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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필 황: 승객과 나 사이에...칸막이
택시 블루스 <6> 칸막이, 꼭 필요할까?
승객과 나 사이에... '칸막이'
“칸막이가 없으면 벌금을 내야한다. 내가 아는 사람도 1만 달러 벌금을 물었다.”
“무슨 소리야? 카메라가 있으면 되는 것 아냐? 지금까지 차량검사에서도 아무 소리 없었는데.”
얼마 전 내가 타는 차에 내부공사가 있었다. 칸막이 공사를 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 나는 내 택시에 대해 약간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뉴욕에 약 400여대에 불과한 칸막이 없는 옐로캡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기해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새로 나온 차냐고 물어보는 손님도 있었다. 나 역시도 칸막이 없는 다른 옐로캡은 만난 적이 없다.
택시 칸막이는 운전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과거부터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사실 그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는 의문이다. 70, 80년대 뉴욕시에 범죄가 기승일 때 한 해 수천 건의 택시강도 사건이 발생하고 십 수 명의 택시 기사들의 죽어나간 때도 있었으니까. 심지어 내 택시의 차주인 김성현 형님도 과거 권총 강도에게 택시를 통째로 빼앗긴 적도 있다 했다.
택시 기사의 안전을 지켜 준 것은 방탄 칸막이가 아니라 신용카드 기계였다. 2008년부터 택시에서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해지면서 택시 기사들이 현금을 덜 소지하게 됐고 그만큼 택시강도도 줄었다. 개인 차주의 경우 칸막이와 보안 카메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김성현 형님은 칸막이 보다는 카메라가 더 범죄예방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택시 강도를 하러 차를 탔다가도 카메라를 보면 그냥 내린다고.” 내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다.
칸막이가 없으면 좋은 점이 많다. 일단 실내 공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다. 나처럼 다리가 긴 운전자들은 운전석을 뒤로 한껏 밀어서 사용할 수 있는데다, 피곤할 때 운전석을 뒤로 뉘여 한숨 잘 수도 있다. 손님 입장에서도 칸막이로 막힌 공간보다는 앞좌석까지 탁 트인 것이 덜 갑갑하다. 실내공기 순환에도 유리하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손님과 거리감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한 공간에 있는 느낌이 있다.
그런데 지난 정기차량검사 때 다른 운전자에게 주의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칸막이가 없으면 벌금을 내야한다. 내가 아는 사람도 1만 달러 벌금을 물었다.”
“무슨 소리야? 카메라가 있으면 되는 것 아냐? 지금까지 차량검사에서도 아무 소리 없었는데.”
“그렇지가 않다니까. 네가 운이 좋았던 거다. TLC 웹사이트에서 규정을 한번 알아봐라.”
뉴욕 옐로캡의 수명은 5년이다. 2011년산인 우리 차는 내년에 은퇴해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껏 4년간 멀쩡하게 탔는데 칸막이를 해야 한다니. 다음날 새벽 근무를 교대하며 차주 형님에게 그 얘기를 전했더니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며칠 후 형님이 칸막이를 설치해야겠다고 말했다. “알아보니까 차주 혼자서 운전하는 경우에는 카메라만 설치하면 칸막이를 안 해도 되지만 너희들처럼 다른 운전자가 있는 경우에는 칸막이를 해야 한다더라. 안 하면 벌금이 1만 달러래.” 지금까지는 문제없었지만 언제 TLC에서 시비를 걸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차량검사 관행을 봤을 때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정기검사에서 차량이 규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한 번에 다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매번 한 가지씩 걸고 넘어졌다. 이번 검사에서 넘어간 부분이 다음 검사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칸막이가 문제가 될 가능성은 적다고 보지만 만에 하나라도 걸릴 경우 1만 달러의 벌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몇 백불 들여 칸막이 공사를 하는 쪽으로 결정한 것이다.
마침내 칸막이 공사를 하는 날 나는 작업자에게 운전석 공간을 가능한 넓게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더니 작업이 끝난 후 보니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염려했던 뒷좌석 냉난방 문제는 별도의 호스를 통해 공기를 보낼 수 있도록 칸막이에 환기구를 설치했다.
칸막이에 적응하는데 며칠이 걸렸다. 손님이 하는 얘기를 잘 듣기 위해 칸막이 창에 귀를 가까이 대야 했다. 손님과 사적인 대화를 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그만큼 거리감이 생긴 것이다. 내 성격이 워낙 과묵한 편이라 전에도 손님과 자주 얘기를 하진 않았지만 먼저 얘기를 걸어오거나 관심사가 맞는 손님과는 자연스레 대화가 됐다. 이 부분은 어차피 칸막이를 한 이상 적응하고 극복하는 길이 최선이다. 내가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일반 콜택시나 우버 택시 같은 경우에는 칸막이를 하지 않는다. 물론 콜택시들은 전화나 모바일앱으로 승객의 기록이 남기 때문에 길에서 아무나 태우는 옐로캡과 단순 비교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승객의 입장에서는 좀 더 쾌적한 차를 타고 싶지 않겠는가. 가뜩이나 그들은 차종부터 더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차량도 많다. 옐로캡의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효용성보다는 불편함이 더 많은 칸막이는 굳이 의무화하지 않는 것이 좋을 성 싶다.
1960년대 막바지 대구에서 태어나 자라고 1980년대 후반 대학을 다닌 486세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독립영화, 광고, 기업홍보 영상, TV 다큐멘터리, 충무로 극영화 등 영상관련 일을 주로 했다. 서른살 즈음 약 1년간의 인도여행을 계기로 정신세계에 눈뜨게 된 이후 정신세계원에서 일하며 동서고금의 정신세계 관련 지식을 섭렵했다. 2007년 다큐멘터리 영화제작 차 미국에 왔다가 벤처기업에 취업, 뉴욕에 자리를 잡았다. 2010년부터 뉴욕라디오코리아 보도국 기자로 활동했으며, 2013년 여름부터 옐로캡 드라이버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