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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4.12.02 18:43

(66) 이영주: ‘블루 라군’, 황무지 속 환상의 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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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13)



‘블루 라군’, 황무지 속 환상의 온천 

 - 아이슬란드 여행기 (1) -



글: 이영주  사진: 이명선(프리랜서 사진작가)


13블루라군6.jpg 사진: 이명선



이슬란드(Iceland) 여행은 깜짝 여행이었습니다. 호리카 멤버인 멀리사와 에스더가 간다는 말을 들은 후배 프란체스카가 “선배님, 우리도 갑시다.” 하는 바람에 그야말로 마지막 순간에 예약을 하고 일주일 만에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연령층도 각각, 전문 분야도 각각인 네 여자가 뭉친 특별한 여행입니다. 과연 이번 여행은 어떨까, 떠나기 전부터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동안 한국은 자주 드나들었지만, 미국 내에서도 하와이도 갔고, 몬태나엔 자주 갔으므로 여행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훌쩍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문물을 접한 지는 오래 되어서, 사실 여행이 많이 고팠습니다. 그리고 여행지는 북유럽의 핀랜드와 노르웨이가 타깃이었습니다. 북구라곤 덴마크과 스웨덴 밖에 가보지 못해서 자연이 특히 빼어나다는 두 나라의 산들이 몹시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얼토당토 않게 얼결에 아이슬란드를 가게 된 것입니다.



13블루라군5.jpg 사진: 이명선



이슬란드라는 내게는 미지의 나라입니다. 아는 것이라곤 2010년 4월 14일, 아이슬란드 남부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이 폭발하면서 화산재가 5만 5000피트(약 16㎞)까지 치솟아 북유럽을 뒤덮었던 사건입니다. 당시 아이슬란드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 5개 국가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되고, 따라서 그곳으로 운항되는 모든 항공기들의 발이 묶이는 항공 대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전 세계인이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었잖습니까. 

 

아이슬란드인은 874년, 스칸디나비아에서 정치적 갈등을 피해 이 섬에 건너온 노르웨이인이 뿌리라고 합니다. 1262년 노르웨이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1380년부터 덴마크의 지배를 받기 시작해서 1814년, 덴마크령이 되었다가 1918년 독립, 지금 같은 공화국 정부를 수립한 것이 1944년입니다. 면적은 우리 한국의 남한과 거의 비슷한데(아주 약간 큽니다), 아직도 빙하로 덮인 곳이 많고, 게다가 섬의 지형은 대부분이 산악입니다. 


빙하가 차지하는 면적은 국토의 11%, 주로 해안에 있는 경작과 거주가 가능한 땅은 국토의 7%에 불과합니다. 아이슬란드 인구와 농경지의 대부분은 레이캬비크(Reykjav?k)와 비크(V?k) 사이의 남서부 해안에 밀집해 있습니다. 전체 인구가 32만인데, 그중 20만이 수도인 레에캬비크에 몰려 있습니다. 



13블루라군2.jpg 사진: 이명선



리가 아침에 도착한 곳은 켈라비크 국제공항이었습니다.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서쪽으로 45km쯤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아이슬랜드가 자랑하는 야외온천 ‘블루 라군(Blue Lagoon)’ 입니다.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아이슬란드의 첫 인상은 회색빛 낮은 하늘입니다. 들은 대로 날씨는 생각보다 온난해서 섭씨 9도 정도였으니 뉴욕보다도 덜 추웠습니다. 화산 폭발과 빙하의 침식이 만들어진 북대서양 한가운데 외따로 떨어진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얼음 벌판과 화산암의 황무지, 용암, 짧은 풀과 이끼가 자라는 툰드라 대지로 이루어진 섬입니다. 버스가 달려가는 길 양쪽이 그냥 광활한 화산재 황무지고, 지평선 너머로 아득하게 산이 보이는 게 전부였습니다. 열려진 대지라 할까. 차는 달리는데 건물도 사람도 없는 그냥 자연 그 자체뿐인 풍경이 경이롭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황무지가 황폐해 보이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어머니의 품 속 같이도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울퉁불퉁한 화산재 위에 앉은 푸른 이끼의 부드러움이 그런 느낌을 부추겨준 것 같습니다. 


빙하의 나라 아이슬란드는 지열을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할 만큼 뜨거운 땅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전기 뿐만 아니라 집의 히팅이며 조리까지 땅의 지열을 대부분 사용합니다. 수 백명이 들어갈 수 있는 야외온천인 블루 라군은 바로 그 지열발산지대(라바)에 발전소를 만들려다가 온천으로 개발한 곳입니다. 바닷물을 데워서 온천수와 함께 섞어서 씁니다. 4시간 마다 새물을 보충해주는 물탱크가 여러 군데 있습니다.  



13블루라군3.jpg 사진: 이명선



활한 대지 한 가운데 온천 건물만이 뎅그라니 서 있지만, 크림빛 블루 물색이 회색빛 하늘과 주변의 검은 화산재 땅들과 어우러져 온천의 풍광은 독특하게 멋스러웠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의 아득함. 온천에서 올라오는 수증기의 군락이 바람에 흩날리며 만드는 추상화보다 더 추상화 같은 그림. 물 속에서 그런 광경들을 보고 있으면 온천하고 있는 우리가 현실이 아니라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 환상적인 느낌까지 듭니다. 


간혹 떨어지는 빗방울마저 마치 얼굴을 어루만지는듯 부드럽습니다. 빗방울의 감촉도 왜 그렇게 로맨틱한지, “빗방울이 얼굴을 애무해주는 것 같아.”, 제가 참지 못하고 외치자 막내 에스더가 “에이, 품위에 어울리지 않아요.”, 하는 바람에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내 얼굴 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네.”, 다시 정정했습니다. 일행들은 그제서야 저다운 표현이라며 합격점을 주었습니다.   


뉴욕서 실내 좁은 찜질방만 경험하다가 벌판 같은 광대한 스케일의 야외온천에서 온천욕을 하는 기분은 그대로 천국이었습니다. 얼굴에 팩을 하라고 군데군데 준비해둔 머드로 몇 번씩이나 팩을 하고 또 했습니다. 효과가 뛰어나서 물로 닦으니까 얼굴이 얼마나 매끄러운지 모릅니다. 탄력도 생긴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얼굴이 깨끗해졌어.” “얼굴이 반짝반짝해.”, 누구랄 거 없이 칭찬해주기 바빴습니다. 



13블루라군4.jpg 사진: 이명선



거운 온천에서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는 기분은 아는 사람만이 압니다. 여름 날 등산하고 내려와서 아이스박스에서 꺼내 마시는 맥주의 그 신선하고 상쾌하기 그지없는 첫 모금과도 같습니다. 물이 좋은 나라라서 이 나라 맥주는 맛이 순하고 깔끔해서 술을 못하는 제가 마시기에도 전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코끝이 쌩-한 찬 대기 속에서 몸은 따끈한 온천물에 잠그고 상큼한 맥주를 마시며 우리들은 “판타스틱! 환상이야, 환상!” 저절로 탄성이 터졌습니다. 전 연극배우 프란체스카는 끝없는 유머로 우리를 허리도 펴지 못하게 웃겨주었고, 평소 별로 말이 없던 멀리사가 툭툭 던지는 우스개는 더 웃겼습니다. 


더군다나 온천은 젊은 남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우리를 쓰러뜨릴 청춘 몸짱들도 심심치 않게 여기저기서 등장해주어서 금상첨화였습니다. 젊은이들이 와서 셀카봉을 들고 사진 찍는 모습은 얼마나 눈을 신선하고 즐겁게 해주던지,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붕-붕 떴습니다. 허리가 끊어지도록 까르르 웃고 또 웃으면서 넓은 온천을 누비며 우리 네 여인은 아이슬란드의 첫날을 끝없는 웃음으로 기록했습니다. 블루 라군이 첫 기착지였던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고, 이 탁월한 선택을 존중하기 위해서 떠나는 날도 다시 블루라군에 오자는데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rhee100.jpg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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