수학과와 프린스턴대학원 건축학과를 졸업한 데보라는 DMZ의 생물학적 다양성과 정치적 갈등을 소재로 한 지도 프로젝트를 발표한 적도 있다. 사촌 오빠 앤드류 나치오스 조지타운 대학교 교수는 ‘북한의 대기근'의 저자이기도 하다. 한국과 인연이 깊은 가족이다.

 

그해 추수감사절 디너에 장녀 크리스틴은 참석하지 못했다. 네 딸을 둔 아버지 니콜라스 나치오스씨는 자기 나이와 맞먹는 사위들을 못마땅해하는 듯 보였다. 때문인지 밥과 존은 장인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연로한 사위 둘 다 '희랍인 조르바'같은 장인의 지팡이 앞에서 조용했다. 그 사이 열정적인 어머니 미치 나치오스 여사는 서예에 빠졌다고 자랑을 늘어놨다. 그녀는 잡채와 불고기를 좋아한다.

 

그리스계 미국인인 나치오스씨는 외교관으로 한국, 이란, 네덜란드, 프랑스, 아르헨티나로 옮겨다니며 살았다. 1960년대 한국 주재 시절 나치오스씨는 김종필씨와 청와대 면담에서 삼청동 경복궁 이야기를 내게 즐겁게 해줬다.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글로벌 가족에겐 내가 노스탈쟈를 불러일으키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리스식 추수감사절 저녁을 먹었다. 터키 구이와 피타 치즈가 들어간 그리스식 샐러드, 포도잎사귀 요리 그리고 그리스 디저트 바클라바까지.

 

 

#2 1999년 10월 노벨상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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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스웨덴 왕으로부터 노벨상을 받고 있는 로버트 먼델 교수. Photo: The Nobel Foundation/Hans Mehlin

 

이듬해 10월 여전히 미주한국통신사(KPA)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아침부터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 중이었다. 노벨 경제학상에 로버트 먼델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라는 헤드라인이 AP에 떴다. 1백만 달러에 가까운 상금으로 이탈리아의 성(城) 수리에 쓸 것이라는 기사였다. 

 

로버트는 바로 전해 추수감사절에 만났던 밥 먼델 교수였다. 이전에 수상 후보였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후보가 수십명에 달한다길래 잊고 있었다.  '유로화의 아버지'가 별명이라는 것도 기사를 통해 알았다. 데보라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1932년 캐나다 온타리오의 킹스턴에서 태어난 먼델 교수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밴쿠버) 졸업 후 워싱턴대(시애틀) 석사를 거쳐 런던 정경대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카고대와 스탠포드대, 존스홉킨스대 교수로 재직했고, 지난 1974년 이후 컬럼비아대에서가르쳐왔다. 

 

 

#3 1999년 크리스마스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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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의 집에서 먼델 교수, 발레리와 니콜라스. Photo: The Ottawa Citizen

 

두달 후 알렉산드라가 우리를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했다. 밥은 만나자마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악수를 청했다. 이전의 과묵함은 사라졌다. 노벨상은 위대하다.

 

원탁 테이블에서 식사가 끝나자 밥은 돌아가며 노래를 하자고 제안했다. 데보라가 밥부터 해야한다고 제의하자 밥은 기다렸다는 듯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를 불러제꼈다. ".... I did it My Way~" 

자신감이 물씬 배어 나왔다. 노벨상 시상식 파티에서도 이 곡을 불렀다고 한다. 아들 니콜라스도 스웨덴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고.

 

노래를 마친 후 밥은 나를 지목했다. "노래방이 감옥같다"고 생각하는 나는 정말 레퍼토리가 없는 음치다. 신문사 다니며 회식의 필수코스가 된 노래방에서 레퍼토리가 된 유승범의 '질투'도 비디오 화면의 가사를 봐야만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질투'보다는 남진의 '님과 함께'가 더 짧아서 2탄이 됐다. 

 

그런데 알렉산드라가 '아~리~랑'을 읊조리며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아리랑'만은 자신있었다. 

막상 '아리랑'을 시작하니 콧날이 시큰해졌다. 한(恨)으로 가득한 노래 가락 때문이었을까. '마이 웨이'를 우렁차게 부를 수 있는 사람 앞에서 '아리랑'으로 한숨짓는 나의 모습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 미스테리 인물처럼 한없이 작아졌다.

 

 

#4 그 후로도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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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맨해튼 이영희뮤지엄에서 데보라 나치오스.

 

노벨상 수상 후 먼델 교수는 전에 사둔 이탈리아 투스카니의 시에나 성을 집으로 개조했다. 한국인 성악가를 비롯한 오페라 가수들을 초빙해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고 했다. 이후로 그는 한국, 중국 등지에 스피커로 초대됐고, 2009년부터는 홍콩의 중국대학교에서도 가르쳐왔다. 덕분에 아들 니콜라스는 영어/이탈리아어/중국어를 구사하는 청년으로 엄마와 이모들처럼 글로벌하게 자랐다.

 

2004년 투병 중이던 아버지 니콜라스 나치오스씨가 세상을 떠났다. 데보라와 알렉산드라는 기도를 하고 그리스 민요을 비롯한 '아리랑' 등 그들이 살았던 각 나라의 국가를 불렀노라고 했다.  2년 전쯤엔 큰 언니 크리스틴을 암으로 잃었다. 

알렉산드라와 클레온은 부부에서 친구로 멀어졌고, 알레그라는 워싱턴의 대학에 다니고 있다. 

 

2008년 데보라는 아버지가 소장해온 한국 도자기 9점과 일본 도자기 1점을 모교 프린스턴대학교 뮤지엄에 기증했다. 고려 전기·후기·조선시대까지 한국 도자기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컬렉션으로 고려 청자상감대접(11∼12세기), 청자상감대접(12∼13세기), 청자상감운학문대접(13∼14세기), 조선 분청대접(15세기), 조선 청화백자화문대접(19세기) 등이다. 

 

프린스턴뮤지엄의 아시아미술 담당 시니드 키호우 큐레이터는 “나치오스 콜렉션은 1960년대 J. 라이언 버거 데이비스가 기부한 이래 한국미술 최대의 규모다. 숫적으로도 중요할 뿐더러 11세기부터 19세기까지 한국 도자기의 발전과 상감기법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라고 밝혔다.

 

당시 프린스턴뮤지엄의 아시아미술 소장품수는 약 5000점이며 이중 대부분이 중국 미술품이다. 한국 미술품은 고려 상감청자매병과 토기매병 등 33점에 불과했는데 여기에 9점이 추가된 것이다. 

 

나치오스 가족은 1962년부터 3년간 경복궁 인근에 살면서 인사동에서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골동품을 사다가 집안을 장식했다고. 당시 얼마 안되던 외국인들은 인사동을 ‘마리의 골목(Mary’s Alley)’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머니 미치는 네 딸에게 색동 저고리를 입히고, 아버지는 16밀리 가족영화를 찍기도 했다.

 

매년 이맘때면 각부문별 노벨상 평화상, 문학상, 그리고 경제학상 수상자까지 궁금해지는 '노벨상의 계절'이다. 올해엔 프랑스의 장 티롤 교수가 경제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먼델 교수는 지난해 쓰러져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서 살았었고, 조카를 한국에서 입양했다는 인연으로 나의 뉴욕 생활에서 든든한 친구가 되어준 데보라와 나치오스 가족에게 다시 감사하고 싶은 계절이다. 

 

*NY Quotes: 존 영 & 데보라 나치오스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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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4.13 20:48
    안녕하세요? 지난 주말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시원하게 내리면 밖에 세워둔 자동차 먼지라도 쌋어내렸겠지만 구질구질 계속해서 오니까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습니다. 컬빗에 들어가서 맨델 교수와의 인연을 차근히 읽었습니다. 그분에 대한 숙희 후배님의 글이 생동감을 주었습니다. 멘댈 교수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