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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5.03.26 12:35

(88) 이영주: 나비천사 이해인 수녀님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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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20)


나비천사 이해인 수녀님의 선물



수녀님은 소프라노도 아니고 메조 소프라노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고운 목소리로 마치 종달새가 날아가듯 말씀을 쉽게, 유머러스하게, 술술 보따리를 끝없이 풀어내시는데, 말씀하실 때마다 사람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드신 신출귀몰한 재주가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웃고 나서 생각해보면 행복하게 사는 지혜의 가르침이 들어있습니다.



20이해인수녀님4.jpg 이해인 수녀님  사진: 이명선



인이자 나비천사 이해인 수녀님이 오늘(3월 20일) 뉴욕을 떠나셨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에 도착해서 일주일 동안 다섯 차례의 강연회로 뉴욕 동포들에게 폭풍처럼 행복 바이러스를 선물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아쉬운 작별입니다. 


저와 이해인 수녀님의 인연은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님께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몇 차례 함께 만나다 보니 어느 핸가는 부산의 수녀원까지 방문하기도 했더랬습니다.


수녀님은 시든 산문이든 책을 출판하기만 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대한민국 국민이 사랑하는 시인이십니다. 어릴 때 위인전을 좋아하던 저는 위인전을 읽으면서 저와 그 위인의 공통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마치 저도 크면 그런 위인이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면서 행복해했습니다. 그 버릇은 이렇게 나이든 지금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이번에도 이해인 수녀님이 뉴욕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수녀님과 저의 공통점을 열심히 찾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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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과의 점심 식사 사진:차태현



째는 수녀님과 제가 동갑입니다. 최인호 선생과도 동갑이라 늘 서로 친구라고 생각하며 즐거워했는데, 수녀님 역시 저와 나이가 같다는 사실이 은근히 기분 좋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강원도 사람입니다. 수녀님은 강원도 양구 출신, 저는 철원 출신입니다. 더군다나 수녀님에게 행운의 숫자가 8이란 데는 놀랍기까지 했습니다. 수녀님들은 수녀원에서 일련번호가 있다는데, 수녀님께 주어진 번호는 88번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그 번호가 싫었는데, 원장 수녀님께서 88은 나비와 같은 모양이 아니냐면서 얼마나 예쁘냐고 하시는 바람에 그 나비가 좋아서 나비천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우연의 일치지만, 저도 중학교 때부터 행운의 숫자가 8이었습니다. 중학교를 꽤 괜찮은 성적으로 붙었는데, 그때 수험번호의 합이 8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숫자 8을 좋아하기 시작해서 평생 제 행운의 숫자가 8이 된 겁니다. 또 연극배우도 하고 싶으셨다는데 저도 중학교 땐 연극배우가 꿈이어서 학교에서 연극도 했더랬습니다. 얼굴이 예뻤다면 전 아마 지금쯤 연극배우로 살고 있었을 겁니다. 이렇게 수녀님과의 공통점을 꼽으면서 제가 수녀님이기라도 된 것처럼 혼자 들떠서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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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님이 나비박물관에서 강연하시는 모습 사진:차태현



사실 수녀님이 강연하시는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수녀님은 소프라노도 아니고 메조 소프라노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고운 목소리로 마치 종달새가 날아가듯 말씀을 쉽게, 유머러스하게, 술술 보따리를 끝없이 풀어내시는데, 말씀하실 때마다 사람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드신 신출귀몰한 재주가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웃고 나서 생각해보면 행복하게 사는 지혜의 가르침이 들어있습니다. 사람들더러 시를 낭송하게도 하고, 모두 함께 읽게도 하시면서 매일매일을 생일처럼 만들어서 축하할 일을 만들자고 하시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가장 강조하신 것은 언어의 순화였습니다. 언어폭력이라고 할만큼 거칠고 황폐해진 요즘 사람들의 일상적인 언어들, 예를 들면  ‘미치고 팔딱 뛰겠어’ ‘웃기고 자빠졌네’ ‘환장하겠네’ ‘꼭지가 돌겠어’ ‘이가 갈리고 치가 떨려’ ‘딱 질색이야’ ‘지랄하고 자빠졌네’ ‘쪽 팔린다’ ‘웃기는 짬뽕’ ‘재수 옴 붙었다’ ‘죽을 맛이야’…. 부드러운 표현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며 예로 든 말들이 수녀님 입에서 나올 때마다 청중들이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습니다. 


수녀님은 국민배우 안성기씨 예를 들었습니다. 안성기씨에게 "정말 화나고 한 대 치기라도 하고 싶을 땐 어떻게 말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러시면 곤란합니다."라고 한다고 합니다. 수녀원에 계시는 수녀님 중의 한 분은 그렇게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오면 "보통 일이 아닙니다."라고 하신다는 얘기도 범상치 않았습니다. 한 신부님은 차마 성직자의 신분으로 욕을 할 수가 없어서 욕을 강약 순서로 번호를 정해놓고 욕하고 싶을 때마다 그에 맞는 번호를 외치신다든가 또 어떤 분은 그럴 때마다 "그것은 너의 말이다."를 마음 속으로 외치면서 감정을 누른다는 예도 들려주셨습니다.   



20이해인-IMG_1405 (2).jpg 이해인 수녀님 뉴욕, 뉴저지 강연 포스터



은 최선을 다해 정성껏 살아가는 예술이므로 맛있는 하루가 되기 위해선 단조로운 일상에도 항상 깨어 있어야 하며, 할 일을 미루지 않는 구체적이고 성실한 반성의 습관이 필요하고,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새로운 감동으로 감사하면서, 항상 고운 말을 써야 한다고 역설하시는 수녀님의 말씀들은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와서 보석처럼 알알이 박혔습니다. 행복과 숨바꼭질하는 설렘의 기쁨으로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시 구절들, 어린 소년에게 친절과 사랑의 다른 점을 물었더니 배고플 때 빵을 주는 것은 친절이요 그 빵 위에 달콤한 잼을 얹어주는 것은 사랑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처럼 수녀님은 우리가 삶 속에서 우리의 단조로운 삶 위에 색깔이 아름답고 맛이 다양한 잼을 밥 위에 얹는 지혜들을 끝없이 먹여 주셨습니다.    


‘수행이란 안으로는 가난을 배우고 밖으로는 모든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다. 어려움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것이다. 용맹 가운데 가장 큰 용맹은 옳고도 지는 것이다. 공부 가운데 가장 큰 공부는 남의 허물을 뒤집어쓰는 것이다’는 성철 스님의 말씀을 좋아하신다는 수녀님은 타골과 윤동주 시인, 청록파 시인들이 롤 모델이었다며 타골처럼 시와 삶이 일치했던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하십니다.



20이해인수녀님3.jpg 수녀님 사인하신 것  사진:이명선



강연이 끝나면 수녀님은 그 고운 목소리로 마치 어린 소녀처럼 고음으로 ‘초록빛 하늘’이란 동요를 스타카토로 불러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시고, ‘구름이 구름이 하늘에다 그림을 그림을 그립니다’는 율동까지 곁들여서 톡톡 튀는 영롱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수녀님의 그 옥구슬처럼 순수한 영혼의 나라로 푹 빠지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새벽 1시, 2시까지도 모든 이들에게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귀엽고 앙증맞은 오색찬란한 스티커로 장식해서 사인을 해주시고, 사진도 함께 찍으시면서 조금도 피곤한 티도 내지 않으시고 기쁨을 나누셨습니다. 그 에너지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수녀님께서 여학교 동창의 집에 머무르시던 날, 바쁘신 일정 속에서 점심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빚은 만두를 대접할 기회를 친구분이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저는 제가 잘 굽는 초콜릿 롤과 헝가리안 쿠키까지 수녀님께 대접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수녀님은 ‘나비천사’처럼 팔랑팔랑 뉴욕에 날아오셔서 힐링이라는 선물을 한 아름 안겨주고 떠나셨습니다.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는 수녀님의 따뜻한 배려와 정성이 따뜻한 봄날, ‘나비천사’의 날개짓으로 제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이영주000new100.jpg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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