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File
2014.05.2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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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업 코미디의 여왕
마가렛 조 Margaret Cho
1994년 ABC는 미 TV 방송사상 최초의 아시안 아메리칸 가족 주인공 시트콤 '올 아메리칸 걸(All-American Girl)’을 방영했다. 한국계 스탠드업 코미디언 마가렛 조(41)가 주인공 마가렛 김 역으로 출연했지만, 제작진과 한인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으며 조기 하차했다.
이후 김윤진, 다니엘 대 김이 출연한 '로스트'나 산드라 오가 등장하는 '그레이즈 아나토미'가 브라운관의 인기 시리즈가 됐다. '올 아메리칸 걸' 데뷔 20년 후인 2014년 ABC가 아시안 가족 이야기를 소재로한 시트콤 'Fresh off the Boat'를 방영할 예정이다.
미 TV에서 '아시아판 빌 코스비 가족'이 필요한 시점, 마가렛 조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본다.
*다음 인터뷰는 한국 중앙일보 2010.11.20자에 게재된 것을 보완한 것입니다.
“명석하며, 도를 넘어서는, 미국에서 가장 웃기는 코미디언 중의 한명. 눈물이 얼굴로 흘러내릴 때까지 웃었다.”
-스티븐 홀덴, 뉴욕타임스-
“…누구든 한번쯤 아웃사이더라고 느꼈던 이들의 수호성인(the patron saint).”
-워싱턴 포스트-
“코미디계의 가장 두려움이 없는 수퍼 히어로”
-메리 케이-쉴링,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All-American Girl, ABC
1994년, ABC-TV는 방송사상 최초로 아시안아메리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야심만만한 시트콤 ‘올 아메리칸 걸(All-American Girl)’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한창 전성기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마가렛 조(41)가 주인공 마가렛 김 역으로 캐스팅됐다. 그러나, 시청률이 저조하자 프로듀서들은 조씨를 겨냥했다.
그녀가 너무 ‘뚱뚱하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또, 연기도 아시아인답지 않다며 아시안 컨설턴트까지 붙여주었다. 얼마 후 비평가들은 조씨가 ‘지나치게 아시아적’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한편, 한인사회에선 “더럽고,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가 한인들을 왜곡한다”며 공격했다.
첫 시즌 19회를 끝으로 시트콤은 폐지됐다. 2주간 30파운드까지 몸무게를 줄여가며 출연했던 조씨는 마침내 신부전증으로 드러누웠고, 그때부터 술과 마약, 담배, 그리고 무절제한 섹스에 의존하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가렛 조는 슬럼프에서 서서히 깨어났다. 누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자각한 그는 1999년, 자전적 코미디쇼 ‘나는 내가 원하는 나(I’m the one that I want)’로 무대에 복귀했다. 이후 전국을 순회하며 ‘올 아메리칸 걸’의 비하인드 스토리로 ABC에 멋지게 복수전을 시작했다. 마가렛 조는 동성애, 인종차별, 정치인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모 등을 소재로 한 웃음 보따리를 담아 미 대륙을 종횡무진했다.
조씨는 이 쇼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13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었으며, 책까지 출판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돌아온 마가렛은 이후 ‘악명높은 C.H.O.’‘국가 비상사태’‘암살’‘육감적인 여자’‘뷰티풀’ 등 코미디쇼로 전국을 돌며 폭발적인 매진 속에 순회공연을 해왔다. 코미디언에서 영화배우이자, 프로듀서, 작가, 사회운동가, 비만여성을 위한 플러스사이즈 패션디자이너로까지 변신해온 카멜리온 마가렛 조는 최근엔 가수로 재능을 과시했다. 10여명의 유명 뮤지션들과 함께 노래와 개그를 담은 앨범 ‘조 디펜던트(Cho Dependent)’까지 출반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시는 2008년 4월 30일을 ‘마가렛 조의 날’로 선포했다. 올 5월 아시안아메리칸 최대 포털 사이트 goldsea.com에선 조씨를 ‘역사상 가장 영감을 주는 아시안아메리칸’ 61위에 선정했다.
대학에 가지도 않았으며, 미모와 몸매의 소유자도 아닌 그는 여성, 유색인종, 그리고 동성애자 등 미국사회의 소수계층을 대변하는 목소리로 열혈팬을 확보해왔다. 그에게 쏟아지는 찬사는 ‘지적이며 진정 아름다운 사람(intelligent and beautiful)’이었다.
귀를 두곳에나 뚫었지만, 소리에 민감해 귀고리는 안하는 여자. 성형수술은 절대 안해도 온몸에 문신을 즐기는 마가렛 조의 한국이름은 조모란, 그는 순두부 없이 못살고, 갈비요리를 즐기는 순수 한인 혈통이다.
LA와 애틀랜타에 집을 둔 마가렛 조는 지난 8월 26일 오리곤주 포틀랜드에서 ‘조 디펜던트’ 투어를 시작했다. 12월 12일 조지아주 애틀랜타까지 37개 도시를 돌며 공연 중이다. 조씨와 E-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반응을 주시하는 코미디언
-코미디 소재는 어디서 얻나.
“웃기는 것을 글로 쓴 다음에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에 주위를 기울여본다.”
-CD ‘조 디펜던트’를 녹음하게된 이유는.
“코미디 노래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뮤지컬 코미디 앨범을 출시하는 것도 무척 좋을 것 같았다. 코미디언들 대부분은 록스타가 되고 싶어하고, 대부분의 록스타들은 코미디를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쉬운 교환작업이었다.”
(마가렛 조는 TV 토크쇼 ‘첼시 레이틀리’에서 ‘가수 신디 로퍼와 함께 공연하던 중 로퍼가 ‘너 목소리 참 좋은데’라고 칭찬해서 노래를 배웠다”고 말했다.)
-노래방에 가나.
“Oh no, 절대 안간다!”
-많은 뮤지션들과 일한 경험은, 함께 녹음하고 싶은 뮤지션은.
“모두들과 작업하는 것을 즐겼다. 그들은 내 영웅들이다. 앞으로 나일 로저스, 린다 페리, 데이빗 보위와도 함께 일해보고 싶다.”
-레코드 회사 녹음실, 극장 무대, 영화와 TV 카메라 앞에서 일하는 차이라면.
“모두 다른 경험이지만, 난 그들 자신의 방식대로 하는 것을 즐긴다.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무척 놀랍다. 난 무척 운이 있는 것 같다.”
-37개 도시 순회 공연엔 누가 동반하나.
“내 쇼의 오프닝 공연을 하는 무척 웃기는 존 로버츠와 머천다이즈 담당, 그리고 투어 매니저로 아주 작은 그룹이다.”
-수많은 도시에서 만나는 팬들은 어떻게 다른가.
“무척 다르기도 하지만, 유사한 점도 많다. 내 청중은 아주 훌륭하다!”
-잊을 수 없는 체험이라면.
“너무도 많아서 셀 수도 없다! 라이브 공연은 항상 다르며, 항상 어려우며 또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투어의 가장 좋은 점은.
“매일 라이브로 공연하는 것이다!”
-투어에서 가장 그리운 것은.
“집의 가족과 친구들이다.”
-공연 전후의 먹는 습관은.
“항상 변한다! 난 공연 전에도 끝난 후에도 항상 먹는다.”
-자신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공격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나.
“잘 모르겠다. 그저 유머로 반응하는 수 밖에, 그게 유일한 투쟁법이니까.”
아버지는 유머 작가
-코미디의 재능은 누구에게 물려받았나.
“엄마, 아버지 모두 엄청나게 재미난 분들이다.”
-한국이름 ‘모란’에 대해.
“좋아하는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만 쓴다.”
-부모도 자신의 쇼를 좋아하나. 엄마는 자신에 대한 농담을 어떻게 생각하나.
“부모님은 내 코미디를 무척 좋아하신다. 엄만 내가 흉내를 완벽하게 낸다고 생각하신다. 내 행동이 좀 지나치다 싶으면, 부모님은 영어를 못하는 척 하신다.”
-부모가 서점을 운영했고, 얼마 전 본인은 미 공립도서관의 모델로 등장했다. 10대에 가장 좋아했던 책은.
“‘Are You There God? It’s Me, Margaret’과 ‘초원의 집(Little House)’ 시리즈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가 ‘친애하는 애비에게(Dear Abby)’ 칼럼을 좋아했다.”
-아버지가 이민 초기에 추방되었다던데.
“어릴 때 한국에서 살았었다. 아버지가 추방된 일은 아직도 수수께끼며, 그때 난 너무 어렸다. 부모님은 거기에 대해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으신다. 우리 가족의 일들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이 많다.”
-10살 때 롤 모델은.
“리처드 프라이어, 에디 머피, 스티브 마틴. 난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다.”
-왜 하필이면 코미디언이었나.
“항상 되고 싶었는데, 왜 원했는지는 잘 몰랐다.”
-학교에 인종적 다양성이 있었나. 별명은.
“다양한 편이었다. 별명은 없었지만.”
-없으면 못살 것 같은 한국적인 것.
“순두부!”
-요리를 하나.
“잘은 못하지만, 갈비 하나는 잘 만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식이 바로 갈비다.”
-퀜틴 타란티노 감독이 보신탕을 좋아한다던데, 지금도 친구 사인가.
“친구 지간이다. 그런데, 안본지 꽤 됐다. 그를 사랑한다.”
(*오래 전 마가렛 조는 영화감독 퀜틴 타란티노와 사귀었다. 타란티노는 맨해튼 웨스트빌리지의 한식당 ‘도화’의 투자자이기도 하다. 타란티노는 1997년 브로드웨이 연극에 출연 중 기자와 만나 “‘펄프 픽션’ 한국 개봉 때 방문해 보신탕을 맛있게 먹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왜 알 리데누어(아티스트)와 결혼을 결심했나.
“‘영원히’ 알고 지냈던 사람이고, 우리는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가로운 날에 하고 싶은 일은.
“한가한 날은 없다. 난 한국인이다.”
-어떤 술을 즐기는가.
“와인을 좋아하지만, 얼굴이 빨개진다!”
-애완동물은.
“개 두마리를 키운다. 이름은 거드런과 브론윈, 최고의 개들이다.”
내 성공의 비밀은 끈기
-‘올 아메리칸 걸(All American Girl)’과 한인 배우들이 등장하는 ‘로스트’‘그레이즈 아나토미’를 통해 본 미국사회의 변화는.
“영화에 좀 더 많은 아시안아메리칸들이 있지만, 진짜 우리는 더 필요하다. 윤진 (김), 대니얼 (대 김), 산드라 (오)를 보는 것이 정말 즐겁지만, 우린 더 많이 필요하다.”
(마가렛 조는 미 방송 최초의 아시안아메리칸 쇼(올 아메리칸 걸)의 주연이었고, 2008년 두번째 아시안아메리칸쇼인 리얼리티 시트콤 ‘더 조 쇼’의 주연을 한 장본인이다.)
-한인사회가 ‘올 아메리칸 걸’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지금은 지지를 하고 있나.
“내 생각에 사람들이 그후로 ‘올 아메리칸 걸’같은 쇼를 다시는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서포트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모든 세대가 나와 함께 성장했고, 지금 한인사회는 날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아시안으로서, 여성으로서 성공의 비결은.
“잘 모르지만, 아마도 끈기인 것 같다.”
-코미디언을 지망하는 한인 어린이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은.
“해라!(Do it!)”
-다음 계획은.
“앨범 또 하나를 녹음하고, ‘드롭 데드 디바’를 촬영할 예정이다.”
(마가렛 조는 지난 6월부터 케이블 채널 라이프타임의 시트콤 ‘드롭 데드 디바(Drop Dead Diva)’에서 주인공 변호사의 조수로 출연 중이다.)
-2020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나.
“그렇다. 하지만, 상상하기 싫다!”
‘코미디의 여왕’ 마가렛 조의 본명은 조모란. 1968년 12월 5일 대한민국에서 국민교육헌장이 발표된 날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승훈씨는 유머 작가로 1964년 미국으로 이민왔다. 어머니 *천영희씨는 중매결혼을 거부하고, 자신을 웃기는 남성과 결혼한 신 여성이다.
아시안 인구와 동성애자들이 많은 멜팅팟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소녀 마가렛은 부모가 운영하던 책방과 그 윗층의 코미디클럽에 드나들며, 열살 때 벌써 코미디언의 꿈을 키웠다.
곧 코미디 경연대회에서 우승, 제리 사인펠드의 오프닝 공연과 밥 호프 쇼에 초대된 조씨는 20대 초 전국 대학가를 돌며 순회 공연했다. 그리고 94년엔 미 코미디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여자 코미디언’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ABC-TV의 시트콤 ‘올 아메리칸 걸’의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마가렛 조의 말·말·말
(※유튜브에 올려진 코미디 쇼와 그의 발언에서 발췌한 것)
▶성정체성: “전 동성애자인 것 같아요. 요즘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좋아요. 19살 때 처음 여자와 자본 후 이성애자인가, 동성애자인가 고민했는데, 저는 그저 헤프다는 걸 깨달았어요. 전 단지 사람들이 날 좋아하길 원할 뿐이예요. 전 양성애자(bi)도 아니고 저(i)일 뿐이예요”
▶인종: “아이리시계 미국인고 결혼할 뻔했어요. 플로리다주 사라소타에 사는 그의 가족을 만나러 가게됐는데, 아시안이 있냐고 물었지요. 없다고 하길래, 그럼 세탁소에 들르자고 했지요. 정말 홀로 아시안이 되고 싶진 않았거든요! 하지만, 백인 그룹 속의 아시안 하나보단, 아시안 그룹 속의 백인 하나가 더 어려울 것 같아요. 왜냐면, 우린 백인 바로 앞에서 직설을 할테니까요. ‘왜 눈이 그렇게 크냐? 파리라도 잡으려고? 키는 또, 너무 커! 고질라같아!라고 소리를 지르거든요.”
▶성형수술: “난 성형수술보다 문신이 더 좋아요. 왜냐면 전신에 문신을 해서 사람들이 주름살 볼 필요 없이 ‘세상에, 저 거북이가 어디로 걸어가나’하고 생각할테니까요…”
▶마리화나(pot, 대마초): “난 대마초가 약이 아니라 야채라고 생각해요. 불공평해요. 유색인종은 약초용액을 좋아하기 때문에, 금지하는 것은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해요.”
▶일부일처제: “일부일처제는 정말 이상해요. 우린 함께 사는데, 섹스는 전혀 다른 차원이 되지요. 전 아주 저임금의 매춘부처럼 느껴져요. ‘당신이 쓰레기를 내다 버리면, 구강 섹스와 항문 섹스를 해줄께요.’라는 식으로…”
▶부모: “엄마는 보수적이지만, 동성애자들에 대해 재밌는 태도를 갖고 있어요. 엄마가 이야기해주셨죠. ‘모든 이들에겐 약간씩 게이끼가 있단다. 친구를 너무 좋아하는데, 어쩔줄 몰라하는 것말이야. 대학교는 바로 ’게이 타임‘이거든. 네 아빠의 동성애∼ 체험에 대해 말해줄까? 예전에 한국에서 네 아빠가 대학교 다닐 때 일이란다. 어느날 아빠가 절친한 남자친구와 야외로 소풍을 갔더란다. 왜냐면, 게이들은, 피크닉을 워낙 좋아하거든. 그런데, 친구가 아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널 사랑해’라고 말했다지 뭐니. 아빠는 그말을 듣고 너무 놀랐지. 그런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할지 몰랐다고 해. 아빠는 ‘사랑한다’고 되받아 말할 수 없어서 말이지...글쎄 친구를 주먹으로 쳤단다. 그후론 친구와 사이가 서먹서먹해졌단다. 아빤 친구를 잃어서 평생 후회했다고 하드라. 그러니깐 동성애 친구가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때리지 마! 그냥 ‘고맙다(thank you!)’고 말해.”
▶코미디:“청중이 당신과 함께 있을 때, 조크는 신선하고, 우리의 시간은 딱 맞아 떨어진다. 그리고 달은 유숙해져서 목성과 화성이 일직선 상에 떠있을 때, 당신은 맞는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더 이상 좋은 곳은 없다. 코미디는 신으로부터 온 희귀한 선물이며, 경이로운 발명품이다. 코미디는 당신을 우주의 심장으로 바로 몰고간다.”
▶롤 모델: 난 롤 모델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난 내 진실을 이야기할 따름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는 것이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그리고 만일 내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격려할 수 있다면, 롤 모델이 되고 싶다. 만일 내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라고 격려할 수 있다면, 그게 나에게 오는 보상인 셈이다. 나는 아카데미상 수상 따위엔 관심이 없다. 주류사회의 승인에도 관심없다. 왜냐면, 그건 내가 원하는 나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난 내 일을 하고 싶을 뿐이며, 그걸 사랑할 뿐이다.”
뉴욕중앙일보=박숙희 기자 sukie@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