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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Korea/잊혀져 갈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
2015.08.25 22:08

(113) June Korea: 시큼한 레몬향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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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갈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 (3)



시큼한 레몬향의 추억



스무살 이후, 쓰레기라 불리던 내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사진'. 

나는 공대생이었지만 항상 사진기를 어깨에 메고 다녔고, 유난히 눈이 컸던, 

그 친구의 눈을 처음 담아낸 이후로 내 사진 안에는 항상 녀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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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JuneKorea.com



다.

오후 두시가 다 되어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갤러리에 들어서니 직원 동길이가 커다란 꽃다발 한아름을 건넨다.


“어? 이게 뭐야?”

“아까 어떤 여자분이 전해달라고, 두고 가셨어요.”

“여자? 내가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은 덩치가 산만한 남자일텐데?”

“두시간 전 즈음에 오셨는데.. 이름도 말 안 해 주시고 메세지도 안 남기시고.. 그냥 이것만 전해달라고 하고 가시던데요?"

“뭐야.. 누구야.. 영화 찍어?”


이층으로 올라가 별 생각없이 방명록을 꺼내니 자연스럽게 펜이 꽂혀있던 맨 마지막 장이 펼쳐진다.


‘여전히 좋은 사진. 잘 하고 있네. 응원할게.’ -MJ


정신없이 일층으로 내려가 동길이를 붙잡고 물었다.


“동길아! 그 여자! 눈이 컸어?”

“잘 기억이 안나요.”

“눈이 크고! 볼이 빵빵하지 않았어?”

“아.. 그게 저도 정신없을 때라서..”

“야 기억 좀 해봐봐.. 동길아. 응?”

“아! 방법이 있어요!”


동길이는 설치되어있던 방범용 카메라의 기록을 뒤지기 시작했고. 빠르게 손을 움직이던 녀석은 이내 곧 나즈막히 소리친다.


“작가님 여기요. 이분이예요!”



아보면, 시큼한 레몬향이 나는 기억들이 있다.


“야 그럼 너 정말 안 가는거다?”

“미쳤어? 안 간다니까 내가 거길 너랑 왜가!”

“야 나도 너랑 가기 싫거든? 근데 난 분명 너한테 오십프로 권리를 인정한거야. 근데 네가 포기한거다? 나 다른 사람이랑 갈거니까 나중에 딴 소리하기 없기다?”


가을이라고 둘이 공원 잔디밭에 나가 정신나간 사람들마냥 낙엽을 뿌리며 찍은 사진이 공모전에 당선이 되어 사이판행 티켓이 두장 나왔던 날이었다. 녀석은 내 사진 모델이었다. 스무살 이후, 쓰레기라 불리던 내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사진'. 나는 공대생이었지만 항상 사진기를 어깨에 메고 다녔고, 유난히 눈이 컸던, 그 친구의 눈을 처음 담아낸 이후로 내 사진 안에는 항상 녀석이 있었다. 


내 처음 사진기는 자동카메라였다.


"야 잘 좀 찍어봐. 바쁜사람 불러놓고 이거밖에 못해!"

"야 나는 잘하는데 이건 정말 사진기가 안좋아서 그런거거든?"


나는 그날 저녁 통장을 털어서 렌즈가 교환되는 사진기를 샀다. 그리고 다음날 녀석을 석촌호수로 불러냈다.

"야 너. 오늘 똑똑히 봐라."



짝. 

그 표현이 참 맞았으리라. 관심이 있었던 것일까. 아님 내 탓이었을까. 어느날인가 녀석도 장농서 찾은 낡은 사진기 한대를 들고 나왔고,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함께 서울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는게 즐거웠던걸까, 함께 있는게 즐거웠던걸까. 우리는 뭐가 그렇게 설레였던걸까, 뭐가 그렇게 아팠던걸까. 


내가 그렇게 아파서 술을 많이 마신날 너는 왜 내 공간에 익명으로 글을 남겼던걸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나는 왜 십여년을 그게 너인걸 모른척 했을까. 남자다운척은 있는대로 하며 왜 그리 비겁했던걸까. 아니, 이성적이었던걸까. 나는, 혹은 우리는, 무엇이 두려웠던걸까.


우리는, 단 한번도 이어진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항상 우리를 궁금해했다. 우리가 학교를 떠날 무렵, 먼지 쌓인 창문에 어떤 짓궂은 녀석이 나와 녀석의 이름을 쓰고 그 사이에 하트를 그려넣었던 날, 우리는 학과 친구들 앞에서 질세라 서로 불같이 화를 냈지만, 그 해 여름 장마비가 낙서를 씻어 내릴 때까지, 팔을 뻗으면 너무도 쉽게 닿았던 그 낙서를, 우리 둘 중 누구도 지우지 않았다.


돌이켜보니까, 나는 항상 그 복도 창가를 지나면서 먼지 속 남아있는 낙서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었었어.

그 해 여름 장마가 올 때까지.


고마워.

반짝반짝 빛나던, 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을 함께 기억해줘서.

건강하고 행복해.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당신.





www.JuneKorea.com - Profile Image 120-original.jpg June Korea/Visual Artist

서울 출생. 한국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으나 이후 사진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 캘리포니아 Art Center College of Design(ACCD)의 학사 과정, 뉴욕 School of Visual Arts(SVA)의 석사 과정을 각각 장학생으로 수료했다. 뉴욕에 거주하며 영상과 사진을 통해 그와 인형들이 만들어내는 동화 속 세계의 이야기들을 현실 밖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1년 미국 첫 개인전 'Still Lives: As I Slept, I Left My Camera Over There'로 데뷔했고, 미 서부와 동부,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등지에서 전시와 출판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http://www.Jun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