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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이수임: 전업작가, 꿈인가 현실인가?
창가의 선인장 (26) '풀타임' 화가의 고백
꿈인가, 현실인가?
“아줌마, 나 여기까지 다시 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오지 못하는 줄 알았어요.”
친구의 어린 아이가 가슴 속에 오랫동안 품고 있던 비밀을 들려주듯 내뱉는 소리.
쇠몽둥이로 머리를 맞은 듯 몸이 굳어졌다.
Soo Im Lee, shadows of darkness, 2010, sumi ink & gouache on paper, 24 x 18 inches
친구는 직장 다니며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 갓난아이를 한국으로 보냈다. 그리고, 몇 년 후 자리 잡히자 아이를 다시 데려왔다. 그 아이가 우리 아이들과 함께 공원에서 놀다가 재미가 없는지 내 옆에 앉더니 한숨을 내쉬며 들려준 말이었다.
초등학교 일 학년 아이의 입에서 세파에 시달린 어른들이 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나는 아무런 위로도 못 한 채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1975년 LA에 이민 와서 식당에서 주방 헬퍼를 했고, 페인트칠, 그리고 신문사 광고부에서도 일했다. 뉴욕에 와서는 학교에 다니며 채소 가게, 옷 가게, 가발 도매상에서 일하며 학교를 마쳤다. 결혼 후엔 행상, 옷가게, 목수일 그리고 신발 가게에서도 일했다. 마지막으로는 후배가 하는 램프 가게에서는 색칠업을 했다.
램프 가게에서 처음에는 일주일에 닷새 일했다. 그러다 나흘로 줄였다. 작심한 마약 중독자가 약을 조금씩 줄여가듯 하루하루 줄이다가 결국 하루만 일했고, 마침내 일을 그만두었다.
십오년쯤 전부터 남편은 ‘풀타임 화가’다. 몇 년을 후배 가게에서 일하면서 하루하루 일을 줄일 때마다 나는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했다.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아이들은 커가는데 하루씩 일을 줄이니 어찌 살란 말인가! 다행히 줄여진 시간만큼 그림에 전력하니 그림이 조금 팔려 일하지 않아서 벌지 못한 것을 매울 수 있었다.
화가 이일, 이수임씨 부부
남편이 일을 줄여 어려울 때마다 나는 직장을 알아보려고 신문을 뒤적였다. “이렇게 밖에 나가 일 하지 않고 그림 그리며 버텨야만 우리 둘 다 전업 작가가 될 수 있어.” 신문을 뒤지는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지나가듯 내뱉은 말이 씨가 되었다.
이제는 둘 다 ‘풀타임 화가’다.
이 사실이 꿈인가?, 현실인가?
혹시나 가난의 그림자가 다시 우리를 덮치는 게 아닐까?
불안하다가도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는 확신이 들 때는
기쁨인지 아니면 슬픔인지 모를 전율이 온몸에 번진다.
“엄마, 우리가 세이브 많이 해줬지요?”
아이들은 효자라도 된 것처럼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난 할 말을 잃고 비디오를 리와인드 하듯 옛 생각에 잠긴다.
겨울마다 아이들은 주말 새벽 6시에 무료로 하는 루즈벨트 아일랜드 실내 테니스장을 다녔다. 수영은 시영 메트로폴리탄 수영장에서, 음악은 학교 밴드부에서. 아이들은 제대로 된 옷 한번 입어보지 못하고 자랐다. 얻어 입거나, 헌 옷가게에서 사 입혔다. 다행히 남자아이들이라 까다롭지 않았다. 형편이 핀 지금도 아이들은 브루클린에 있는 헌 옷가게 ‘비컨스 클로젯 (Beacons Closet)에서 사 입는다. 나름대로 헌 옷이 자기들에게는 편하단다. 빈티지룩이라고나 할까.
남편이 하루하루 일을 줄여 생활고에 시달릴 때마다 난 친구 아이의 한숨 섞인 말을 되새긴다.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나도 언젠가 내 입으로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다고요!'"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