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ry Window
2015.11.05 22:35
한혜진, 가을 속으로/ 가을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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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속으로
한혜진
BEAR MOUNTAIN 자락 한 끝에서 점화된 불꽃이
큰 원을 그리며 타 들어가는 가을 한복판.
눈 앞에 넘실대는 불꽃의 세계는,
신들의 제전인가, 그칠 줄을 모르고
구경나온 나는 불의 화살을 맞은 듯
어지러이 불꽃의 율동에 몸을 맡겨 보네.
내 눈을 점거한 오색의 황홀경.
아, 정녕 가을이던가?
신들의 축제는 이리도 아름답던가?
너울거리던 불꽃이 제 명을 다하고 사그러지듯
쏟아져 내릴듯 나부끼던 오만가지의 색종이들이
신들의 부채바람에 일순간 흩어져 내리니
계절의 잔치는 끝을 향해 치닫고,
수선스럽게 자리를 일어나는 나의 텅빈 가슴에
슬픈 노래가락 하나 남기려 하네.
고개를 들어보니, 불꽃놀이 번지던 하늘가엔
앙상한 나무가지 무늬되어 박혀있네.
나는 이제 황금비되어 내려 깔리는
환희의 조각들을 밟으며
점점 더 깊어가는 가을 속으로 들어가 보네.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에둘러 걸어 보네.
가을 산책
한혜진
썰렁해진 집안 공기를 피해
밖으로 나선다.
가을 햇볕은
오기로 했다가 말아버린
그래서 바람맞은 사람 앞에
나앉은 빈 의자처럼
항상 거기까지이다.
춥지도 않지만 따뜻하지도 않다.
허성허성한 머릿결
무스발라 빗어 넘긴
초로의 신사.
혼자이기에 쓸쓸한 뒷모습
셔츠 속에서 움직이는
작아진 어깨
이제 무엇 하나 꼭 쥘 것 없는
느슨해진 주먹.
그가 내 옆을 지나간다.
체온으로 견딜 수 있어서
수월한 계절을.
시월은 그래도 견딜만하다
혼자서도 아직 버틸만하다.
나직히 다짐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혜진/수필집 '길을 묻지 않는 낙타' 저자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후 결혼, 1985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한양마트 이사로 일하면서 김정기 시인의 권유로 글쓰기와 연애를 시작, 이민 생활의 균형을 잡기위해 시와 수필을 써왔다. 2011년 뉴저지 리지필드 한양마트에 갤러리1&9을 오픈, 한인 작가들을 소개했으며, 롱아일랜드 집 안에 마련한 공방에서 쥬얼리 디자인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