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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황/택시 블루스
2015.05.20 10:08

(98) 필 황: 승객과 나 사이에...칸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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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블루스 <6> 칸막이, 꼭 필요할까?



승객과 나 사이에... '칸막이'



“칸막이가 없으면 벌금을 내야한다. 내가 아는 사람도 1만 달러 벌금을 물었다.”

“무슨 소리야? 카메라가 있으면 되는 것 아냐? 지금까지 차량검사에서도 아무 소리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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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전 내가 타는 차에 내부공사가 있었다. 칸막이 공사를 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 나는 내 택시에 대해 약간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뉴욕에 약 400여대에 불과한 칸막이 없는 옐로캡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기해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새로 나온 차냐고 물어보는 손님도 있었다. 나 역시도 칸막이 없는 다른 옐로캡은 만난 적이 없다.

 

택시 칸막이는 운전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과거부터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사실 그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는 의문이다. 70, 80년대 뉴욕시에 범죄가 기승일 때 한 해 수천 건의 택시강도 사건이 발생하고 십 수 명의 택시 기사들의 죽어나간 때도 있었으니까. 심지어 내 택시의 차주인 김성현 형님도 과거 권총 강도에게 택시를 통째로 빼앗긴 적도 있다 했다. 


택시 기사의 안전을 지켜 준 것은 방탄 칸막이가 아니라 신용카드 기계였다. 2008년부터 택시에서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해지면서 택시 기사들이 현금을 덜 소지하게 됐고 그만큼 택시강도도 줄었다. 개인 차주의 경우 칸막이와 보안 카메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김성현 형님은 칸막이 보다는 카메라가 더 범죄예방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택시 강도를 하러 차를 탔다가도 카메라를 보면 그냥 내린다고.”  내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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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가 없으면 좋은 점이 많다. 일단 실내 공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다. 나처럼 다리가 긴 운전자들은 운전석을 뒤로 한껏 밀어서 사용할 수 있는데다, 피곤할 때 운전석을 뒤로 뉘여 한숨 잘 수도 있다. 손님 입장에서도 칸막이로 막힌 공간보다는 앞좌석까지 탁 트인 것이 덜 갑갑하다. 실내공기 순환에도 유리하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손님과 거리감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한 공간에 있는 느낌이 있다.

 

그런데 지난 정기차량검사 때 다른 운전자에게 주의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칸막이가 없으면 벌금을 내야한다. 내가 아는 사람도 1만 달러 벌금을 물었다.”

“무슨 소리야? 카메라가 있으면 되는 것 아냐? 지금까지 차량검사에서도 아무 소리 없었는데.”

“그렇지가 않다니까. 네가 운이 좋았던 거다. TLC 웹사이트에서 규정을 한번 알아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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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옐로캡의 수명은 5년이다. 2011년산인 우리 차는 내년에 은퇴해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껏 4년간 멀쩡하게 탔는데 칸막이를 해야 한다니. 다음날 새벽 근무를 교대하며 차주 형님에게 그 얘기를 전했더니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며칠 후 형님이 칸막이를 설치해야겠다고 말했다. “알아보니까 차주 혼자서 운전하는 경우에는 카메라만 설치하면 칸막이를 안 해도 되지만 너희들처럼 다른 운전자가 있는 경우에는 칸막이를 해야 한다더라. 안 하면 벌금이 1만 달러래.” 지금까지는 문제없었지만 언제 TLC에서 시비를 걸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차량검사 관행을 봤을 때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정기검사에서 차량이 규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한 번에 다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매번 한 가지씩 걸고 넘어졌다. 이번 검사에서 넘어간 부분이 다음 검사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칸막이가 문제가 될 가능성은 적다고 보지만 만에 하나라도 걸릴 경우 1만 달러의 벌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몇 백불 들여 칸막이 공사를 하는 쪽으로 결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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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내 칸막이 공사를 하는 날 나는 작업자에게 운전석 공간을 가능한 넓게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더니 작업이 끝난 후 보니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염려했던 뒷좌석 냉난방 문제는 별도의 호스를 통해 공기를 보낼 수 있도록 칸막이에 환기구를 설치했다. 


칸막이에 적응하는데 며칠이 걸렸다. 손님이 하는 얘기를 잘 듣기 위해 칸막이 창에 귀를 가까이 대야 했다. 손님과 사적인 대화를 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그만큼 거리감이 생긴 것이다. 내 성격이 워낙 과묵한 편이라 전에도 손님과 자주 얘기를 하진 않았지만 먼저 얘기를 걸어오거나 관심사가 맞는 손님과는 자연스레 대화가 됐다. 이 부분은 어차피 칸막이를 한 이상 적응하고 극복하는 길이 최선이다. 내가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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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콜택시나 우버 택시 같은 경우에는 칸막이를 하지 않는다. 물론 콜택시들은 전화나 모바일앱으로 승객의 기록이 남기 때문에 길에서 아무나 태우는 옐로캡과 단순 비교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승객의 입장에서는 좀 더 쾌적한 차를 타고 싶지 않겠는가. 가뜩이나 그들은 차종부터 더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차량도 많다. 옐로캡의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효용성보다는 불편함이 더 많은 칸막이는 굳이 의무화하지 않는 것이 좋을 성 싶다.



002황길재100.jpg 필 황/택시 드라이버, 전 뉴욕라디오코리아 기자

1960년대 막바지 대구에서 태어나 자라고 1980년대 후반 대학을 다닌 486세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독립영화, 광고, 기업홍보 영상, TV 다큐멘터리, 충무로 극영화 등 영상관련 일을 주로 했다. 서른살 즈음 약 1년간의 인도여행을 계기로 정신세계에 눈뜨게 된 이후 정신세계원에서 일하며 동서고금의 정신세계 관련 지식을 섭렵했다. 2007년 다큐멘터리 영화제작 차 미국에 왔다가 벤처기업에 취업, 뉴욕에 자리를 잡았다. 2010년부터 뉴욕라디오코리아 보도국 기자로 활동했으며, 2013년 여름부터 옐로캡 드라이버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