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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이영주: 반세기 우정의 힘
뉴욕 촌뜨기의 일기 (24)
반세기 우정의 힘
한 사람 한 사람 친구들은 이렇게 자기들의 노년을 아름답게 가꾸며 살고 있다. 그래서 나이 먹었어도 노추가 없고, 만나면 즐거운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딸들은 “엄마는 우정이 참 아름다워.”, 하며 부러워한다.
옛날 수첩에서 사진 한 장이 나왔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내 기쁨조 3명과 히프만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잘 나온 사진은 아니지만, SS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감히 여기에 싣는다.
충무로의 한 중국집에 모인 동기들은 나를 포함해 아홉 명이었다. 원래는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이는데, 내가 서울에 왔다고 해서 만들어진 번개팅이었다. 여자는 ‘히프만’과 나, 두 사람이었다. 우리가 대학에 입학했을 땐 여학생이 여덟 명이었는데, 한 명은 이화여대로 전학 가고, 한 명은 한 학년 쉬는 바람에 여섯 명이 되었다. 그중 한 애는 캠퍼스 커플이 되어 우리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한 명은 지방에서 유학 온 처지라 아르바이트에 바빴다. 다른 한 명도 자주 어울리지 못하는 바람에 우리는 히프만과 한 학년 쉰 O와 M, 넷이서 늘 함께 몰려다녔다. 시험공부도 광화문의 우리들의 아지트 ‘수련 다방’에서 할 정도로 수련 다방에 콕 박혀서, 강의만 끝나면 몰려가 우리가 좋아하는 세미-클래식 음악들을 줄줄이 신청해서 듣고 또 들었다. 나중엔 그곳 DJ가 우리가 나타나면 알아서 음악을 틀어주었다.
그게 벌써 반세기도 전의 얘기다. 남자 동기들은 세상을 떠난 친구도 여러 명이다. 지난 겨울 용평 스키장에서 스키타고 내려온 길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SS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K는 입학해서부터 내 여학교 친구와의 인연으로 늘 가까웠고, 남자 동기들이 ‘이영주 기쁨조’라고 명명한 세 명의 기쁨조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어느 핸가, 폭설로 강남에서 발이 묶인 적 있다. 내가 묵는 호텔이 강북인데, 친구네 집에서 저녁 먹고 놀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택시가 올 때를 기다려도 오지 않는 바람에 시간은 이미 새벽 두 시 가까이 되었고, 할 수 없이 K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자기 단골 택시 기사도 연락이 안 된다면서 그 폭설이 쌓인 밤길에 차를 가지고 나와 나를 시내 호텔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었다. 이 얘기는 우리들 우정의 전설이다. 이번에 모였을 때도 SS가 화제에 오르자 친구들은 그 얘기부터 꺼냈다.
어쩔 수 없이 세월의 흔적을 절절하게 느낄 만큼 외양이 변한 친구들의 모습은 그러나 참으로 보기에 좋았다. 동기들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충청도 양반’ KH는 서울 근교에 밭을 장만해 농사를 짓고 있고, 살고 있는 아파트 옥상에도 야채밭을 일궈 농사를 짓고 있다. 집안이 원래 양반 출신이기도 하지만, 그는 중국 고전에 능통해서 만나면 늘 논어, 공자가 줄줄이 나왔다. 이번 모임에서도 내가 딸의 치과 치료를 위해 왔다는 말을 “이빨 브릿지 한 게 인펙션 생겨서 치료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가 한 소리 들었다. ‘이빨’은 동물들에게나 사용하는 단어이며 사람은 ‘치아’라고 말해야 교양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 때문에 그는 친구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이빨이 진정한 우리말이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땐 모두 ‘이’나 ‘이빨’이라고 했다, 한동안 떠들썩했다.
롯데 애비뉴얼 시네마에서 영화 ‘암살’을 개봉 첫날, 히프만과 함께 보았다. 저녁, 극장표 모두 히프만이 선물했다. 사진은 함께 간 큰딸이 찍었다.
그러나 양반은 참으로 영혼이 맑은 친구다. 벌써 12년째 동기들 모임을 주도해오고 있는 끈기도 끈기려니와 농사를 지어 유기농 채소 먹거리를 장만하는 부지런함에 혀를 두르게 되는데 더욱 놀라운 일이 있다. 매주 도서관에 가서 책을 다섯 권씩 빌려다 읽는다는 사실이다. 시간만 나면 도서관에서 사는 그는 밭을 매다가도 쉬는 시간엔 큰 나무 그늘에 앉아 책을 읽는다고 한다. 명색이 글을 쓴다는 내가 요즘은 책 읽기에 게을러진 일이 그렇잖아도 늘 명치 끝에 걸렸다. 그런데 작가도 아닌 친구가 일 년에 백 권이 넘는 책을 읽는다는 말을 듣으니 스스로 많이 부끄러웠다. 양반 옆에 앉았던 C 역시 같이 그렇게 책을 읽어서 서로 소통이 잘 된다고 하니 친구들이 모두 감탄하는 표정이다. 그래서 그런지 두 친구 모두 단아하게 나이 들어 훨씬 젊어 보인다.
내 기쁨조 중의 한 명인 CG는 젊을 때부터 테니스 광이었는데, 요즘도 매일 테니스를 친다니 그 체력이 부럽기만 하다. 그런데 그동안 오르간을 배워서 익힌 곡이 100 여 곡이 된다고 한다. 악보도 볼 줄 모른다면서, 외워서 백곡을 친다는 건 예사 일이 아니다. 양반이 동기모임을 맡기 전엔 멋쟁이인 CG가 그의 스타일대로 동기모임을 오랫동안 맡기도 했었다. 그 힘으로 우리 동기들의 모임인 ‘문우회’가 지금까지 잘 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아직도 공직 비슷한 자리에 있을 만큼 관운이 좋은 JB는 매주 산을 탈만큼 산을 좋아한다. 영어, 일어 공부에 아코디언을 시작한지도 오래 되었다. 언론인 출신의 춘천 유지인 KS 역시 사회생활을 계속하고 있는데, 전문적인 떡살 수집가로 학계에서도 알아준다. 몇 년 전엔 떡살에 대한 멋진 책까지 출판해서 뿌듯했다. 동기모임에 유일하게 참석하는 여자, 우리들의 보물 히프만은 일주일에 적어도 영화 한 편은 보는 문화인이다. (이번 7월엔 8편이나 보았단다.) 끊임없이 계속하고 있는 독서량 역시 만만치 않고, 세계를 섭렵하는 여행인이기도 하다.
한 사람 한 사람 친구들은 이렇게 자기들의 노년을 아름답게 가꾸며 살고 있다. 그래서 나이 먹었어도 노추가 없고, 만나면 즐거운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딸들은 “엄마는 우정이 참 아름다워.”, 하며 부러워한다. 철이 아직도 들지 않은 나는 고뇌 없이 매일을 룰루랄라 하며 “행복해!”, “사랑해!”, “고마워!”를 입에 달고 사는데, 내가 그렇게 매일 즐겁게 살 수 있는 근저엔 이처럼 멋진 친구들이 있다.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뉴욕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며, 뉴저지 AWCA에서 '수필교실'과 '북 클럽'을 지도한다. 또, 매월 세번째 토요일엔 음식을 싸갖고 와 영화 감상 후 토론하는 '예사모' 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