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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g is Gone.

'블루스의 전설' 'King of Blues' B.B. 킹이 5월 14일 라스베가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

2년 전 뉴욕의 블루스 페스티벌에서 B.B. 킹이 기타 루실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가까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진정 행운이었다. <2015.5.15>


*B.B. 킹 고향에 묻히다 <뉴욕타임스>

http://mobile.nytimes.com/aponline/2015/05/30/us/ap-us-bb-king-funeral.html


The King Plays the Blues 

Lowdown Hudson Blues Festival, July 1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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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Photos: Sukie Park/NYCultureBeat

‘블루스의 전설’ B.B. 킹(B. B. King, 87)이 뉴욕에 떴다.

B.B. 킹은 10일 브룩필드 플레이스(Brookfield Place, 구 월드파이낸셜센터) 플라자에서 열린 제 3회 로우다운 허드슨리버 블루스 페스티벌(Lowdown Hudson Blues Festival) 무대에 올랐다.

‘블루스의 대부’는 해탈한 뮤지션 그 자체였다. 그는 백 밴드의 호위 속 앉아서 깁슨 기타 ‘루실’을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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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은 이날 감미로운 ‘You Are My Sunshine’에서 'Three O'clock Blues' 'Everyday I Have the Blues' 그리고 히트곡 ‘Rock Me Baby’까지 영혼을 두드리는 연주로 때로는 폐부를 찢듯이 절규하며, 뉴요커들을 위안했다.
 
황혼의 B. B. 킹은 허드슨강 속으로 지는 한여름의 노을 아래서 청중과 눈을 맞추며 농담을 풀어 놓는 정다운 이웃집 할아버지의 모습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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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B. B. 킹을 처음 본 것은 1990년 경 서울에서 열린 팔리아먼트 수퍼밴드 콘서트(Parliament Superband Concert)에서였다.
호암아트홀이었는지, 예술의 전당이었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B. B. 킹, 레이 찰스, 다이안 슈어 등 수퍼 뮤지션들이 양담배 홍보대사로 한국을 찾았었다.

타임스퀘어에 B.B. 킹 블루스 클럽 & 그릴이 있으니, B.B. 킹을 자주 볼 수 있겠지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킹 오브 블루스'는 지금도 연간 100회 이상 투어 콘서트를 열고 있다. 어쩌다 자신의 클럽에서 연주할 경우 티켓을 비쌀 뿐더러 금방 매진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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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주간 ‘타임’은 B. B. 킹을 '역사상 위대한 기타 연주자 100인' 중 3위에 선정했다.

B.B. 킹은 블루스, 재즈, 스윙, 팝 등을 믹스한 독특한 스타일로 연주해왔다. 에릭 크랩턴, 조지 해리스, 지미 페이지, 그리고 제프 벡 등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들이 B.B. 킹을 롤 모델로 꼽는다. 이외에도 존 메이어, 밥 말리 등이 영향을 받았다.

그는 70대까지도 연간 250-300회 연주하는 에너지와 열정을 과시하고 있다. 87세인 지금도 그는 사흘에  한번 꼴로 무대에 오른다. 

이 날의 오프닝 무대는 존 쿠거의 허스키 보이스를 연상시키는 영국 출신 온 블루스 밴드 ‘제임스 헌터 식스(James Hunter Six)’가 이끌었다. 11일엔 ‘라 밤바’의 로스 로보스(Los Lobos)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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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파이낸셜센터 플라자(새 이름 브룩필드 플레이스 플라자)에서 무료로 열린 제 3회 로우다운 허드슨 블루스 페스티벌.
지난해엔 버디 가이(Buddy Guy)가 무대에 올랐다.

B.B. King Plays the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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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래할 땐, 마음으로 연주한다. 내가 노래를 중단하는 순간, 

 나는 루실(Lucille)에 의해 노래하기 시작한다.”


 "When I sing, I play in my mind; the minute I stop singing orally,

 I start to sing by playing Luc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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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B. King(1925. 9. 16-2015. 5. 14 )


1925년 9월 16일 미씨시피주 버클레어 인근 면화농장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태어났다. 본명 라일리 B. 킹.(Riley B. King). 네살 때 아버지가 가출하고, 엄마는 재혼하면서 외할머니에게 아들을 맡겼다. 

교회의 합창단원으로 가스펠을 부르면서 자란 소년은 열두살 때 15불을 주고 기타를 샀다. 열여섯살 때 트랙터 운전사로 일하면서 페이머스 세인트 존 쿼텟과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1946년 기타리스트 부카 화이트를 따라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10개월간 협연했다. 이후 아칸사의 웨스트멤피스 라디오 WDIA에 출연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WDIA에 가수 겸 DJ로 일하면서 '빌 스트릿 블루스 보이(Beale Street Blues Boy)'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블루스 보이’로 줄였다가 마침내 ‘B. B.’를 이름으로 쓰기 시작한다. 여기서 티-본 워커(T-Bone Walker)의 연주를 듣고, 전자 기타에 매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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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스릴은 가버렸지(The Thrill Is Gone’로 최우수 R&B 남성보컬상을 수상한 이래, 15회 이상 그래미를 받았다. 그리고, 1987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예일대 명예박사학위(1977), 블루스 명예의 전당(1980), 록큰롤 명예의 전당(1987), 국가 공훈예술메달(1990), 케네디센터훈장91995), 대통령 자유의 메달(2006), 브라운대학교 명예박사(2007)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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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실 이야기 Lucille Story

1949년 한겨울 스물세살의 뮤지션 B. B. 킹은 아칸소주의 트위스트에 있는 한 댄스홀에서 연주하게 되어 있었다. 
그 날 밤 두 남자가 술을 먹다 몸 싸움을 시작해 술에 불이 붙어 홀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밖으로 도피하고, B.B. 킹도 빠져나왔다. 잠시 후 30불 주고 산 깁슨 기타(ES-355 모델)를 홀 안에 두고 온 걸 깨달은 킹은 서둘러 들어가 기타를 갖고 나왔다. 

그날 밤 싸우던 두 남자는 모두 사망했다. 다음 날 킹은 두 남자가 ‘루실’이라는 이름의 여인을 두고 싸움이 붙은 걸 알게됐다. 그리고, 기타 이름을 ‘루실’이라고 지었다. 여인을 두고 다투다가 목숨을 잃은 두 남자의 어리석음을 상기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1968년 ‘루실’을 작곡해 동명의 앨범에 수록했다. 1980년 깁슨 기타는 B.B. 킹 루실 모델을 시판하기 시작했다. 
2005년 비비 킹의 80회 생일을 맞아 80대의 깁슨 루실을 내놓았다. 타임스퀘어의 B.B. 킹 블루스 클럽 안엔 ‘루실즈 그릴(Lucille’s Grill)’이 라는 이름의 작은 블루스 카페도 있다.


bbking-marquee-112311.jpg www.bbkingblues.com

♣비비킹 블루스 클럽 & 그릴                                                               

1991년 멤피스의 빌 스트릿에 자신의 이름을 딴 블루스 클럽을 오픈했다. 3년 후엔 LA의 유니버시티 워크에 두번째 클럽을 론칭했다. 그리고, 2000년 뉴욕 타임스퀘어에 B.B. 킹 블루스 클럽이 문을 열었다.
이후 커네티컷의 폭스우드 카지노(2002년), 플로리다 올란도(2007)와 웨스트팜비치(2009), 라스베거스 미라지 호텔(2009) 오픈하며, 블루스 클럽 체인이 됐다. http://www.bbkingblu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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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 킹은 연주 전에 기타 피크(pick)을 뿌리고, 끝난 후에도 청중에게 보너스 기념품을 던졌다. 나도 하나 건졌다.
콘서트 후엔 조수가 보살리노 모자와 재킷을 입혀준다. 그리고 블루스 킹은 무대를 떠난다. 영화배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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