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ater
2015.06.20 18:38
Broadway Beat (4) 브로드웨이 아시안 배우들이 뜬다
조회 수 4882 댓글 0
브로드웨이 비트 <4> 아시안 배우들이 몰려온다
'왕과 나' 한국계 루시 앤 마일스 & 이동훈씨 NEW 캐스팅
'미스 사이공' 브로드웨이 컴백 카운트다운
리바이벌 뮤지컬 '왕과 나'에서 켄 와타나베와 켈리 오하라. Photo: Paul Kolnik
브로드웨이에 아시안 배우 열풍이 불고 있다.
몇년 전부터 K-Pop이 아시아와 미국을 강타하고, 2013년 싸이(Psy)가 ‘강남 스타일’로 돌풍을 일으키면서 정점에 올랐다.
하지만, 브로드웨이에서 한인을 포함 아시아 뮤지컬 배우들의 존재는 미미했다. ‘The Great White Way’로 불리우는 브로드웨이는 단순히 밤에도 환한 극장가의 조명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백인 위주의 공연예술이자 산업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2009년 런던 로열알버트홀의 뮤지컬 '왕과 나'에서 시암국왕 역을 맡았던 대니얼 대 김과 왕비 역의 소프라노 임지현씨.
그러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후 브로드웨이에 흑인 뮤지컬과 연극이 대거 제작되면서 흑인 배우들이 소수에서 다수로 진입해가고 있다.
뮤지컬 ‘모타운’ ‘애프터 미드나잇’ ‘시스터 액트’에서 ‘태양 아래 건포도’ ‘트립 투 바운티풀’과 권투 선수 마이크 타이슨, 루이 암스트롱의 삶 등 흑인 이야기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 홍수를 이루었다. 여기에 흑인 버전의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Cat on a Hot Tin Roof)’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도 무대에 올려졌다. 바야흐로, 흑인 배우들의 일자리가 급증한 것이다.
데이빗 헨리 황 Photo: Lia Chang
이번에는 아시안들이 브로드웨이를 강타할 차례다.
상업적인 면에서 ‘브로드웨이의 왕’은 유대인이 다수를 이루는 제작자들이지만, 작품으로서의 왕은 극작가/작곡가들이다.
백인 중심주의의 브로드웨이에서 테네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 유진 오닐에서 무수히 많은 백인 작가군에서 아시안 스토리로 반짝여온 희곡작가가 바로 데이빗 헨리 황(David Henry Hwang)이다.
‘아시아계 배우들의 대부’ 데이빗 헨리 황은 ‘M. 버터플라이(M. Butterfly)’에서 ’플라워 드럼 송(Flower Drum Song)’ ‘칭글리시(Chinglish)’까지 브로드웨이에 황색의 무대를 펼쳐줄 수 있는 유일한 아시아계 파워 작가다. 한국계 작가 이영진, 줄리아 조는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아직까지는 오프 브로드웨이에 머물고 있지만...
필리핀계 배우 리아 살롱가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뮤지컬 '미스 사이공(Miss Saigon)'.
아시안아메리칸연기자행동연합(Asian American Performers Action Coalition)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6년에서 지난해까지 브로드웨이에서 아시안아메리칸의 배역은 고작 3%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백인 배역은 79%, 흑인이 14%, 히스패닉은 3% 안팎이었다.
재능있는 아시안 배우가 없을까? 아니면, 아시안이 맡을 역할이 없는 것일까?
백인 배우 율 브리너가 태국의 왕 역을 맡았던 할리우드 영화 '왕과 나'. 2009년 런던의 로열알버트홀에서 공연된 '왕과 나'에선 '로스트'의 스타 다니엘 대 김씨가 시암의 왕으로 캐스팅되어 화제가 됐다. 당시 첫번째 티앙 왕비 역은 뉴욕의 소프라노 임지현씨가 맡았다. 한국계 배우들이 당당하게 시암 왕국의 부부로 출연한 것이다.
시암왕국 첫번째 왕비 티앙 역의 루시 앤 마일스. 시암왕국의 국왕 몽꿋 역으로 발탁된 이동훈(Hoon Lee)씨.
'왕과 나'에서 시암왕국 왕비 역의 루시 앤 마일스(오른쪽)와 공주 역의 애슐리 박. Photo: Paul Kolnik
2015년 링컨센터 비비안 보몬트 시어터에 리바이벌된 '왕과 나'엔 켄 와타나베가 시암왕국의 왕, 한국계 루시 앤 마일스가 왕비 역으로 캐스팅됐다. 루시 앤 마일스는 토니상 여우조연상을 품에 안으면서 아시안 여배우 최초의 토니 수상자가 됐다. 이어 올 9월엔 한인 2세 배우 이동훈(Hoon Lee)씨가 시암국왕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브로드웨이 연극 '세미나'에서 헤티엔 박. 특별히 아시안일 필요가 없는 배역이었지만, 아시안을 캐스팅한 것도 의미있는 일.
2011년 브로드웨이에선 한인 배우들이 주연급으로 무대에 올라 화제가 됐다.
한인 2세 헤티엔 박(Hettienne Park)은 11월 브로드웨이 연극 ‘세미나(Seminar)’에서 이찌 역으로 릴리 라비, 제리 오코넬, 해미쉬 링클레어와 공동 주역을 맡았다. 같은 해 12월엔 한국계 제니퍼 림이 연극‘칭글리시(Chinglish)’에서 주연을 맡았다. 제니퍼 림의 증조부는 풍자극 ‘국물 있사옵니다’의 작가 이근삼씨.
데이빗 헨리 황의 '칭글리시'에서 제니퍼 림(왼쪽 두번째).
그러나 지금, 브로드웨이에 황색 물결이 다가오고 있다.
올 4월 링컨센터 비비안보몽시어터에서 리바이벌된 뮤지컬 ‘왕과 나(The King and I)’에 일본 출신 켄 와타나베와 한국계 배우 루시 앤 마일스가 시암왕국의 왕과 왕비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리고, 루시 앤 마일스는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토니상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왕과 나'에는 공주 애쉴리 박(Ashley Park) 외에도 무려 30여명의 아시안 배우들이 배역을 맡고 있다.
블록버스터 뮤지컬 ‘미스 사이공(Miss Saigon)’이 리바이벌될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리바이벌된 '미스 사이공'이 브로드웨이에 올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 5월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아시안아메리칸 배우 주연으로 리바이벌된 ‘미스 사이공’은 10여명 이상의 아시안 배역과 함께 내년 시즌 브로드웨이에 상륙될 예정이다. ‘미스 사이공’엔 한국의 뮤지컬 배우 홍광호씨가 투이 역으로 출연 중이기도 하다.
또, 아시안의 시각으로 그린 연극과 뮤지컬이 대기 중이며, 백인 배우들이 독점하던 역에 아시안들이 캐스팅되고 있는 것도 브로드웨이 변화의 물결이다.
한국계 루시 앤 마일스가 이멜다 마르코스로 열연하는 뮤지컬 '여기 사랑이 잠들다'.
이런 돌풍에 부채질을 하게 된 것은 ‘실험의 산실’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 ‘여기 사랑이 잠들다(Here Lies Love)’다.
필리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의 삶을 그린 이 뮤지컬엔 한국계 주연 루시 앤 마일스(Ruthie Ann Miles)를 비롯 무려 17명의 캐스트가 아시아계다. 지난해까지 퍼블릭 시어터에서 장기 공연했던 ‘여기 사랑이 잠들다’는 지난해 가을 샌프란시스코와 런던을 거쳐 LA, 시애틀, 덴버와 호주의 시드니, 멜번까지 투어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 사랑이 잠들다’는 ‘미스 사이공’처럼 아시안 여성을 성적인 대상이며, 희생자로 그리지 않는다. ‘왕과 나’에서 시암(구 태국)의 왕처럼 거칠고 야만적인 인물이 아니다. 아시안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으로 비판을 받아온 이전의 뮤지컬과 달리 ‘여기 사랑이 잠들다’에서 이멜다 마르코스는 격동의 시대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당당하게 살아온 여성으로 상투성을 벗어던진 인간적인 캐릭터다.
지난해 막 내린 브로드웨이 뮤지컬 '애니'에서는 고아 티씨 역에 장준아양이 캐스팅됐다.
또한, 전형적인 백인 역에 아시아계 배우들이 캐스팅되고 있다. 이전까지 구색으로서 조연이나 단역으로 등장했던 아시안 배우들이 주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오프브로드웨이 센터스테이지컴퍼니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선 일본계 배우가 로미오로 출연했으며,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의 뮤지컬 ‘올리버!’에선 필리핀계 배우가 악당 빌 사이크 역을 맡았다. 이제 브로드웨이 트렌드는 헤더, 클레어 등 비아시안 배역에 아시안 배우를 캐스팅하고 있다.
이전까지 작품의 인종적 다양성을 위해 흑인과 히스패닉 배우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던 캐스팅 디렉터들이 이제는 아시안 배우들을 찾고 있는 중이다. 브로드웨이의 황색 바람을 기대하시라!
리바이벌 뮤지컬 '왕과 나'에서 켄 와타나베와 켈리 오하라. Photo: Paul Koln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