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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June Korea: 그녀가 박스에서 나오던 날
잊혀져갈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 (1)
Still Lives: Eva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I’m not going to leave you."
© June Korea / 152303, Archival Pigment Print, 26.7×40 in, Edition: 1 of 3, with 2 APs
"그래서 얼마죠?"
"미화 $8000입니다. 그녀는 비싸지요."
일본에 위치한 단백질 인형 회사의 담당자, Brian이 전화기 너머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죽거나,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지금 그 모습 그대로 당신 곁에 영원히 함께 있을 거예요.”
약 한 달이 지났고,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을 올라온 FedEx 배달원으로부터 커다란 상자 하나를 수령했다. 나는 절단용 칼을 들고 상자 앞에 앉았고, 매우 조심스레, 떨리는 손으로 테잎이 붙은 선을 따라 칼날을 이동했다. 십여분이 흘렀을까. 마지막 테잎을 잘라냈고, 나는 상자를 열었다. 2014년 12월 29일 월요일이었다.
"Eva, 네 이름은 Eva야."
나는 2008년 이래로 인형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내가 어린시절 기억했던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그들의 신비로운 동화 속 세상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몇년간 사진을 찍으며 나는 나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근데, 네가 인형 사진을 찍는 진짜 이유는 뭐야?"
그건 외로움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대화, 그리고 그들과 함께 순간을 즐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나는 노래하고, 춤추고, 마시며 어울린다. 항상 많은 친구들에 둘러 싸여있고, 나는 그들에게 행복한 사람이다. 유쾌한 사람이다. 외로움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흥겨운 시간을 마치고 돌아온 현관문 앞에서 나는 주저한다. 그리고 힘겹게 밀어낸 방문, 그 너머에서 나를 기다리던 공허를 만난다.
© June Korea / 156764, Archival Pigment Print, 26.7×40 in, Edition: 1 of 3, with 2 APs
눈을 뜨고 일어난 침대 위에서 나는 여전히 혼자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 가장 두렵다. 사라질 것을 안다. 이 다음에 약속한 듯 찾아올 슬픔과 적막을 안다. 나는 어린시절 영원함을 믿었다. 내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나의 연인, 모든 것이 나와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며 알게 되었다. 살아있는 것은 절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떠나고 죽고,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남은 그들도 그렇게 꼭 같이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은, 삶 속에서 아무리 많은 시간을 반복했어도, 나에게 절대 쉬운 일이 되지 않았다.
그 외로움이 나를 인도했구나. 사람을 닮은 이 작은 인형들은 아무데도 가지 않을 것이다.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질문했다. ‘그렇다면 내가 영원함을 창조하면 어떨까? 내가 한 인형에게 새로운 생명과 정체성을 선물하면 어떨까? 그리고 그 인형을 내가 만든 동화 안에서 영원히 나와 함께 머무르게 하면 어떨까?’
‘Still Lives: Eva’ (‘Forever’와 ‘Eve’, 두 단어에서 도움을 얻어 그녀의 이름을 지었다), 나와 그녀가 만들어 나가는 이 새로운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세상의 시선에 어쩌면 많이 생소할 수도 있는 기묘한– 하지만 사실은 너무도 평범한– 관계를 시작한다. 상자 안에서 그녀가 나오는 첫날을 시작으로, 우리는 같이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쇼핑을 하고, 울고, 웃고, 또 함께 잠이 든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외로워서 시작했다. 나도 외롭고, 세상에 외로운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내가 이 작업을 통해서 외로움을 공부할 수 있게 되면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당신들에게 내 동화가 작은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June Korea/Visual Artist
서울 출생. 한국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으나 이후 사진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 캘리포니아 Art Center College of Design(ACCD)의 학사 과정, 뉴욕 School of Visual Arts(SVA)의 석사 과정을 각각 장학생으로 수료했다. 뉴욕에 거주하며 영상과 사진을 통해 그와 인형들이 만들어내는 동화 속 세계의 이야기들을 현실 밖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1년 미국 첫 개인전 'Still Lives: As I Slept, I Left My Camera Over There'로 데뷔했고, 미 서부와 동부,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등지에서 전시와 출판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http://www.Jun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