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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지기, 인해전술, 그리고 인스태그램... 아이 웨이웨이

Ai Weiwei (艾未未)

  


반체제 작가 아이 웨이웨이가 마침태 중국정부로부터 여권을 받았다고 뉴욕타임스가 22일 보도했다.

사천성 지진으로 붕괴된 학교와 희생자 학생들의 이름을 나열한 전시 등으로 중국 정부의 미움을 사 탈세 혐의로 수감되고, 고문받고, 여권을 압수당하는 등 탄압을 받아온 아이 웨이웨이가 패스포트를 받으면서 해외여행이 가능한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Aiweiwei2-web-master675.jpg instagram photo


아이 웨이웨이는 워싱턴 DC 허쉬혼뮤지엄에서 열린 자신의 대규모 전시도 중국에서 지휘했으며, 중국 내에서도 전시가 금지되어 왔다. 그는 아이 웨이웨이는 여권을 든 자신의 모습을 인스태그램에 올렸다. <2015. 7. 22>


ai_weiwei_portrait_media_gallery_res.jpg 아이 웨이웨이

 

그를 보면, 미술가라기 보다는 징기스칸, 혹은 ‘삼국지’에 나올 법한 장군같다. 

덥수룩한 수염에 기개가 철철 넘치는 중국의 아티스트,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55)는 중국 대륙을 호통할 것 같은 배짱, 호연지기를 품어낸다. 

 

조각가, 설치작가, 건축가, 사진작가, 영화감독, 사회운동가... 

아이 웨이웨이는 지금 세계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다. 영국의 미술전문지 ‘아트리뷰’는 지난해 11월 그를 '미술계 파워 100인' 중 1위에 선정했다. 그가 조각가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나 아트딜러 래리 가고시안, 글렌 D. 로우리 MoMA 관장 등을 제치고 톱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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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을 향한 아이 웨이웨이의 야유.

  

아이 웨이웨이는 중국 정부가 베이징 올림픽을 경축할 즈음부터 딴지를 걸었다. 블로그에 중국 사회의 치부를 세계에 알리면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마침내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가 된 중국 정부가 블로그를 폐쇄하자, 바로 트위터(tweeter)로 바꾸면서 소셜네트워크로 온 세상의 사람들에게 중국의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그에게 베이징 올림픽은 정부의 선전이요, 현실은 두부공사로 무너지는 학교에 있다.

 

그는 분명 Think Big하는 아티스트다. 호연지기 정신과 소셜네트워크의 인해전술로 중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의 사고를 주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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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폭행으로 입원했을 때도 스마트폰을 들고, 트위터로 폭로했다.

 

아이 웨이웨이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원자화한 이 세상에서 지식인들의 임무인 사회정의와 진실폭로의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트위터는 새로운 무기다. 그의 팔로워는 15만7700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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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의 '미술관 'Haus der Kunst' 벽에 전시된 백팩 설치작 '기억하기(Remembering, 2009)' 앞에서 아이 웨이웨이. 

  

2008년 사천성 지진에서 목숨을 잃은 초등학생들 5000여명의 이름을 집요하게 추적해 공개하는가 하면, 독일에서 어린이들을 상징하는 백팩으로 중국 정부에 야유하는 설치작을 전시했다. 


2011년 80일간 실종됐을 때 그는 차후 노벨 평화상까지 기대할 수 있는 인권운동가로 부상했다. 2010년 노벨평화상은 반체제 중국 지식인 류 샤오보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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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첼시의 마리분 갤러리에서 열린 해바라기씨 설치작 'Sunflower Seeds'. Photo: Sukie Park

  

경찰의 폭행을 포착해 트위터에 올리고, 끈질기게 고소하는 사회 비평가. 자기로 만든 1억개의 해바라기씨 설치작을 런던 테이트모던에 전시했으며, ‘Sunflower Seeds’는 2011년 2월 런던 소더비에서 55만9394달러에 팔렸다. 테이트 모던은 지난해 5월 아트펀드의 도움으로 800만개의 해바라기 씨 작품을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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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로 해바라기씨를 만들고 있는 아이.

  

바야흐로 아이 웨이웨이는 21세기 세계 미술사에서 자신의 챕터를 매일 만들어가고 있다. 

 

뒤늦게 빛을 보고 있는 일본 화가 야요이 쿠사마처럼, 아이 웨이웨이도 젊은 시절 뉴욕에서 살았다. 1981년부터 1993년까지 12년간 세계 미술의 심장부 뉴욕에서 고군분투하던 이방인으로 뉴욕의 창의적인 에너지로 수혈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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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뉴욕에서 살았던 그는 지난해 아시아소사이어티에서 뉴욕 사진전을 열었다.
 
 

구도자인가, 싸움꾼인가? 미술과 정치의 경계를 허무는 작가

  

아이 웨이웨이는 누구인가?

 

세계 미술계 파워 No. 1 아이 웨이웨이를 제대로 알려면 다큐멘터리 ‘아이 웨이웨이: 절대 미안하지 않아(Ai Weiwei: Never Sorry)’를 봐야 할 것이다. 맨해튼 IFC센터에서 상영 중이다. 323 6th Ave. 212-924-7771. www.ifccenter.com
   

 

469700_448211728536172_859612056_o-680x510.jpg 다큐멘터리 포스터.

 

 다큐멘터리: 절대 미안하지 않아 Never Sorry!


  

▶고집불통 파워맨: 아이 웨이웨이의 일상과 궤변에 카메라를 댄 인물은 미국인 여성 앨리슨 클레이만(Alison Klayman)이었다. 사천성 지진 6개월 후인 2008년 11월 중국에 머물고 있던 스물네살짜리 클레이만은 아이 웨이웨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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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맨해튼 IFC센터에서 개봉된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클레이만 감독. Photo: Sukie Park

 

 

▶뉴욕시절 사진전 단편영화: 당시 아이 웨이웨이는 자신의 블로그에 지진 참사 사진을 올리고 있었으며, 클레이만의 친구는 그를 촬영 중이었다. 클레이만은 아시아소사이어티로부터 아이 웨이웨이가 뉴욕에서 살던 시절 찍었던 사진을 모은 전시회(*2011년 6-8월, Ai Weiwei: New York Photographs)용으로 단편영화를 만들라는 제의를 받았다.

 

클레이만이 만든 20분짜리 단편 다큐멘터리 ‘누가 아이 웨이웨이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Ai Weiwei)’는 2011년 3월 미 공영TV PBS에서 방영됐다. '절대 미안하지 않아(Never Sorry)'는 97분짜리 장편 다큐멘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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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인 베이징 올림픽 스타디움 '버드 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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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베이징올림픽 스타디움 '버드 네스트'.

 

 

▶베이징올림픽 스타디움, 버드 네스트(Bird’s Nest): 아이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위해 세워진 스타디움 ‘버드 네스트’의 자문이었다. 그는 사천성 지진 이후 중국 정부가 올림픽 홍보를 위해 ‘스마일 작전’을 벌이는 것과 철저한 치안에 염증을 느꼈다.

 

그 해 여름 아이는 영국의 가디언지에 “중국의 금메달 수는 중요하지 않다. 사천의 학교 부실공사로 인해, 헤난의 매혈로 인해, 광동의 산업 사고로 인해, 사형제도로 인해 수 만명이 죽었다. 이런 수치가 진짜 우리 시대의 이야기”라고 썼다.

 

 

22WEIWEI1_SPAN-articleLarge.jpg  스튜디오에서 고양이와.

 

▶스튜디오: 베이징 외곽에 있는 아이 웨이웨이의 스튜디오 겸 거주지 주소는 ‘258 Fake’다. 키우는 고양이와 개만 40여 마리이며 조수는 부지기수. 가장 똘똘한 고양이는 작업실 문을 열고 닫을 줄 안다. 

 

▶두려움: 단편의 마지막 장면은 중국 정부가 아이 웨이웨이의 상하이 스튜디오를 파괴하는 것으로 끝난다. 클레이만은 그에게 물었다.


 “왜 그토록 두려움이 없나요?”
 “난 무척 두렵다. 동시에 만일 네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위험은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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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금에서 풀려나온 후 자신의 실종을 알리는 T셔츠를 입고 다닌 아이 웨이웨이.

 

 

▶체포의 이유는 탈세 혐의: 2011년 7월 중국 정부는 지난해 아이 웨이웨이의 스튜디오를 수색하고, 3개월간 구금한다. 중국 정부는 그에게 185만 달러의 벌금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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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맨해튼 플라자호텔 앞 퓰리처분수대에서 아이 웨이웨이의 12지신상 조각전이 열렸다. Photo: Sukie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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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웨이웨이가 실종되자 플라자호텔 인근에서 한 여성이 아이를 시위를 하고 있다.

  

뜨거운 피 속으로 흐르는 반체제 정신

  

▶시인의 아들: 아이 웨이웨이는 1957년 5월 18일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반체제 시인 아이 칭(Ai Qing)으로 1958년 부인 가오 잉(Gao Ying)과 신장으로 하방되어 노동을 했다. 당시 고작 한 살이었던 아이 웨이웨이 쉬헤지(Shihezi)에서 16년간 살았으며, 1975년이 되어서야 가족은 베이징에 돌아간다. 

 

▶북경영화아카데미: 미술가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그는 첸 카이거, 장 이모우 등과 나란히 중국 영화의 뉴웨이브를 이끈 영화감독이 됐을지도 모른다. 1978년 아이 웨이웨이는 북경영화아카데미(Beijing Film Academy)에 입학해 이들과 함께 공부했다. 그러나, 같은 해 그는 마 데셍, 옹 케핑, 후앙 루이 리 슈앙, 종 아쳉, 치 레일레이 등과 아방가르드 미술 그룹 ‘Stars’를 창설했다.

 

3년 후 아이 웨이웨이는 뉴욕으로 건너왔고, 이 단체는 1983년 해체된다. 

 

ai-weiwei-ai-weiwei-williamsburg-brooklyn-1983.jpg 1983년 윌리엄스버그에서 아이.

 

▶뉴욕 시절(1981-1993): 아이 웨이웨이는 파슨스 디자인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과 뉴욕 아트스튜던트리그(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에서 공부하면서 일상의 사물로 개념미술 작품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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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뉴욕 시절 제작한 옷걸이 설치작.

 

 

▶도박: 중국인들은 주말 떼를 지어 애틀랜틱 시티의 카지노로 간다. 뉴욕 시절 아이 웨이웨이도 블랙잭 카드 놀이에 빠져서 종종 애틀랜틱 시티를 다녔다. 아직도 그는 프로 도박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6390188_640.jpg 앤디 워홀 작품 앞에서 아이.

 

▶아르바이트: 다큐멘터리에서 아이 웨이웨이는 조수들과 ‘카네기 델리(Carnegie Deli)’에서 파스트라미 샌드위치를 먹는다. “난 한때 2애브뉴 델리에서 일했었지”하면서 그리고 남은 음식을 왁스 페이퍼에 일일이 싸는 장면이 나온다.  

 

▶중국으로 돌아가다: 1993년 아버지가 위독하자 고향으로 돌아간다. 한편, 아이 웨이웨이는 중국인 화가들의 실험적인 그룹 ‘베이징 이스트빌리지’를 설립했으며, 신세대 작가들을 소개하는 미술집 ‘Black Cover Book(1994), White Cover Book (1995), Gray Cover Book (1997)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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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술계 파워 No. 1: 2011년 10월 영국의 권위있는 미술잡지 ‘아트리뷰(ArtReview)’ 세계 미술계 파워 100인 중 1위에 선정했다. 그러나, 중국 외무성은 “중국은 충분한 역량이 있는 미술가들이 많다. 우리는 이번 선정이 순전히 정치적인 편견과 전망에 근거한 것이 잡지의 객관성을 위반했다고 느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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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웨이웨이의 아내인 화가 루 칭이 천안문 앞에서 치마를 들어올리고 있다.

  

▶결혼: 아이 웨이웨이는 화가 루 칭(Lu Qing)과 결혼했고, 이 여인은 1994년 천안문 앞에서 스커트를 올리고 속옷을 보여준 인물이다. 

 

▶혼외 아들: 그에겐 바람을 피워 낳은 아들이 있다. 아들과 친모, 아이 웨이웨이의 엄마가 한 집에서 산다.  

다큐멘터리에서 아이 웨이웨이는 “내 친구가 낳은 아들이다. 이런 관계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일어난 일이다. 어쩔 수 있겠나?”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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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개의 해바라기 씨와 15만여명의 팔로워. 아이 웨이웨이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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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 스타일' 패러디에서 중국정부를 비판하기위해 수갑 찬 채 말춤을 추고 있는 아이 웨이웨이.



*중국 정부 아이 웨이웨이 '강남 스타일' 금지




000.jpg *아이 웨이웨이: According to What? 브루클린뮤지엄(4/18-8/10, 2014)

*아이 웨이웨이 100만불 상당 도자 작품 파손: 항의였나, 퍼포먼스였나

*아이 웨이웨이 2008 사천성 지진 희생학생 5196명 추모 '통탄의 벽'@브루클린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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