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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4.12.13 12:12

(68) 이영주: 레이캬비크, 미니멀 속의 매력적인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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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14)



레이캬비크, 미니멀 속의 매력적인 속살

 - 아이슬란드 여행기 (2) -



글: 이영주  사진: 이명선 (프리랜서 사진작가)


14레이캬비크4.jpg 사진: 이명선


도인 레이캬비크는 작고 단아한 도시였습니다. 인상이 그랬습니다. 모든 건물 양식이 매우 심플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합니다. 간판도 눈에 띄지 않게 적절하게 정돈돼 있고, 쇼윈도도 요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슬란드를 미니멀리즘 공화국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주거지 건축 양식의 특징은 지붕이 모두 삼각형 형태인 것입니다. 눈이 많이 오고 바람이 심한 나라라서 그렇게 꼭짓점을 만들어 눈과 바람의 무게를 피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사람들 인상은 딱 보면 그냥 양순해 보입니다. 말을 하면 친절하고 겸손하고 진심으로 잘해주려고 하는 마음 씀씀이가 절로 느껴집니다. 뉴욕으로 돌아오던 날의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 비행기 좌석이 거의 뒷자리여서 체크인 할 때 제 짝인 프란체스카가 “우리 선배가 아프니 가능하다면 조금 나은 앞자리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했습니다. 여직원은 아무 말도 안하고 부지런히 손을 놀려 우리 두 사람의 티켓을 내주면서 게이트 넘버만 알려주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뭘 바꿔주겠나”, 그러면서 티켓을 봤더니 비즈니스 석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있었습니다. 생색도 내지 않고 필요하다니까 그냥 믿고 티켓을 바꿔주는 나라는 아마도 전 세계에서 아이슬란드가 유일한 나라일 것입니다. 덕분에 돌아오는 길이 아주 편했습니다. 



14레이캬비크7.jpg 사진: 이명선


시 레이캬비크와 처음 만나던 시간으로 되돌리겠습니다. 오후 5시쯤 호텔에 도착했지만, 블루라군에서 떠날 때부터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건물 구경을 한 것은 거의 레이캬비크 근처에 당도했을 때부터였습니다. 대개는 그냥 어두운 황무지를 차도 별로 없는 이차선 길을 홀로 달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알래스카처럼 아이슬란드도 길이 하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자동차를 렌트해 여행해도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아주 편하다고 합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우리의 2차 아이슬란드 탐험은 무조건 자동차 렌트 여행으로 만장일치 합의되었습니다. 차도는 거개가 2차선이고, 도시 근처에 갈 때만 잠시 4차선이 되거나 아주 잠깐 6차선일 때가 있을 뿐입니다. 


날은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졌고, 오랜 시간 온천으로 나른해진 몸이니 호텔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멀리사가 짐 풀고 옷 갈아입으면 자기들 방으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이미 라면을 끓이고 누룽지까지 끓여 놓고 있었습니다. 반찬도 멸치볶음과 더덕무침, 우엉 졸임, 단무지까지 작은 팩에 담아왔습니다. 


사실 우리 일행 넷 중에 멀리사는 8등신(아니 9등신?) 몸짱에 단연 최고의 패셔니스타고, 워낙 세계 여행을 많이 한 멋쟁입니다. 그런 멀리사가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라면과 누릉지, 반찬까지 준비해오리라곤 아무도 상상을 못해서 정말 놀랐습니다. 

“나는 여행할 때 절대로 한국음식 싸가지고 다니지 않아요. 그런데 아이슬란드는 물가가 비싸고, 추운 섬나라니까 먹을 것도 마땅치 않을 것 같아 준비해온 거예요.” 

막상 멀리사는 심드렁하게 말했지만, 물 끓일 전기주전자며 몇 가지 치즈와 와인, 그리고 직접 만든 우엉차까지 가방이 터지도록 싸왔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호강을 했습니다. 매일 방에서 우엉차를 끓여 마시고, 아침에 나갈 때는 물병에 담아서 가지고 다니면서 마셨습니다. 우엉이 몸에 좋다고도 하지만 향도 아주 구수하고 특별합니다.  



14레이캬비크2.jpg 사진: 이명선


래도 올드타운에 가면 겉보기와 달리 아기자기한 지역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파는 가게들이 많아서 돌아보는 재미가 풍부했습니다. 겨울이니 밤이 긴 나라라서 아침인지 밤인지 구별 없이 늘 어두운데, 그래도 한낮엔 한 두 시간 약간 하늘이 같은 회색이라도 하얗게 밝아집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서 나름대로 귀엽게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가게들이 꽤 있었는데 그 장식도 심플하면서 단정하게 잘 정돈된 모습입니다. 겉모습이나 실내나 어디를 가든 깨끗하고 단정하게, 그러면서도 내공이 느껴지는 의연한 무게감과 미니멀 속에서 느껴지는 반짝이는 소소한 창의력이 매우 매력적입니다. 마치 유럽의 좁은 뒷골목을 걷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올드타운까지는 호텔에서 버스로 3정거장이었습니다. 호텔에서 투숙객에게 무료 버스 승차권을 주었습니다. 승차권만 있으면 종일 버스를 타고 다닐 수도 있지만 작은 도시이니 그렇게 많이 쓸 일은 없습니다. 제일 먼저 우리 시선을 빼앗은 것은 페니스 뮤지엄(Penis Museum)이었습니다. 창가에 진열된 것 중에 효자손이랑 구두주걱까지 있어서 한바탕 허리를 펴지 못하고 웃었습니다. 



14레이캬비크5.jpg 사진: 이명선


한 부티크에는 특별한 모자들이 많았습니다. 넷이서 한 개씩 골라 쓰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멀리사는 마치 트로이의 전사같은 모자였는데 너무 잘 어울려서 우리가 사도록 부추겼습니다. 나중에 그 모자를 쓰고 다니니, 가운데 붙은 갈퀴 모양의 긴 양털들이 브라운 금발 같아서 바람이 불면 꼭 멀리사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것 같았습니다. 프란체스카는 여전히 튀지만 트로이의 전사 보다는 약간 덜 튀는 검정색 털모자를 사서 썼습니다.


런던처럼 빨간 길 가의 우체통을 만나서는 산타클로스에게 각자 소원을 집어넣었습니다. 싱글이니 당연히 우리들의 희망사항은 “몸짱의 백마 탄 왕자님을 보내주십시오.” 순서대로 서서 손을 집어넣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배우자가 있는 프란체스카도 제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바람에 또 한번 포복절도 했습니다. 아동복 집에도 재미난 모자가 많았습니다. 다정한 멤버들이 제 손자 블루에게 그 귀여운 모자를 선물로 사주었습니다. 



14레이캬비크1.jpg 사진: 이명선


커피 마시러 들어간 책방에선 한국 유학생을 만났습니다. 우리보다도 그 한국 유학생이 더 우리를 반겼습니다. 아이슬란드 통 털어 한국 사람은 12명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서로 만날 기회도 어렵겠지요. 몇 년 만에 한국인을 만났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한참 나눴습니다. 아이슬란드를 떠날 때 남은 라면을 일하는 사람들 먹으라고 남겨두고 왔는데, 그걸 그 한국 유학생에게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멀리사는 뉴욕에 돌아와서도 두고두고 안타까워합니다. 


올드타운 관광의 정점은 레이캬비크의 올드타운 한가운데 솟은 ‘홀그림 교회’입니다. 레이캬비크의 유일한 고층 건물입니다. 화산 분출 모습을 미니멀한 양식으로 형상화한 홀그림교회는 높이가 75m 인데, 교회 안에 십자가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단 양쪽에 성화가 한 개씩 걸려있고, 제대 앞면에 새겨진 십자가가 전부였습니다. 교회 앞엔 콜럼버스에 앞서 10세기 말 미국을 발견했다는 바이킹 레이프 에릭손(Leif Eriksson)의 동상이 있습니다. 추방 당한 노르웨이인의 아들인 붉은 에릭(Eric the Red)은 아이슬란드에서 성장하여 982년 그린란드를 식민지화하였고, 그의 아들이 유럽인 최초로 북아메리카 해안을 탐험한 후 그곳을 빈란드(Vinland the Good)라고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레이프 에릭손이라고 합니다. 



14레이캬비크8.jpg 사진: 이명선


전문인 먹는 얘기가 빠졌습니다. 레이캬비크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핫도그는 엉뚱한 집에 가서 먹는 바람에 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의 소시지는 맛있습니다. 호텔 아침 식사가 매우 좋아서 우리는 아침마다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런 식사를 했습니다. 뷔페식이지만 온갖 종류의 과일과 요거트, 빵, 치즈, 과일 주스, 생선들이 푸짐하고, 햄과 베이컨, 소시지, 계란에 죽까지 있습니다. 야채도 비록 온실재배지만 싱싱합니다. 어업이 국가경제의 근간인만큼 해링, 싸딘, 연어 등 생선이 얼마나 싱싱한지 먹보인 프란체스카와 저는 매일 아침 일찍 식당에 가서 먹고 또 먹었습니다. 


둘째 날 점심은 레이캬비크에서 두 번째로 유명하다는 ‘마켓 그릴(Market Grill)에 가서 먹었습니다. 화산재를 이용한 독특한 스타일의 인테리어가 돋보였습니다. 식당 메뉴를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마침 ‘크리스마스 특별 맛보기 메뉴’가 있었습니다. 애피타이저 3가지에 메인 요리 2가지, 디저트입니다. 애피타이저로 생선으로 속을 채운 계란튀김, 오리, 새우 요리가 나왔고, 메인으로는 대구 요리와 양고기 스테이크가 나왔습니다. 디저트는 라이스 푸딩인데, 밑엔 캐러멜이, 장식은 블랙베리 이었습니다. 음식 맛이 고급스럽고, 접시에 예술적으로 담아 내오는 모습이 뉴욕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양이 넉넉하다 보니 코스대로 나오는 음식을 다 먹기가 많이 버거웠습니다만, 아이슬란드의 맛을 남길 순 없어 꾸역꾸역 다 먹었습니다. 덕분에 그날 저녁은 모두들 건너뛰었습니다. 레드 와인까지 한 병 마셨는데, 넷이서 먹은 값이 200불 정도였습니다. 메뉴에서 먹었으면 적어도 5백 불 이상 나왔을 테지만, 크리스마스 특별 메뉴 덕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레이캬비크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집은 타파스 식당인데, 가격은 높으나 음식 맛은 그다지 추천할 만하지 않았습니다.  



14레이캬비크6.jpg 사진: 이명선


깜깜한 암흑 속을 두 시간이나 달려가서 보려던 오로라는 하늘이 열리지 않아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깜깜절벽 속에서 몇 분간 깜짝 쇼로 별이 나왔습니다. 온 세상이 다 암흑이니 별들은 유난히 빛나서 큰 별들 뿐만 아니라 바닥에 수많은 은하수들이 잔디처럼 깔려서 반짝이는데, 그 별들의 반짝임에 눈이 부셨습니다. 가는 길도 오는 길도 그냥 깜깜 절벽이었고, 다니는 차라곤 저희 버스 한 대 뿐이었습니다. 그 암흑의 길을 달리는 차 속에서 프란체스카는 “지금은 아무 것도 안 보이지만, 내일 보면 이 길들이 무지 멋있는 길일 거예요.”, 하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프란체스카의 예언대로 자연의 신비가 살아 숨 쉬는 화산재의 황무지와 조우하게 됩니다.  



이영주000new100.jpg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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