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의 한인 작가들 (4)양혜규(Haegue Yang)의 '살림(Sallim)'@MoMA
양혜규의 실존에 관한 명상 '살림(Sallim)'
2009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작 MoMA 구입 후 첫 선
Scenes for a New Heritage: Contemporary Art from the Collection
March 8, 2015–March 31, 2016@The Museum of Modern Art
아트선재센터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지난 3월 8일 시작한 30인의 그룹전 '새로운 유산을 위한 장면들(Scenes for a New Heritage: Contemporary Art from the Collection)'에서 한인 미술가 양혜규(Haegue Yang, 1971- )씨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양혜규씨가 이 전시에 선택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양혜규씨는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주은지(Eunjie Joo)씨에 의해 단독 작가로 선정되어 한국관에 '응결(Condensation)' 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때 전시된 '살림(Sallim)'은 MoMA의 소장품이 된다. MoMA는 20세기 작가를 위한 기금과 아그네스 군드, 글렌 퍼만, 제리 I. 스페이어의 기부금을 모아 양혜규의 '살림'을 구입했고,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소개하고 있다.
Cai Guo-Qiang (1957-). Borrowing Your Enemy's Arrows. 1998/ Kara Walker (1969-). Gone: An Historical Romance of a Civil War as It Occurred b'tween the Dusky Thighs of One Young Negress and Her Heart. 1994
카라 워커(Kara Walker), 카이 구오치앙(Cai Guo-Qiang) 등의 굵직한 현대작가 30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MoMA의 이 전시회는 글로벌 시각으로 정치, 사회, 문화적인 현상을 표현하거나 역사적인 렌즈로 현재의 상황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반영한 작품을 선보인다.
양혜규씨가 사는 베를린 집 키친을 모델로 한 의 '살림'은 조명, 선풍기, 수세미, 뜨개질 작업 등이 베네시안 블라인드, 케이블선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2010년 로어이스트사이드의 뉴뮤지엄에서 열었던 '목소리와 바람: 양혜규 (Voice and Wind: Haegue Yang *아래 리뷰 참조)'의 블라인드 작품에 비하면, 정제되었다기보다는 혼란스럽고, 복잡하다.
작가는 왜 자신의 작업 공간(스튜디오)가 아니라 생활 공간(부엌)을 택했을까? 그의 '살림'은 건축인가, 조각인가?
양혜규씨는 관람객을 '살림'이라는 타이틀의 작품이자 사생활의 공간 '부엌'으로 초대하고 있다.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살림(부엌)'은 철제로 얼개만 남아 있는 연약한 공간이다. 미술가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일상의 부엌, 그 살림의 외부를 360도 돌아본다. 그리고, 안을 들여다 본다.
우리가 보는 '살림'은 한치의 각도 차이에서도 다른 뷰(view)와 풍경(landscape)를 보여주는 파노라마다.
어느 뷰잉 포인트에서도 '살림'에 대해 간단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다. 이 부엌은 또한 어느 시각에 박제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그 부엌은 작가의 두뇌일 수도, 정체성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물에 대해, 사건에 대해, 인간에 대해 누구도 한 마디로 심판할 수 없다. 한국 출신 양혜규라는 작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림'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태그램 등 소셜 미디어로 사생활이 공적인 공간으로 확산되는 이 시대에 대한 익스포제(exposé)처럼 보인다. 무방비 공간과 사생활 침해/과시에 대한 엘레지라고나 할까.
전시주의(exhibitionism)과 관음주의(voyeurism)의 팽팽한 시소게임 속에서 더 이상 사적으로 남기 힘든 현대인의 초상같기도 하다. 이처럼 인간은 나약해진 것일까?
Scenes for a New Heritage: Contemporary Art from the Collection
March 8, 2015–March 31, 2016
Contemporary Galleries, second floor@MoMA
양혜규 2010 뉴뮤지엄 전시 리뷰
목소리와 바람: 양혜규 (Voice and Wind: Haegue Yang)
*다음은 뉴욕중앙일보 2010년 12월 24일자에 게재된 것을 보완한 리뷰입니다.
"Voice and Wind: Haegue Yang" Photo: Benoit Pailley
베니스 비엔날레 설치작가 양혜규씨가 지난 10월 20일부터 맨해튼 뉴뮤지엄(235 Bowery St.)에서 전시회 ‘목소리와 바람: 양혜규(Voice and Wind: Haegue Yang)’를 열고 있다.
이 전시는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단일 작가로 선정됐던 양씨의 뉴욕 첫 개인전이다. 당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였던 주은지씨는 바로 뉴뮤지엄의 키스헤어링 디렉터 겸 교육 큐레이터이기도 하다.
뉴뮤지엄 로비 절반의 통유리 갤러리에 전시 중인 양씨의 작품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목소리와 바람(Series of Vulnerable Arrangements-Voice and Wind, 2009)’은 컬러풀한 베네시안(Venitian) 블라인드가 지그재그 혹은 랜덤으로 설치돼 있다. 관람객은 블라인드로 구성된 미로를 걸으면서 사이 사이로 천장에서 매달려 내려온 향 분사기와 마주친다. 천장 곳곳엔 대형 공업용 선풍기들이 이따금씩 돌아간다.
"Voice and Wind: Haegue Yang" Photo: Benoit Pailley
블라인드는 햇빛을 조절하는 인테리어용품이다. 선풍기의 바람으로 흔들리는 블라인드는 공간을 유동적으로 만든다.
벽이라면 부서지기 쉬운 것이며, 집이라면 흔들리기 쉬운 그런 ‘연약한(vulnerable)’ 공간이다. 갤러리라는 공적인 장소를 거니는 관람객은 블라인드로 인해 마치 사적인 영역에 들어온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컬러풀한 블라인드로 둘러싸인 공간은 밖으로 열려있으면서도 안으로 닫혀있는 ‘불안한 장소’이기도 하다.
선풍기 바람은 기계적인 소리와 함께 계절감을 주는 장치가 아닐까. 그러나 바람조차 흘러가는 것이다. 양씨가 설치한 향 분사기가 내뿜는 냄새는 개인의 기억과 밀접하다.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제각기 다른 향들은 관람객의 기억 속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관람객은 자신의 과거에 순간적으로 잠입했다가 향 분사가 중단되면 기억에서 빠져 나온다.
양씨가 마련한 인공적 공간은 시각, 청각, 촉각, 후각이라는 총체적인 감각을 동원해 관람객의 아슬아슬한 사고를 자극시킨다. 고요한 명상을 하기엔 ‘다치기 쉬운’ 장소다. 양씨가 배열한 작업은 하이테크 시대 다시 유목민처럼 살고 있는 현대인, 사생활조차 무방비 상태가 된 우리들이 사는 세계에 대한 비가(悲歌)가 아닐까?
"Voice and Wind: Haegue Yang" Photo: Benoit Pailley
작가의 의도였을까? 우연이었을까? ‘베네시안 블라인드’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탄생한 발이다. 2009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양씨의 작품이 통유리 갤러리에 설치돼 훨씬 드라마틱한 공간이 창조되었음직하다.
서울에서 태어난 양씨는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 조소과 졸업 후 1994년 독일로 이주, 프랑크푸르트미술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엔 쿠퍼유니온에 교환 학생으로 와 뉴욕에 머물렀다.
그는 2006년 한국에서 인천 변두리의 1970년대 주택을 무대로 한 첫 개인전 ‘사동 30번지’를 연 후 세계를 무대로 작품을 소개했다.
2006 상파울루 비엔날레, 2008 토리노 트리엔날레, 2008년 LA카운티뮤지엄의 한인작가 12인전 그리고 미네아폴리스 워커아트센터 등지와 광주비엔날레, 선재아트센터,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전시해왔다.
양씨는 지난해 독일 경제전문지 ‘카피탈’이 선정한 ‘세계 100대 미디어 설치작가’에 이불(25위)씨와 함께 92위에 올랐다. 뉴뮤지엄 전시는 내년 1월 23일까지 계속된다. 212-219-1222. www.newmuseum.org.
Voice and Wind: Haegue Yang
October 20 2010 - January 23 2011
@New Museum
박숙희 기자 sukie@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