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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4.11.18 01:01

(64) 이영주: 백악관 국빈만찬 참가기

조회 수 5616 댓글 1

뉴욕 촌뜨기의 일기 (12)



백악관 국빈만찬 참가기     



처음 뉴욕 촌뜨기를 시작할 때 박숙희 대표가 안트리오의 백악관 연주 얘기도 언제 써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벌써 3년 전 일인데, 쑥스러워서 “글 쓸 소재가 없을 때 쓸게요.”, 대답하고 지금까지 용케 버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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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오의 백악관 연주는 2011년 10월 13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을 위한 국빈만찬에서 연주한 일입니다. 그 일년 후인 2012년 10월 13일엔 제 손자 블루가 태어나서 10월 13일에 제겐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딸들과 사위들만 초대받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 생일날, 딸들은 선물을 주고 나서 깜짝 선물이 더 있다면서 저도 백악관에 초대 받았노라고 그제서야 알려 주었습니다. 괘씸했지만, 무조건 기뻤습니다. 


백악관 들어가는 길은 간단하지가 않았습니다. 우선 통과해야 하는 게이트만 세 번이었습니다. 첫 번째 게이트에서 모두 신분증을 내고 검열 받은 뒤 통과하면 그 다음엔 안쪽 정원으로 들어가는 게이트에서 다시 한 번, 그리고 행사가 열리는 본채 빌딩 정원으로 통하는 게이트에서 마지막 신분증 확인이 끝납니다. 그런 과정들이 고압적이 아니고 대단히 정중하고 친절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선 차별성이 있습니다. 청와대에 여러 차례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거치는 검열 과정이 대단히 고압적이고 딱딱해서 기분이 영 아니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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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긴 과정을 거쳐 만찬장 건물에 들어갈 때는 정말 황홀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정문에는 해군 정장을 입은 키 크고 잘 생긴 해군이 한 명 서서 제가 문 앞에 당도하자 “굿이브닝, 마담!”, 하고 인사하는데, 그 목소리가 리차드 버튼 보다 더 부드럽고 깊이가 있고 멋있었습니다. 문에 한 발짝 발을 들이자마자 정문 오른쪽에 앉아 있던 하프 연주자가 저를 위해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초대된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아름답게 울리는 그 하프 소리는 정녕 천상의 노래처럼 감미로웠습니다. 몇 발짝 걸어서 세 개의 층계를 올라가면 검은 드레스를 입은 세 명의 아리따운 백악관 여직원이 서 있는 안내 테이블이 있고, 거기서 제가 만찬에 앉을 테이블을 알려줍니다. 


복도는 왼쪽으로 구부러지는데 오른쪽에 영화관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가족이나 직원들과 함께 여기서 영화 감상한다고 합니다. 복도 벽에 지나간 대통령들의 공식, 비공식 사진들이 주욱 걸려 있습니다. 아직 리셉션이 시작되지 않아 사진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입구 쪽에서 잘 생긴 동양인 중년신사가 미소를 짓고 서 있었습니다. 우리를 보고 계속 미소지었지만 그쪽의 신분을 몰라 같이 웃으며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그가 성 김 주한미국대사란 사실은 나중에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인사를 해두었을텐데...아쉬웠습니다.


국빈만찬에 초대 받은 사람은 미 전국에서 2백 명 이었습니다. 리셉션 동안 만찬에 초대받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는데, 식당 ‘모모푸쿠’로 알려진 한국인으로서 최고로 유명한 셰프 데이빗 장의 엄마와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데이빗 엄마는 저의 숙명여고 한 해 후배입니다. 워싱턴이나 캘리포니아 등에서 초대 받은 한국인은 몇 몇 볼 수 있었으나 뉴욕의 한국 인사들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정치인 한 분을 만났는데, 국빈만찬에 참석하고 싶어서 온갖 정치적 배경을 다 동원했는데도 성사가 안 되더라며 저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민망했습니다.  


국빈만찬은 그 회수가 많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 9.11 사건 이후엔 많이 경색돼서 그 이후의 대통령들은 임기 중 서너 번 밖에 안했다고 합니다. 만찬 테이블에서 제 왼쪽엔 FTA 협정이 의회에서 비준되는데 큰 역할을 했던 하원 분과위원장이 앉았었는데, 그는 “국회의원을 20년 하는 동안 국빈만찬 초대는 오늘이 처음”이라면서 그 흥분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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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시간이 가까워지면 만찬장으로 가게 되는데, 그 때 역시 문을 통과합니다. 문이 열리면 참석자의 이름을 아나운스 하고, 그러면 그 방에 대기하고 있던 몇 십 명의 매스콤 관계자들의 풀래쉬 세례가 이어집니다. 이 방에서만 촬영이 허락되는 것입니다. 그 방을 나서면 다시 복도인데, 그곳에선 해군 오케스트라가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계속 연주합니다. 그리고 나서야 대통령과 악수 나누는 방으로 가게 되는데, 그 전에 가지고 있던 백을 맡기게 됩니다. 대통령을 만날 땐 빈 손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대통령 접견실로 들어서면 직원이 누구라고 호명을 해줍니다. 그러면 양국의 대통령이 그 이름을 듣고 서로 악수를 나누는 것입니다. 이때는 백악관 사진사가 사진을 찍습니다. 나중에 집으로 이때 찍었던 사진에 대통령 부부가 사인을 한 사진을 보내주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연주자 가족이라서 특별히 양국의 대통령 부부와 기념사진까지 찍어 주었습니다. 대통령 부부들은 두 시간 동안 그렇게 서서 초청된 인사와 인사를 나누어야 하니 대통령 노릇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 방의 벽난로 위에 여자들의 백이 보관되어 있어서 그것을 찾아 들고 다음 방으로 가면 그 방이 바로 만찬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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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주미 한국대사와 한 테이블이었는데, 제 왼쪽엔 이미 말씀드린 하원의원이, 오른쪽엔 힐러리 국무장관의 직속이라는 고위관리가 함께 했습니다. 짧은 영어로 양쪽의 미국 고위직 신사들의 끊임없는 대화에 대꾸하느라 진땀 깨나 흘렸습니다. 그래도 만찬회장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내외와 조우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연주자 가족은 특혜가 계속 되어서 만찬이 끝난 후 연주장에서도 바로 대통령 뒷줄에 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대통령 옆이 반기문 총장 자리여서 앞뒤로 앉아 적잖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다정한 분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고, 부인은 그날 참석한 여성들 중에서 가장 기품이 있고 아름다워서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웠습니다. 따뜻한 바이든 부통령, 실물이 훨씬 부드럽고 우아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테니스 선수였던 빌리 진 킹,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한국대사가 된 성 김, 배우 존 조, 어바인 강석희 시장도 만났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디자이너인 크리스티나 김도 반가운 친구였습니다. 


사람들이 딸을 잘 키워서 부럽다는 말을 많이 해주었지만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 날은 정말 뿌듯했고, 딸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딸들이 연주하는 동안 계속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던 오바마 대통령은 연주가 끝나기 무섭게 일어나서 박수를 치며 치하했고, 참석한 모든 인사들이 기립박수로 연주에 화답해주었으니 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음악의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시며 연주를 즐기셨습니다. 제 평생 언제 이렇게 여왕 같은 최고의 대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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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든 부통령은 연주가 끝나고 자유시간이 되자 딸들과 담소하면서 반기문 총장님에게 “ 안트리오 다리 보셨어요? 한국 여인들은 모두 이렇게 다리가 예쁩니까?”해서, 사람들을 웃겼습니다. 딸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세 번, 영부인 미쉘이 다섯 번이나 허그해줬다며 신이 나했습니다. 사실은 저도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할 때 제가 지도하는 북클럽에서 오바마의 아버지에 대해 쓴 책을 읽었다며 북클럽 자랑을 했습니다. 미국 대통령과 수다 떨 수 있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저녁이었겠습니까? 그해 결혼한 벨지움 출신 제 둘째 사위는 와이셔츠 커프스 버튼을 오바마 대통령 얼굴이 든 것을 새로 샀다며 그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여주고 자랑이 끝없었습니다. 


그날 양국 대통령의 연설들은 모두 신문에 보도되어서 생략했습니다. 백악관에 초대받으면 어떤 과정을 어떻게 거치게 되는지 자세히 소개하느라 글이 길어졌습니다. 지루하셨겠습니다. 워낙 친한파인 오바마 대통령은 이 날 한국의 정( )을 얘기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부터 정이 넘치는 대접을 받은 기쁨은 잊을 수 없는 값진 추억인 것같습니다. 정이란 이렇게 국경과 민족을 초월해서 누구나 힘께 나누는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입니다.




rhee100.jpg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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