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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이영주: 초콜렛 케이크와 헝가리안 쿠키
뉴욕 촌뜨기의 일기 (16)
초콜렛 케이크와 헝가리안 쿠키
글: 이영주(수필가) 사진: 크리스찬 로우스(Christian Loos)
Photo: Christian Loos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예년처럼 초콜렛 케이크와 헝가리안 쿠키를 구웠습니다. 초콜렛 케이크는 독일의 크리스마스 케이크고 헝가리안 쿠키는 헝가리의 크리스마스 쿠키입니다. 이 두 가지는 제가 미국에 오자마자 배워서 굽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30년이 넘도록 수없이 구운 케이크와 과자입니다. 물론 그 외에도 치즈케이크며 애플파이, 티라미수도 자주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정말 많이 구웠습니다. 초콜렛 케이크는 독일 친구인 르나타한테서 배운 것이고, 헝가리안 쿠키는 당시 뉴욕에 유학 중이던 첼리스트 홍성은 교수에게서 전수 받았습니다.
초콜렛 케이크는 초콜렛 롤 위에 빨간 체리를 중앙에 놓고 초록색 체리로 잎사귀를 만들어주고 흰 파우더 슈가를 뿌리면 정말 예쁩니다. 세 딸이 학교 다니는 동안 크리스마스가 오면 학교 담임 선생님들이며 줄리아드 교수님들에게 이 초콜렛 케이크를 구워서 선물로 보내드리곤 했습니다. 교사들이나 교수님들이나 이 선물을 무엇보다 좋아하셔서 한꺼번에 여러 개 굽는 일이 힘은 좀 들었지만, 열심히 구웠던 일이 새삼 떠오릅니다.
뒤돌아보면 저의 빵 만들기 역사는 쌍둥이 딸들을 낳았을 때로 돌아갑니다. 딸들이 출생하고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과자나 빵 등, 주전부리를 사 먹인 적이 없습니다. 늘 제가 집에서 만든 것만 먹였습니다. 처음 시작은 찐빵입니다. 밀가루를 막걸리로 반죽하거나 이스트를 넣어 발효시킨 후 거기에 삶은 콩이나 고구마, 밤을 넣어서 찜통에 찐 빵입니다. 식성이 좋은 쌍동이들은 이 빵을 맛있게 먹곤 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오븐을 가진 것은 아마 딸들이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로 기억됩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전기 오븐을 생산했습니다. 하나에 3만원이었는데, 그 당시 우리 회사의 전무 월급이 3만원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오븐 사기 계’를 하자고 해서 저도 들었습니다. 열명이 넘는 계원들 중 저는 다섯 번째인가 해서 그 5개월을 기다리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드디어 계를 타서 오븐을 샀을 때는 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습니다. 그때 친구들이 가르쳐준 것이 카스테라입니다. 지금처럼 거품기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으므로 손으로 계란을 거품나도록 저을려면 팔이 끊어지는 것처럼 아팠지만, 아픈 것조차 기쁨이었습니다. 구을 때는 왁스 페이퍼는 존재도 몰랐으니 팬에 신문을 오려서 깔고 구웠습니다.
Photo: Christian Loos
세 딸들은 제가 굽기 무섭게 카스테라를 먹어 치워서 거의 매일 구웠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전기 오븐을 쓰면 전기세 많이 나간다고 언짢아 하셔서 주무신 다음에 밤에 몰래 굽느라고 졸다가 태운 적도 있었습니다. 다음 작품은 밤과자 였습니다. 팥앙금 말린 가루로 만드는 밤과자를 딸들이 정말 좋아했습니다. 방산시장 제과점 재료상에 가서 산 짜주머니는 짜주머니 밑에 끼는 게 구멍이 너무 커서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머리를 써서 비닐봉지 끄트머리를 조금 잘라서 그 구멍으로 반죽을 짜서 밤과자 만들어야 했습니다.
참 힘이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딸들이 좋아하니까 매일 굽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딸들 셋이 워낙 먹성이 좋아서 도넛을 밥통 하나 가득 만들고 밤과자도 한 통 구워 놓으면 셋이서 그것을 하루에 다 먹어 치웠습니다. 도넛은 밀가루 반죽을 해서 주전자 뚜껑으로 둥글게 잘라 가운데는 작은 병뚜껑 같은 걸로 도려내서 기름에 튀기는 원시적인 도넛이었습니다. 튀긴 다음에 설탕에 계피가루를 섞어 묻히면 맛이 그럴싸 했습니다. 어쨌든 홈메이드니 파는 상품과는 차별성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처음 와서는 호떡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미국 그로서리에서 파는 캔에 들은 반죽을 사다가 조금씩 떼어서 설탕과 계피가루, 땅콩을 다져 넣은 속을 넣고 후라이팬에 부쳐 주었습니다. 사는 호떡보다 훨씬 맛있습니다. 그러다가 곧 헝가리안 쿠키와 초콜렛 롤을 배워서 굽기 시작했고, 애플파이며 치즈케이크, 펌킨파이, 웨딩 케이크, 브라우니 등등, 베이킹 메뉴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딸들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주전부리라야 과일이나 쥬스, 요거트 빼면 오직 홈베이킹 디저트만 먹었습니다.
둘째 루시아는 초콜렛 케이크를 너무 좋아해서 자기가 한 롤을 다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정말 한 롤을 더 구워 주었더니 앉은 자리에서 끝냈습니다. 물론 그때 딱 한번 뿐이었습니다. 그 후론 자기 자신이 덜 먹으려고 애씁니다. 살이 찔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초콜렛 롤에 밀가루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집에서 베이크 해서 좋은 점은 들어가는 설탕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점입니다. 저는 대개 정량의 반만 넣어서 굽습니다. 그러면 달지는 않아도 맛은 제대로 나므로 먹는데 부담이 훨씬 덜어집니다.
Photo: Christian Loos
무엇보다 케이크나 과자를 굽다 보면 그 굽는 작업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선한 재료를 써서 알맞은 양으로, 알맞은 온도로, 적절한 시간 베이크해야 훌륭한 완성품이 나옵니다. 똑같은 재료를 쓰고, 제가 늘 만드는 데도 구울 때마다 모양과 맛이 다릅니다. 그날의 기온과 습도며 또 손질하는 저의 컨디션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여건이 성숙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가 원하는 삶이 살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베이크 할 때마다 반죽 시작부터 심혈을 기울여 정성을 다해서 손질을 합니다. 그리고도 까딱 시간을 오버해서 실패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만. 그런 실패작은 딸들 주니까 딸들이 어릴 때는 “엄만 우리들은 실패작만 주고 이쁘게 구워진 것은 맨날 남들 준다.”고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집에서 시루떡을 하면 엄마는 동네 사람들 다 나눠주고 우리 형제들은 시루 옆에 붙어 있던 질척한 떡만 주셨습니다. 그게 어린 마음에 너무 분해서 “난 이담에 커서 절대로 엄마처럼 하지 않고 젤 좋은 것만 내 애들에게 줄거야.” 결심했는데, 제가 나이 들으니 저도 엄마처럼 실패작을 딸에게 주는 그런 엄마가 되었습니다.
2015년 첫 일기가 옛날 추억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초콜렛 케이크와 헝가리안 쿠키를 큰딸 마리아가 만들어준 카푸치노와 먹다가 감회가 새로워져 제 베이킹의 역사를 써봐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 공식 사진사인 마리아에게 부탁을 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들 얘기하는 걸 듣고 있던 둘째사위 크리스찬이 “어디에 낼 거냐?”고 물어서 내가 쓰는 뉴욕촌뜨기 일기에 쓸 참이라고 했더니 자기가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전화기로 사진을 이모저모 찍었습니다. 행복한 새해의 시작입니다.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