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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필 황: 뉴욕 옐로캡 드라이버 되는 길
택시 블루스 <4> 콜택시 운전보다 높은 자부심으로...
뉴욕 옐로캡 드라이버 되는 길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민자 출신이다 보니 영어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떨어졌다. 나는 영어 시험을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통과했는데 역시 시험에 강한 한국 영어교육의 덕이라고나 할까.
뉴욕시에서 옐로캡을 운전하려면 소정의 자격요건과 택시운전 면허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뉴욕시 옐로캡 운전면허는 핵라이선스(Hack License)라고 부른다. 핵라이선스가 있으면 옐로캡뿐 아니라 일반 콜택시도 운전할 수 있다. 내 경우는 면허를 받기까지 약 6주가 걸렸으며 비용은 600달러 남짓 들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만, 내가 응시할 무렵인 2013년 여름에는 응시자가 많아 택시학교에 등록함과 동시에 시험 일정부터 잡았다. 당시에는 80시간 교육과정과 24시간 교육과정이 있는데 대부분은 80시간 과정에 등록했다. 24시간 교육과정은 기존에 콜택시운전을 하고 있거나 어떤 사유로 면허를 다시 따려고 하는 사람들이 등록했다.
택시학교에서는 뉴욕시 지리, 지도 보는 법, 터널, 교량, 고속도로 정보, TLC 규정 등에 대해 배운다. 꽤 방범위한 내용이어서 80시간 교육을 받아야 어느 정도 익힐 수 있다. 이렇듯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국제도시인 뉴욕에 걸맞은 옐로캡 드라이버를 양성해 배출한다는 취지였다. 그래서 옐로캡 드라이버는 일반 콜택시 드라이버에 비해 자부심이 높았다.
라과디아 커뮤니티 칼리지 택시학교(NYC TAXI AND FHV DRIVER INSTITUTE)에서의 수업. Photo: Phil Hwang
택시학교는 대학교 부설기관과 사설학원으로 나뉜다. 먼저 사설학원 중 한곳을 찾아가 봤는데 시설도 낙후하고 강사도 인도, 파키스탄 출신이라 액센트가 심했다. 대학부설로는 퀸즈에 있는 라과디아 커뮤니티 칼리지와 브루클린에 있는 킹스 커뮤니티 칼리지 두 곳이 있다. 나는 집에서 교통이 편리한 라과디아 커뮤니티 칼리지로 다녔다. 대학교 강의실에서 수업을 받으니 학창시절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강사들은 현직 택시기사였는데 대부분 백인이었다. 택시업계에 백인은 드문데 학교강사는 백인 위주라니 아이러니했다. 백인강사에게 배우다보니 영어공부도 많이 됐다. 그중 가장 잘 가르쳤던 강사는 클리 월시(Klee Walsh)라는 푸른 눈의 젊은 백인이었다. 그의 부모는 독일계 미국인이라고 했다.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대머리에다 운동으로 단련된 탄탄한 몸매를 하고 있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나보다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유머감각도 풍부했다. 그는 일주일에 사나흘은 운전하고 쉬는 요일에는 강의를 나왔다. 다른 강사들은 나이가 더 많았는데 학자 스타일로 고루하거나 다소 냉소적인 유머감각을 갖고 있거나 했다. 이집트나 아랍 출신으로 보이는 젊은 강사도 있었는데 약간의 액센트가 있었다.
시험은 매주 치러졌는데 영어시험과 필기시험으로 나뉜다. 영어시험은 받아쓰기, 듣고 이해하기 등 기본적인 영어소통 능력을 테스트했다. 과정에 따로 영어수업시간은 따로 없지만 모의고사를 통해 영어시험 요령을 익힐 수 있도록 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민자 출신이다 보니 영어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떨어졌다.
윌리엄이라는 흑인이 있었는데 그는 수업시간에 모범생 수준이었다. 말도 잘하고 이미 택시운전을 하고 있어 시내지리도 훤했다. 그런 그가 영어시험을 걱정하고 있었다. 영어시험에 떨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험을 봐야했다. 영어시험을 통과하고 필기시험에 떨어진 경우에는 재시험 때는 영어시험은 면제받을 수 있다. 나는 영어시험을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통과했는데 역시 시험에 강한 한국식 영어교육의 덕이라고나 할까. 필기시험은 오후에 치러지는데 지리시험이 주를 이뤘다. 필기시험도 좋은 성적으로 통과했다. 100점 만점에 96점 정도를 맞은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역시 학교와 현장은 달랐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 중 상당수가 쓸모없거나 사실과 달랐다. 가장 대표적인 것인 지도책이다. 학교에서는 시험에 사용된다는 이유로 특정 회사의 지도책을 사도록 했다. 그리고 규정상 택시에는 항상 이 지도책을 비치하고 다녀야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도책을 갖고 다니는 택시는 본 적이 없다. 내 택시 파트너들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이 책은 엄청 커서 갖고 다니기도 불편했다. 운전 중에 이 책을 펴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택시기사를 위한 한장짜리 작은 지도를 하나 사서 갖고 다녔지만 나중에는 그 조차도 보는 일이 없었다.
아무튼 이렇게 어렵사리 딴 택시운전면허였는데 요즘엔 사정이 달라진 모양이다. 우버(Uber)의 출현으로 택시업계가 지각변동을 겪고 있는 탓이다. 며칠 전 뉴스에서 택시운전면허시험에서 지리 시험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부분 운전자들이 GPS를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교에 알아보니 80시간 교육과정은 없어지고 24시간 교육과정만 있었다. 핵라이센스를 따려는 숫자도 훨씬 줄었을 것이다.
면허시험 응시자격
만 19세 이상/ 뉴욕주 운전면허 소지자 (인근 뉴저지, 커네티컷, 펜실베니아주 운전면허도 가능)/시민권자, 영주권자 등 합법적 체류자/사회보장카드 소지자
택시운전면허 취득절차
DMV 인증 6시간 방어운전교육 수료증 (최근 6개월 이내)-병원 검진 기록-이상의 두 서류를 가지고 TLC 사무실을 방문해 신청서류를 접수하고 수수료를 납부한다.-TLC에서 인증하는 교육기관에서 택시학교 과정을 수료한다.-약물 검사-시험-합격 시 우편으로 면허증(Hack License) 수령.
1960년대 막바지 대구에서 태어나 자라고 1980년대 후반 대학을 다닌 486세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독립영화, 광고, 기업홍보 영상, TV 다큐멘터리, 충무로 극영화 등 영상관련 일을 주로 했다. 서른살 즈음 약 1년간의 인도여행을 계기로 정신세계에 눈뜨게 된 이후 정신세계원에서 일하며 동서고금의 정신세계 관련 지식을 섭렵했다. 2007년 다큐멘터리 영화제작 차 미국에 왔다가 벤처기업에 취업, 뉴욕에 자리를 잡았다. 2010년부터 뉴욕라디오코리아 보도국 기자로 활동했으며, 2013년 여름부터 옐로캡 드라이버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